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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예외

by 공부남주

포장마차를 나온 전당포주인은 기필준과 헤어진 뒤 전당포로 다시 향다.

전당포에 도착한 주인은 기필준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수금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지폐들이 가지런히 정리어 있었다. 전당포주인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한층 더 짙어진 어둠 속을 나섰다.

기필준이 쥐어 준 목도리와 알싸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이 겨울밤의 추위를 조금은 잊게 했다.


싸늘한 밤공기가 스며든 가로등은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어두운 그림자들을 만들어냈다.

골목 끝는 가로등 불빛으로부터 자신과 그림자를 어둠 속 깊숙이 숨긴 한 남자가 있었다.

전당포 주과 거리를 유지하 남자는 주인이 모퉁이를 돌아 어두운 곳 깊숙이 들어서자

한 달음에 거리를 좁혀 무언가로 머리를 내려쳤다.


퍽!


당포주인은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도 반사적으로 가방을 움켜쥐었다. 남자는 거칠게 가방을 잡아당기며 대의 팔을 한번 더 가격했지만 주인은 손에서 가방을 놓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전당포주인은 상대방의 행동과 언뜻 보이는 얼굴에서 어렴풋하게 군가를 생각해 냈다.


- 어... 여... 영철아.

가방을 잡아당기던 남자는 익숙한 음성에 순간 흠칫며 계속 주시하던 가방에서 시선을 뗐다.


- 어... 어... 어...

앞에 쓰러져있는 남자가 전당포 주인임을 알아본 남자는 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당포주인은 느슨해진 상대의 팔힘을 느끼고는 가방을 가슴 안쪽으로 당기며 바닥에 손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괜찮아. 영철아. 괜찮아.

전당포주인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면서 상대를 안심시켰다.

- 이... 이...


전당포주인은 당황해하는 남자를 다그치지 않고 부드럽게 얘기했다.

- 너 혹시 돈 필요해서 그런 거야?

남자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전당포주인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본 남자는 더욱 당황하며 말했다.

- 피... 피....

전당포 주인은 손등으로 마의 피를 훔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 난... 괜찮으니까 너 이거 절대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 너랑 나만의 비밀이야. 알았지? 지금은 리 집으로 가고 나중에 사무실로 와.

남자는 여전히 눈을 한 곳에 두지 못한 채 얘기했다.

- 벼... 병원...

- 난 괜찮으니까 얼른 가.


어둠 속으로 뒷걸음치며 사라지는 남자를 뒤로 하고 전당포 주인은 천히 발걸음을 뗐다.

- 어...

전당포 주인은 몇 발자국 가지 못한 채 식이 희미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전당포 건물 뒤 어두운 골목 안쪽으로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었다. 그는 허름한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었고 주머니 속에는 막 받은 돈뭉치를 꽉 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남자의 반대편 건물뒤 그림자 속에서 담배 불빛이 깜빡였다.


강 형사는 천천히 담배를 털어내고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 채 자연스럽게 남자의 뒤를 쫓았다.


남자는 초조한 듯 가끔씩 뒤를 힐끗거렸만 상대를 놓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만 유지하는 감각이 남다른 강형사였다. 두 시간여가 지났을까?

강형사가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남자는 오래 걸었다. 남자는 낡은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버스로 갔으면 2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에 있는 건물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확인한 뒤 강형사는 건물 앞으로 가가 간판 보았다.

[ㅇㅇ의원]

강 형사는 짧아진 담배개피를 마지막으로 길게 들이마시고 땅에 던진 뒤돌아섰다.



전당포문이 벌컥 열리며 강형사가 들어섰다.

- 까 그 남자 계약서 좀 줘봐.

기필준은 강형사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강형사는 계약서를 빠르게 훑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 계약서에 내용이 너무 없는데?

- 약속내용이 비밀이라고 해서...

- 다른 계약서들도 좀 꺼내봐

기필준은 서랍 안에 있는 계약서 뭉치를 꺼내 건넸다.

강형사는 다양한 계약서 안의 내용 중에서도 다른 무언가를 빠르게 찾아냈다. 마치 냄새를 맡는 듯했다.

- 계약의뢰인의 약속상대방이 없는 게 이 약속뿐인데?

- 네... 자기 자신에게 한 약속이라고 해서요...

강형사는 기필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그래?

기필준은 표정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그건 차차 얘기하고...

강형사는 품속에서 낡은 노트 하나를 꺼내 기필준에게 건넸다.

- 이게... 뭐죠?

- 어봐

강형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 사건이 길어질 모양이니 는 너가 할 일을 해. 사장답게 말이야.

- 사... 장이라니요?


기필준은 전당포를 나서는 강형사의 뒷모습에서 그가 건넨 노트 시선을 옮겼다.


[3.21일]

당돌한 녀석이 찾아왔다. 고객을 상대로 이러면 안 되는데... 괜히 오지랖을 부린 건 아닌가 싶다. 나 잘하고 있는 거겠지...


[3.28일]

갑자기 학부형이 되었다. 지 어린 시절 내 모습과 겹쳐 보여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내가 좀 봐줘도 되지 않을까... 심부름이라는 좋은 핑계가 있잖아.


기필준은 글을 읽어 내려가며 전당포주인을 만나 있었던 여러 일들을 떠 올렸다. 기필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책상 위에는 눈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

기필준... 똘똘한 녀석. 제법 일을 잘한다. 괜찮다면 내가 친형이 되주고 싶다. 언젠가 전당포 사장이 되어 다른 누군가의 가족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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