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필준 사장님께는 이미 백신을 놓았습니다.
백신이라는 말에 실험실 안이 술렁거렸다.
- 백신이라니? 그럴 리가...
강혁수가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 K! K가 배신을 했습니다.
스피커 속에서 K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배신? 저는... 의뢰받은 일을 정확히 처리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거기 있는 기필준 사장님이죠.
그리고 배신의 의미를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배신이 있으려면 먼저...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신뢰가 있었죠?
강혁수는 평소와 달리 흥분하며 소리쳤다.
- 헛소리 지껄이지 마!
흥분한 그의 모습에 김대표옆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의 표정을 감지한 강혁수는
K를 부르며 실험실을 뛰쳐나갔다.
스피커에서 다시 차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 김대표님은... 내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테니 기대하시죠.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확신한 김대표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실험실을 박차고 나갔다.
- 대표님! 이건 제가 잘...
옆에 있던 남자도 허둥대며 김대표를 따라나섰다.
얼마가 지났을까. 기필준 뒤로 누군가 다가왔다.
기필준 뒤로 다가온 그는 기필준의 손과 발에 묶인 잠금장치를 풀더니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기필준은 쓰러진 남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다급히 외쳤다.
- 저기요. 괜찮으세요?
흔들어도 반응이 없자 응급조치를 위해 쓰러진 남자를 돌아 뉘었다. 그의 뼈마디는 유난히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고, 살갗은 마치 오래된 종이처럼 바스러질 듯 얇고 건조했다. 눈가와 입가에 깊게 파인 주름과 건조한 피부. 얇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가는 숨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모습이 달라졌지만 기필준은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K였다.
기필준은 떨리는 손끝으로 K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차디찬 실험실 바닥 위 쓰러진 K의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숨결은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기필준은 K를 품에 안고 흔들며 중얼거렸다.
-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의 목소리는 차오르는 울음을 억누르려는 듯 떨렸고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K의 눈꺼풀이 간신히 떨리더니 마지막 힘을 짜낸 듯 입술이 움직였다.
- 전... 약... 속 지켰습니다.
- 정신 차려. 지금 무슨 약속 타령이야.
기필준의 외침이 실험실을 울렸다.
- 이제 더는 제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기필준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평소 감정동요가 없이 냉철했던 K의 눈에서 눈물이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 알았으니까 얘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여기를 나가자.
K는 작게 숨을 들이쉬었지만,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기필준은 그 조용한 숨소리를 부여잡듯 K의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 그 순간 기필준의 어깨가 들썩였다. 숨죽인 오열이 깊은 어둠처럼 번져갔다.
고요 속에서 기필준은 K를 품에 안은 채 나지막이 속삭였다.
- 오늘부로 계약을 해지한다...
[첫 만남]
이도영 옆에 흡사 늑대 같은 분위기의 남자가 서 있었다.
쭈뼛쭈뼛 거리는 이도영을 향해 기필준이 물었다.
- 뭔데? 얘기해.
이도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네... 저희 고객인데 김기강이라고... 전당포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우선 데려와 봤는데요.
기필준은 김기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 전당포에서 일하고 싶다고? 음... 너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나.
김기강은 기필준의 물음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 전당포를 지켜드릴게요.
끝.
약속전당포 연재는 또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혼자였다면 못 지켰을 텐데 부족한 글임에도 브런치회원분들의 좋아요 하나에 힘을 얻어 40화까지 매주 빠짐없이 글을 올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글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