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희생

by 공부남주

- 준비 완료 됐습니다.

김대표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 보시다시피 대표님께 가장 적합한 대상을 확보했니다.

김대표는 숨을 한차례 길게 뱉어낸 뒤 유리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꺼냈다.

- 그래. 이상 미룰 수 없지. 절차는?


- 네, 절차를 설명드리겠습니다. 노화주사를 놓고 나면 대상자의 몸에서 노화를 거스르려는 물질이 활성화됩니다. 그걸 즉시 추출해서 대표님께 주사하는 겁니다.


- 그고?


- . 그리고 추출된 물질에는 노화주사에 들어간 분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대표님께는 백신을 미리 놓을 겁니다.


김대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나 하나 건사하자고 하는 일이 아니야. 리 국민들을 위해서라는 점 꼭 명심하게.


대화너머 유리창 안쪽에는 기필준이 앉아 있었다.


기필준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의식이 맑아지며 먼저 들려온 건 낮게 윙윙거리는 기계음이었다. 시야가 또렷해 지자 눈부시게 흰 천장 그리고 천장 곳곳에 달린 LED 조명들이 보였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옴짝 달짝할 수 없었다. 팔은 나란히 팔걸이에 고정되어 있었고 발은 의자다리에 묶여 있었다.


- 엔인가...


기필준은 낮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한쪽에는 인체 데이터를 표시하는 모니터 의료용 기기들이 정돈돼 있었다. 공기는 무취의 냉기가 감돌았고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시 한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사람을 이렇게 납치하고.

기필준은 보이 않는 유리 벽 너머에 있는 누군가에게 외쳤다.


- 당포 사람들이 날 찾고 있을 테니 터무니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풀어줘

아무런 반응이 없자 기필준은 한번 더 소리쳤다.


그때 뒤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더니 구두 발자국 소리가 기필준 귓가로 조금씩 가까워졌다.


- 음 뵙겠습니다.

기필준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굳이 소개를 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만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나이답지 않게 허리는 꼿꼿하고 반백의 머리는 깔끔하게 뒤로 넘고, 얼굴에 깊게 팬 주름들은 마치 오랜 세월의 지도를 그려놓은 듯했다. 눈매는 차갑고 매서웠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 친근한 인상을 주었다. 김대표가 기필준의 앞에 멈춰 선 순간 공기까지도 그의 존재에 눌린 듯했다.


기필준은 내심 놀랐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을 걸었다.

- 김... 대표님... 아니신가요? 왜 이런 곳에...


- 네, 맞습니다. 정치란게 어디 정해진 장소가 있나요. 국민들이 계신 곳이 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이죠.


기필준은 빠르게 머리를 며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 지금 상황이 이상해 보이실 것 같은데 뭔가 오해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여기 이렇게 묶여 있서... 우선 풀어달라고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김대표는 기필준의 말을 듣더니 옆에 있던 남자에게 낮지만 강한 어조로 훈계를 시작했다.


- 자네 일을 이렇게 하면 어떡하나! 국가를 위해 희생하시는 분을 모셔오면서 제대로 된 설명도 안 고!


김대표는 기필준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며 말을 이었다.


-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네요.


기필준은 김대표의 말에 긴장이 살짝 풀리며 말이 부드럽게 나왔다.

- 닙니다. 감사합니다.


김대표는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 감사는 제가 드려야지요. 국가를 위해 희생해 주시는데.


기필준은 아까부터 김대표가 얘기하는 '희생'이라는 단어에 순간 소름이 돋으며 아랫배가 당겨왔다.


- 희... 생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김대표는 살짝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아시다시피 지금 국가는 혼란과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죠. 그런데...

김대표는 그런데라는 말을 하며 잠시 말을 쉬었다.


- 보시다시피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네요. 아직 제가 하지 못한 일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지만 오늘처럼 국민들의 이러한 자발적 지원이 있다면 우리나라도 아직 미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필준은 김대표의 말을 듣자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옆에 남자가 김대표에게 속삭였다.

- 대표님, 진행할 시간입니다.

김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자세한 설명을 드릴 시간이 없어 죄송합니다.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하신다는 것만은 잊지 말아 주십시오.


김대표는 말을 마치고 옆에 준비된 다른 의자에 앉았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트레이를 끌고 와 김대표와 기필준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주사기에 용액을 집어넣고 기필준의 팔목 주사기를 가져갔다.

기필준은 소리를 지르며 뿌리치려 했지만 단단히 고정된 팔은 움직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 이게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기필준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주사기의 용액을 천천히 기필준의 팔 안으로 밀어 넣었다.


5분 여가 지났을까?

김대표는 헛기침을 하며 남자에게 말했다.

-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는 건가?

남자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식은땀을 흘렸다.

- 그... 그게... 이미 시간이...


주사를 맞은 기필준에게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문자하나가 도착했다.


[기다려도 당신이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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