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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Feb 11. 2023

눈치없는 수도꼭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다.

어렸을 때, 수도꼭지를 틀면 콸콸 쏟아지는 물이 무척 신기했다. 수도꼭지 바로 앞까지 물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수도꼭지가 열리는 순간 나타나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금 커서는 '수도꼭지의 눈치없음' 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 '눈치없는 수도꼭지' 라는 건 원하는 수돗물이 원하는 때에 따박따박 나오질 않아서 수도꼭지에 붙인 별명같은 거였다. 내 생각엔 많은 집들에 있는 수도꼭지들이 죄다 '눈치없는 수도꼭지' 이다.


예를 들면, 따뜻한 물이 나오도록 온수 방향으로 수도꼭지를 돌려놓았는데 갑자기 찬물이 나오는 경우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온수 방향으로 돌려놓았을 때는 따뜻한 물이 필요해서 돌려놓은건데 어째서 찬물이, 그것도 갑자기 튀어나와 사람을 놀래키는지. 또 미지근한 물이 필요해서 중간 쯤으로 수도꼭지의 방향을 맞춰 놓았는데 물의 온도가 안 맞게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떨 때는 더 따뜻한 물이 나오도록 수도꼭지를 돌렸는데 물의 온도는 똑같거나 혹은 더 차가운 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수도꼭지가 눈치없는 짓을 한다.'면서 혀를 끌끌 차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지금은 물의 온도가 제멋대로 이지만, 나중에 미래에는 기술이 발전할테니 분명 물의 온도가 딱딱 맞게 나오도록 조절될 거야.' 라는 희망을 멋대로 품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런 사소한 문제는 모두 기술의 발전으로 극복해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결국 시간이 답이라고 생각했었다.




눈치없는 수도꼭지는 이것만이 아니다. 실은 내 얼굴에도 '눈치없는 수도꼭지'가 붙어 있다. 바로 내 두 눈이 그것이다. 


눈물이라는 건 참 이상하게도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친구가 실수한 것을 보고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째서 너무 웃은 나머지 눈물까지 쏟아내고 말았는지. 절망적인 상황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어째서 희망적인 상황에서도 눈물을 줄줄 흘려서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낯선 타인 앞에서 눈물을 쏙 빼서 생전 처음 만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그게 바로 나의 '눈치없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 해결될 거라 생각했었다. 아직은 어리니까, 마음이 여리니까, 눈물을 잘 못 참으니까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은 지금도 내 두 눈이 '눈치없는 수도꼭지들'인 것을 보면 시간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틀린 듯하다. 올 겨울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찬 바람에 눈이 시려서 눈물 쏙 빼며 출근을 했다. 눈물을 안 흘릴 수 있는 약이 개발된다면, 꼭 한 번 사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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