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리오 Feb 18. 2023

쓰러진다

세상 제일 아슬아슬했던 순간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오전 출근 시간이나 저녁 퇴근 시간에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 있다. 앉아있는 사람이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앉아서 조는 사람들은 보통 그 자리에 고대로 앉아서 고개만 앞으로 숙이고 자는 경우가 많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자세이다. 뒤로 고개를 젖히고 자는 사람도 있는데, 그 경우는 고개를 앞으로 숙인 경우보다 자세가 안정적(?)으로 보여 보는 사람 생각에도 '마음 편하게 주무시는 구나.'하게 된다. 내 경우는 그렇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떤 남자분이 내 옆에 앉았다. 토익책이었나를 옆구리에 끼고 탔다가 자리에 앉으면서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잠시 뒤, 그 남자분이 앞으로 고개를 푹 숙이는 거였다. 청년인 듯 보여서 '공부하느라 피곤했나 보다.' 하는 생각에 조금 안쓰러워졌다. 



두 정거장 정도를 지나갔을 무렵부터 이 청년의 몸이 살짝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상반신을 왼쪽으로 기울이는데 바로 그 왼쪽에 내가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몸이 심하게 기울어진다 싶을 때면 문득 잠에서 깨어 똑바로 앉기도 했다. 그렇게 몇번인가를 기울어졌다가 깨어 똑바로 앉았고,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알퐁스 도데는 '별'이라는 단편 소설 속에서 '편안한 얼굴로 잠든 소녀가 머리를 양치는 소년의 어깨 위로 얹은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 소설 속 소녀와 소년은 무척 낭만적인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 순수한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가 현실에는 있기 어려운 사랑 이야기로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소설 속에서 등장할 수 있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현실은 냉정하다. 그 청년의 몸이 내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현실의 냉혹함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대편에는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계셨는데, 청년의 몸이 자기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제법 못마땅한 얼굴로 청년을 힐끔 내려다 보는 거였다. 그 표정이 마치, 내 어깨에 어디 기대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히 있나. 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 청년의 몸이 갸우뚱 오른쪽으로 향하기만 하면 할아버지의 못마땅한 시선은 계속 청년을 향했다. 그때부터 조마조마함은 내 몫이 되어 버렸다. 저 청년이 저러다가 할아버지의 어깨에 머리를 내려놓으면 안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청년의 머리는 계속 할아버지의 어깨를 향했다. 그러다가도 다시 청년이 잠에서 깨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몇번을 그렇게 반복했다. 잠시 후 청년의 상반신이 좀 심하게 기울어졌다 싶자 할아버지가 행동을 개시하셨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 할아버지는 청년의 몸을 밀쳤다. 그러자 청년이 확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린 이 청년은 바로 토익책을 챙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옆칸으로 옮기는 것으로 보아 창피해서 그러는 듯했다. 내가 보기엔 행동으로 옮긴 이 할아버지가 더 창피해야 될 것 같았는데도 말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얌전히 앉아 가셨다. 






물론 나 역시 졸다가 내 어깨에 머리를 올렸다면 기분좋지는 않았을 것같다. 그렇더라도 소리가 날 정도로 심하게 밀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하철에 앉아서 가는 당신의 어깨 위에 옆자리 사람이 머리를 기댄다면, 이렇게 해주싶사 이야기하고 싶다. '살짝 손가락으로 그 옆 사람의 어깨를 밀어주세요. 그 자극 만으로도 그 사람은 분명 잠에서 깨어나 당신에게 기댄 것을 사과할 겁니다.' 라고. 옆 사람이 나에게 끼친 피해에 분풀이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행동으로 본인의 잘못을 깨닫도록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 사실 피곤해서 졸다가 어깨에 기댄 행동은 '죄송합니다.' 라고 한 번 사과하면 끝날 일이지 않은가.


작가의 이전글 따라하면 돈 아까운 레시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