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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Feb 23. 2023

나는 구축 아파트에 산다 (5)

우리집에 나말고 다른 생명이 살지 않기를.

그날은 집에서 푹 쉬는 황금같은 휴일이었다. 휴일이면 항상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곤 한다. 그날은 무려 새벽 2시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평소같으면 다시 잤을 시간이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방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가 불을 켜는데, 어둠 속에서도 무언가가 사샤삭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불을 탁 키고 보니 그것은 바로 바퀴벌레였다. 그것도 바퀴벌레'들'! 


아마도 가족이었을 그 세 마리는 내가 불을 켜자마자 순식간에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어쩜 그리 일사분란하게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는지. 정신을 차리고 마트에서 사온 뿌리는 바퀴벌레 약을 집어들었을 때에는 이미 그들 모두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 이후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뜬눈으로 내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고 (바퀴벌레가 못 들어오도록) 계속 이불 속에 있었다. 이불 안은 따뜻해서 뭔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같았다. 하지만 밖을 활보하고 있을 바퀴벌레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대로 살 수 없었다. 


아침 9시가 넘어 모든 사업장이 영업을 개시했을 무렵이 되어, 나는 전화를 했다. 해충을 눈에 안 보이게 해줄 것같은 바로 그 업체로 말이다. 그 업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해충, 공기질, 수질, 바이러스까지 건강하게 해결해줄 것으로 보였다. 상담사에게 최대한 빠른 날짜에 상담받고 싶다고 하고,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묻길래 망설이지 않고 바퀴벌레요! 하고 외쳤다. 






며칠 뒤 약속한 그 시간에 해충박멸업체(?)에서 사람이 나왔다. 우리 집에 들어온 직원은 여기 저기 살펴보며 내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이사오신지 얼마 안 되셨나요?"

"맞아요."


싱크대 밑의 공간을 들여다보며 직원이 말했다.


"아마 전에 사시던 분이 이걸 넣어놓으셨나 봐요. 바퀴벌레가 은행 냄새를 싫어한다는 속설을 믿고요."


그 공간 안에는 은행잎이 하나가득 쌓여있었다. 그걸 보며 충격에 휩싸여 있는데 그 직원은 매우 태연한 목소리로 또다시 말했다.


"아이쿠, 바퀴 문제가 제법 많은 집이군요. 여길 한번 보시겠어요?"


직원은 오래된 신발장의 문을 열어보였다. 신발장 문에 뭐가 있다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문과 신발장이 맞닿는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무언가가 붙어있었다.


"문을 열어놨다가 닫는 바람에 여기 붙어있던 바퀴벌레가 압사당한 거예요."


세상에! 그 까만 부분이 압사당한 바퀴벌레라니! 바퀴벌레가 많으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눌려서 죽은 바퀴벌레를 직원은 핀셋같은 기구로 긁어내었다. 그런 모습까지 보고 나니,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오늘은 진단만 해드리고, 나중에 계약하시면 그때 약을 칠거예요. 언제가......"

"오늘 당장 약 쳐주세요."


이미 결제할 신용카드까지 꺼내든 내 모습을 보고, 직원은 약과 설치할 덫을 꺼내었다.


"이 덫에 바퀴약을 조금씩 짜 놓을 거예요. 그러면 바퀴벌레가 이 덫에 잡히거나, 약을 먹고 죽을 거예요. 구석구석에 놓을거고 x달 지나서 와볼거예요. 약이 사람에게 해로운 건 아니니까 여기서 그냥 생활하셔도 되구요."


안녕히 계시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직원은 우리집을 나섰다. 나는 '우리집에 저말고 다른 생명만 없다면 저는 매우 안녕히 지낼 예정입니다' 라는 말을 입 안으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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