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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Feb 28. 2023

소비자는 왕?

돈을 내니까, 라는 말에 대해서

예전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있었던 일이다. 그때는 음료수를 들고 버스를 타면 안된다는 규정이 생기기 전이였다. 어떤 남녀 커플이 함께 커피를 들고 버스를 탔다. 버스가 도로를 달리던 동안 그만 남자가 들고 있던 잔에서 커피가 흘러나왔다. 흘러넘친 커피는 버스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버스 기사는 '조심하지 그랬어.' 라는 투의 말을 건네며 걸레를 가져다 그 커피를 닦았다. 그러자 남자는 족발이 아닌 욕을 입에 올렸다. 그 말에 버스 기사도 화가 나 '어디서 욕설을 하느냐!'고 말했다. 결국 커플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고 말았다. 내리면서 남자는 '돈을 냈는데 뭔 상관이냐.'고 중얼거렸다. 




내 지인 중에는 국비지원 교육의 담당자가 있다. 하루는 이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국비지원 교육을 듣는 수강생 중 불만사항이 무척 많은 수강생이 있다는 거였다. 이 수강생은 자신이 수강료를 냈으니 할말은 해야겠다며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강사의 말소리가 너무 빠르다는 것부터 시작하더니 강사의 농담이 자신이 듣기에 좀 거슬린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처음에 지인은 다른 수강생들의 의견도 들어본 뒤에 강사에게 피드백을 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수강생은 '다른 사람은 다 머리가 좋아서 이해를 잘 하는데 그럼 자기만 뒤쳐지라는 말이냐.'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수강생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강사에게 수업이 좀 빠르다는 피드백이 있다고 말하자, 강사가 대번에  '그 수강생은 복습을 해오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 이해하고 넘어가는 부분을 혼자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결국 강사의 농담은 둘째로 치더라도 강사의 말소리가 빠르다는 것은 복습을 했다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는 빠르기였다는 말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이 지인은 담당자일 뿐인데 수강생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어떻게든 수료를 시켜야 한다는 점이 참 힘들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후 수업에서 강사는 수강생들 앞에서 일절 농담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위의 두 가지 사례는 모두 자기 자신이 '돈을 내는데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지.'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다. 버스기사에게 욕설을 한 남자는 자신이 '돈을 냈으니' 버스기사가 그런 대접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뒤의 수강생은 자신이 '돈을 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버스기사에게 욕설을 한 그 행동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수강생의 요구는 복습을 하지 않아서 그 수강생만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쯤되니 '소비자가 왕'이라는 말에 의문이 든다. 돈을 내면 당연히 그 돈에 걸맞는 서비스나 재화를 받아야 한다. 돈을 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은 반대로 보면, 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서비스나 재화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돈을 냈다는 것은 그 돈에 상응하는 가치의 서비스나 재화를 받겠다는 의미이지, 그 이상의 서비스나 재화를 판매자에게 요구해서는 안된다. 만약 받은 돈 이상의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하는 판매자가 있다면, 그건 그 판매자의 호의일 뿐이다. 호의까지 그 돈에 포함되었다고 생각해서 판매자를 언짢게 하거나 기분상하게 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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