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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Mar 04. 2023

주문

불행을 부르는 주문 vs 희망을 부르는 주문

부끄러운 내 어릴적 과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렸을 때 친척 중 누군가가 사주를 봐주고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내 사주가 어릴 때 고생을 하지만 커서 성인이 되고나면 좋을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당시 어린마음에 어른이 이야기해주시니까 사주를 마음깊이 외워 두었었다. 문제는 바로 내가 초점을 맞춰 외운 부분에 있었다. 어릴 때 고생을 한다는 부분을 더 깊이 외워두었다. 사실 그 이야기는 '네가 지금 상황보다 나중이 더 나을거다' 라는 뜻으로 하신 이야기였을 거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어릴 때 분명 고생을 할 거다' 는 말로 잘못 이해했었다. 그러다보니 대체 어떤 고생을 한다는 걸까하며 어린시절 내내 궁금해했다. 왜냐하면 딱히 고생이라고 할만한 사건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미 그당시의 나는 '내게 고생, 그러니까 불행한 사건이 생길 것이다' 라고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 버렸다. 그렇게 어리석었으니, 내게 정말로 불행한 일이 생겨버린 것은 어쩌면 인과응보인 듯하다.  이후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진학한 대학에서 공부를 제대로 못 한것도 내게 닥친 고생이라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였다. 몇가지 사건을 겪으며 우울증이라는 병까지 얻고 말았었다.






몸과 마음이 성장해 어른이 되자 더이상 사주는 내 관심사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사주때문이 아니라 내가 했던 '불행이 언젠가는 찾아올거라는 생각' 때문에 내게 실제로 불행이 온거라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어린시절 나는 불행해지라고 주문을 외웠던 셈이었다.


주위를 보면 그당시의 나처럼 불행해져라, 하고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내 인생에 언제 좋은 일이 있었다고.
이거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안될텐데 뭐하러 이렇게 고생해?

와 같은 주문들이 바로 그것이다. 입에 반복적으로 담는 이 말들은 주문처럼 그 말대로의 결과를 끌고온다. 어린시절 내 경험으로 장담하건데 하다못해 사건이 터지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라도 찾아와 힘들게 한다. 그러니 이왕 외우는 주문이라면 희망적인 주문을 외우는게 더 인생에도 도움된다.


다음에는 잘 될테니 다시 해보자.

내 인생에도 햇볕들 때가 올 거야.

안 하던 것을 하는데 이거하면 당연히 달라지지!

될 수 있는데 힘들더라도 해보자!


바로 위의 주문을 읽어보면 신기하게도 마음에 희망이 차오른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희망적인 말을 더 하고 싶다는 게 바로 그 증거이다. 그러니 입에 담는 주문은 무조건 희망적인 주문으로만 담아보자. 지금 바로, 부정적인 말들에 둘러쌓여있다면 당장! 시도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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