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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Aug 01. 2023

아직 생기지도 않은 내 아이에게(3)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좋겠다

아가야, 안녕! 엄마란다. 오늘은 엄마가 새벽 4시에 일어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너에게 글을 남긴다. 


엄마가 10대였을 때 엄마의 유일한 낙은 공부를 해서 성적이 오르는 거였단다. 너도 나중에 알겠지만,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항상 성적이 오르기만 하는건 아니잖니. 그러다보니 엄마가 성적표를 받고 즐거워했던 기억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얼마 없었단다. 그 외에는 별로 재미있지도 않았고,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어.  재미있는 친구들과의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족과 여행을 가서 재밌게 논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단다.




오늘 새벽에 문득 생각났어. 엄마가 10대때 성적이 오른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 정말 기뻐해줬던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는 것이 말이야. 그건 바로 엄마 자신이었단다. 부모님은 그 성적표를 받아들고서도 잠깐 기뻐하시고는 다음엔 더 잘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라고 이야기하고 마무리하셨지. 그 이후로도 그 성적표를 보면서 기뻐했던 건 오직 엄마뿐이었단다. 엄마는 성적표를 두고두고 가방안에 넣어놓고서 울적한 기분이 들면 그걸 꺼내보곤 했어. 그러면 다시 기쁜 마음이 들곤 했거든.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단다. 엄마의 기쁜 일을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 자신밖에 없다는 게 무척 슬펐거든.




엄마가 인생을 살면서 보니까 슬픈 일이 생기면 여기저기서 다들 응원해주고 힘내라고 하고, 도움의 손길을 보내오더라. 하지만 기쁜 일이 생기면 그렇지 않아. 엄마부터도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에게 기쁜 일이 생겼다고 하면 얼굴이 굳어지고, 할말이 없어지고, 어떠한 좋은 말도 입 밖으로 잘 꺼낼 수가 없거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아가야.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교제하게 된다면 누가 되었든 간에 너의 기쁜 일을 공유하고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을 꼭 찾도록 하렴. 


네가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함께 기뻐해줄 거고 

네가 좀더 커서는 친한 친구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란다.

그리고 네가 성인이 되어서는 너와 결혼할 배우자가 너의 기쁜 일을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구나.


불행히도 이 엄마도 아직 기쁜 일이 생겼을때 함께 기뻐해줄 배우자가 없단다. 그 바람에 아직 너도 못 만났지만 말이야. 나중에 엄마가 아빠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면 꼭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온 맘 다해서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모습을 말이야. 그 모습을 보고 너역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면 좋겠구나.


오늘도 글이 길어져서 네가 읽느라 불편해져 버렸구나. 짧게 쓰는 버릇이 들어야 하는데 항상 쓰다보면 글이 길어져서 문제란다. 


네가 이해해주길 바라며,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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