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리오 Feb 02. 2023

나는 구축 아파트에 산다(3)

엘리베이터 앞에 붙은 스카치테이프

이튿날 아파트 주위 구경을 다니기 위해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가는데 허공에 뭐가 대롱대롱 달려있는 게 보였다. 왠 스카치 테이프가 하나 떡 하니 붙어 있었다. 박스용 스카치테이프인지 너비가 꽤 넓은 테이프로 보였다. 



 누가 짐 나르다가 잘못 붙이고 갔나? 이런 생각을 하며 떼어낼까 생각도 해봤지만 관리사무소에서 알아서 하시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못 본 척 하기로 했다. 밖으로 나와 근처 슈퍼마켓으로 가서 식용유를 몇 병 샀다. 무슨 튀김 요리를 한다든지, 요리를 해서 내가 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사를 왔기 때문에 이웃에 한 병씩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산 것이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1층 엘리베이터 앞에도 아파트 천장에 스카치테이프가 붙어있었다. 이쯤 되니 이 스카치테이프가 일부러 붙인 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부로 떼어내면 안될 스카치테이프로 보였다. 



 식용유를 한 병씩 쇼핑백에 담고는 옆집 문을 두드렸다. 아파트가 복도식 아파트였고, 우리 집은 그 복도의 가운데 쯤에 있었기 때문에 양쪽 옆집을 비롯한 그 복도 라인의 모든 집에 식용유를 한 병씩 돌릴 생각이었다. 내가 어느 집 사는 사람인지 알려드리고 만약의 경우 수상한 사람이 우리 집을 기웃거리거나 하면 ‘낯선 사람이 왔다갔다하면 최소한 이상하다고 생각해주세요.’ 라는 뜻도 담겨있었다. 어떤 이웃이 문을 열어줄까 궁금해하며 복도 맨 끝의 집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하는 말소리와 함께 한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었다. 할머니는 아담한 체격에 굵게 파마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내가 ooo호로 새로 이사왔다고 이야기하며 쇼핑백을 내밀었다. 

 안에 담긴 식용유를 보자 할머니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그러더니 ooo호면 우리 집보다 더 넓은 평수네, 살기 쾌적하겠다 등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혼자 사냐고 물어보셔서 대답하고, 다음에 또 방문하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걸 마지막으로 돌아서려는데 할머니가 나를 붙잡으셨다. 



 “내가 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빠삭하게 잘 알고 있어, 그러니 아가씨도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이 근처에서 장을 어디서 많이 보는지 알아? 요 앞 아파트 단지에서 월요일마다 장터가 열리는데 그때 간식거리 많이 팔아서 사람들이 종종 사 먹어. 족발, 돈가스, 떡볶이 등등 정말 맛있는 거 많으니까 아가씨도 꼭 가보도록 해.”



 첫 만남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할머니는 나에게 소소한 정보를 줄줄 읊어주셨다. 이 근처에는 대기업 마트도 많지만, 식자재 마트가 제일 싸니까 거기를 가라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다시 돌아서려다 문득 아침에 본 스카치테이프가 떠올랐다. 



 “할머니, 엘리베이터 앞에 붙은 스카치테이프같은 건 뭔가요?”

 “아, 그거? 아파트에 벌레가 많아서 끈끈이 붙인 거잖아. 아가씨가 젊어서 그걸 몰랐구먼.”



 할머니는 벌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온 몸을 살짝 떨기까지 하셨다. 그 바람에 무슨 벌레가 그렇게 많으냐는 질문을 차마 하지 못하고 그 할머니와 헤어져야 했다. 



 돌아서서 집으로 오며 생각해보았다. 처음엔 풀벌레 같은 게 많은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풀벌레가 내가 사는 7층에까지 많이 올라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였다. 따라서 풀벌레가 많아봤자 여름만큼 많을 리가 없었다. 



 다시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기 위해 장바구니를 챙겨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아까 전까지만 해도 못 보았던 벌레 하나가 끈끈이에 잡혀있는 게 아닌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끈끈이를 자세히 보았지만 아래쪽에서 보기에 벌레는 그저 엄지 손톱만한 푸른색 계열의 곤충으로만 보였다. 

 저게 무슨 곤충이길래 층마다 끈끈이가 있는 거지? 끈끈이 사는 것도 돈일텐데 아파트 관리비가 남아도나? 대충 이런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섰었다. 나중에서야 그 곤충의 정체가 바퀴벌레를 닮은 '노린재' 라는 것을 알고는 나 역시 몸서리가 쳐졌지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