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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Feb 04. 2023

나는 구축 아파트에 산다 (4)

마트 안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놓인 물건은?

평소 나는 화장실만큼은 깔끔하게 관리하려 무척 애를 썼다. 최소한 하수구 냄새가 나거나 하지는 않도록 항상 청소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이었다. 새벽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하수구 냄새 같은 게 코를 찔렀다. 


"이럴수가! 어떻게 하루만에 이렇게 냄새날 수 있지?"


중얼거리며 무심코 욕조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안에 그놈이 있었다. 시커멓고 커다란 몸집을 한 그것, 그것은 욕조의 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쪽으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헉! 바퀴벌레잖아!


깜짝 놀라서 일단 눈에 보이는 슬리퍼로 닥치는 대로 쳐서 잡아버렸다. 흉흉하게도 바퀴벌레는 매우 몸집이 컸다. 우리가 흔히 집바퀴벌레 라고 부르는 바로 그놈이었다. 그놈이 빠져나온 하수구 냄새가 조금 전 내 코를 찔렀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이 되자마자 근처 마트로 향했다. 마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 시선을 잡아끄는 물건들이 있었다. 바로 바퀴벌레 퇴치약들이었다. 뿌리는 바퀴약, 설치하는 바퀴약 등 여러가지 약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백화점에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그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있는 매장들이 가장 매출높은 매장들이라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생각나 마트 캐셔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아주머니, 여기 xx주공 아파트 사람들 바퀴벌레 약 많이 사가나요?"

"새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었나봐? 그런 것도 모르는 걸 보니."


아주머니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셨다. 그러더니 이런 말을 덧붙이시는 게 아닌가!


"여기 아파트 살려면 바퀴벌레 약은 필수지. 얼마나 벌레가 많은지 원. 어떤 사람은 종류별로 다 사간다고."


이 벌레 가득한 세상과 불안한 아파트에서의 미래라니! 내 눈빛이 방향을 잃고 마구 흔들리는 게 스스로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더라도 이미 입주는 했고, 나는 살아야만 했다.


"이거 주세요."

"설치하는 약은 필요없고?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곳에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뿌리는 바퀴약만 들고가자 아주머니가 위협적인(?) 말을 건넸다. 나 역시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였다. 하지만 당장 이번달에 나갈 카드값을 생각하고, 관리비를 생각하면 설치하는 약까지 살 수는 없었다. 이것만 달라고 얘기하고, 마트 문을 나섰다. 


이날 집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내 온 신경은 '거기 바퀴벌레가 있느냐?' 에 쏠리고 말았다. 집안 어딘가에서 못 보던 얼룩을 보면 움찔하면서 '저게 벌레인가, 얼룩인가'를 판단하기 위해 노려보았다.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멀찍이서 보더라도 움직이면 벌레이고, 안 움직이면 얼룩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아가던 어느날, 그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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