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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Feb 17. 2024

쿨하게 넘기는 방법이 있었는데.

따님 옷 사러 오셨어요?

오랜만에 고속터미널 역에 놀러갔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봄이 되었으니, 봄옷 하나 쯤은 새 것이 있어야 하지않나 싶은 생각에서였습니다.


한참 왔다갔다 하면서 봄옷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를 보는데, 치마 한 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위 말하는 테니스 스커트라고 불리는 기계 주름이 잡혀있는 스커트였습니다. 이런 스커트의 특징이 보기엔 참 예쁜데, 내가 입어보면 뚱뚱해보이고 부해보인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렇긴해도 스커트의 모양이 참 예뻐서 계속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스커트의 지퍼는 어디에 달려있는지, 스커트 길이는 어느 정도일지 내 무릎에 대어 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색깔이 예뻤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조금 더 고민하다가 사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 옷가게 직원인 듯한 여자분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마 직원분이 보기에도 제가 그 옷을 살 것같았나 봅니다.


"따님 선물 하시려나보다. 따님 옷 사러 오셨어요?"


아무 준비도 없이 한 방 얻어맞아 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 미혼입니다. 가끔 아가씨 소리도 듣고, 더욱 자주 아줌마 소리를 듣는 그런 나이이긴 하지만 말이지요. 하지만 옷가게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그 말을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요. 제가 입으려구요."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나보다 더 연상인 것으로 보이는 그 여자분은 나에게 두번째로 연타를 먹여주셨습니다.


"그 옷은 모양은 예쁜데, 젊은 애들이 입는 거예요. 어머니가 입을 만한 옷은 여기, 여기있네. 여기서 골라요."


어머니가 입을 만한 옷, 에서 또다시 얻어맞은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아, 예......"


그 말을 마치고 옷가게를 나와버렸습니다. 다른 옷가게로 가서 옷을 고르는데, 속으로는 이미 옷을 살 기분이 아니였습니다. 기분을 잡쳐버린 것이였습니다.


'꼭 그렇게 옷 보고 있는 사람한테 그 옷은 안 어울린다고 말해줬어야 했나? 아니지, 그 전에 나는 왜 거기서 내가 애가 없는 아가씨라고 말을 못 한거지?'


꿍얼꿍얼거리며 옷 가게를 몇 군데 더 돌다가 결국 지하철 역으로 다시 나오고 말았습니다. 언짢은 말을 듣고 난 후로는 예쁜 색감과 디자인의 옷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하철을 타던 그 순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여자분 앞에서 차라리 딸 옷을 사러 온 게 맞다고 할 걸 그랬네. 그리고 딸이랑 나랑 사이즈가 같아서 나한테 맞으면 딸한테도 맞는 옷이라고 하면서 입어볼 걸.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쿨하게 넘기는 방법도 있었는데, 그 생각이 왜 옷가게 앞에서는 들지 않았는지. 참 제 머리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누가 따님 옷 사실 거냐고 물으면 맞다고 웃으며 대답해줘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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