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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Feb 12. 2022

남원 혼불 문학관(2.17.)

남원여행 1

 오동도를 가는 길에 남원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전에는 여행을 하면 내가 숙소와 일정을 이번에는 딸이 앱 할인을 받고 숙소를 검색하여 지리산 아래 있는 허브밸리 근처에 있는 숙소를 잡았다.

 11시쯤 출발하여 숙소로 가는 길에 가 볼만한 곳을 검색하여 도 역에 들르기로 했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주요 배경이 되고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라고 했다.

 겨울이 아직 떠나지 않아 철도역 양 옆으로 마른 가지와 덩굴이 쓸쓸한 폐역이었지만 따듯한 햇살 아래 가을이 남긴 열매를 쪼아 먹는 새소리를 들으니 봄이 멀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폐역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 사연과 시간을 담고 있다.

 선로 옆의 키 큰 나무가 해마다 돋은 새순을 바람 따라 떠나보내고 자리를 지키듯 이 역도 그렇게 많은 사연을 세월 따라 보내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겨울 빛을 담은 자연에서 햇살의 따사로움은 다정함까지 품고 있었다.

 역사 입구의 가지 많은 나무의 높고 멀리 뻗은 가지는 긴 세월 도 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열렸던 마음 같았다.  

 그 세월의 향기를 흠뻑 맡고 '혼불'문학관에 들렀다.

 집터가 높이 있어 계단을 좀 올라갔는데 바로 보이는 처마선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과 벗한다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처마선에서 위엄과 품위가 느껴졌다.

 

 문학관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명성만 듣고 읽어야겠다 하며 대하소설이라는 장르라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작품과 작가를 그곳에서 만난 것이다.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마가 되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 하나 세울 수만 있다면.'

최명희 작가는 펜도 아닌 먹을 갈아서 작품을 쓰며 우리 정신의 기둥을 세우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작품을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간 것이다. 북이라는 편리한 물건이 있어 마음이 내키면 설거지하고 돌아서서,  누웠다 일어나서 쓰고 수정도 쉽게 할 수 있다.

 원고지에 펜으로 잉크를 꼭꼭 찍어 쓰던 시절에는 쓰는 것도 수정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지금의 몇 배는 걸렸을 것이다.

 어쩌면 글쟁이라는 못된 병에 걸린 사람만이 그 고생을 감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 정신은 더 투철하고 절실했을 것이다.

 최명희 작가님은 펜도 아닌 붓으로 먹을 갈아 작품을 쓰셨는가 보다.

 작가 정신이 담긴 이 글귀를 읽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났다.

 문학을 좋아하지만 늘 다른 일에 쫓기다 50이 되어 우연히 듣게 작가로 살고 있는 나에게 그분의 한마디는 나의 안이한 삶에 대한 책임감을 깨닫게 했다.

 문학관 내에 있는 작가의 집필실을 보며 그분의 마음을 내 마음에 담아본다.

 이른 나이에 투병하면서도 글을 쓰다 세상을 떠난 그 작가의 문학에 대한 사랑, 따뜻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나도 담아볼 수 있을까.

  김병종 화백님께 쓴 긴 편지에서도 한글 자모 하나하나에서 올곧고 깊은 마음이 느껴진다. '혼불'의 장면 설정 세트 앞에 멈추면 작품의 구절이 나오는 구성도 참 좋았다.

 딸이 요즘은 컴퓨터로 글을 쓰니 작가 기념관 만들 때 원고는 전시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한다.

 손글씨를 꽤 많이 썼던 시대의 사람들은 속도가 느린 만큼 마음을 오래 담고 글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관이 작가의 삶과 문학정신을 담는 곳이니 꼭 글씨만이겠는가.

 혼불 문학관에서 머문 시간이 한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많은 깨달음과 작가의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올해는 혼불을 혼울 담아 읽어 봐야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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