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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Jan 24. 2023

제주 여행과 올레로 펜션

좋은 전망과 친절한 망고주스의 기억

 73세로 방송통신고를 졸업한 이모님과 함께 처음으로 내가 계획하는 2박 3일의 제주 여행을 갔다. 떠나기 전 이모님께 졸업여행이라 하자고 했다.

 평소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긴 하지만 연세가 높으신 이모님에게 무리가 되지 않아야 하니  어느 오름을 가야하나 올레길은 몇코스를 가야하나 고민하며 숙소는 어디로 해야할지 고민하며 검색했다.

 여행 가기 전 여행 장소와 숙소를 검색했다.

 아무래도 공항에서 멀지 않고  최대한 바다 가까이 있으면서 너무 한적하지도 않고 시끄럽지 은 곳이어야 다는 생각을 갖고 코스를 짰다.

 숙소는 지도를 보고 해안선에 가까운 곳, 바다 전망 사진이 좋은 곳을 골라 홈페이지 사진과 설명을 봤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숙소에서 쉬는 시간이 길어질 지도 모르니 전망 사진을 자세히 살펴봤다.

 사실 사진을 보고 갔다가 실망한 적도 있어서 사진과 리뷰도 살폈다.

 아파트도 단지가 크면 주변 상가나 지역으로 걸어 나가기가 힘든 것처럼 숙소도 수영장이나 사우나 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아니면 굳이 큰 숙박시설이 아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사방이 그림 같이 아름다운 제주에서는 주차하기 좋고 바다로 가기 좋은 곳이면 된다.

그렇게 고른 것이 제주 올레로 펜션을 거의 한달 전에 예약했다.

전 객실 바다 조망, 연박 할인이 있어서 가격도 적당했다.

 여행 당일 비행기 탑승 시간은 10시 38분이지만 수원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여유있게 공항에 가려니 이모님께서는 6시 30쯤 집에서 나오셨다고 했다. 그래도 별로 출출하지는 않아 우리는 공항에서 호빵을 한 개씩 먹고 탑승하였다.

 12시 5분에 제주에 도착하여 셔틀버스 타고 렌트카 업소로 가서 차를 타고 공항 근처 장인의 집으로 가니 1시가 넘었다.

 문어 먹물로 흑색 만두피를 만든 만두와 초록, 주황 흰색이 있는 사색 만두와 문어, 전복이 있는 전골을 먹었다. 시장기를 달래며 여유있게 먹고나니 2시가 넘었다.

 첫 코스는 겨울 제주 여행의 백미인 동백을 보러 카밀리아 힐을 갔다.  12월에  일부만 피었던 동백이  1월 초에 만발하였다가 최근 내린 눈으로 많이 졌다고 했다. 꽃송이째 떨어지는 동백보다 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산다화류와 유럽 동백이 많이 피어있었는데 제주 동백 사진에 본 것처럼 많지는 않았다. 아직 피지 않은 동백은 1월 말에서 2월 초에 다시 만발할 것 같다.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동백블렌딩 차를 마시고 느긋하게 사진을 찍고 걷다가 싸락눈이 내리는 걸 보며 숙소로 갔다.

 올레로 펜션의 주소는 제주 일주서로인데 이호테우 해변에 가깝고 근처 도로변 맥도날드 옆 골목으로 내려가니 숙소 앞에 바로 주차할 수 있었다.

 홈페이지에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짐을 가볍게 가져 오라는 세심한 주의 사항이 있어  작은 트렁크를 들고 사무실로 가니  차분하고 인상 좋은 주인장이 우리를 2층 방으로 안내해 주고 욕실도 바깥 전망이 보이게 되어 있으니 커튼을 사용하라고 알려준다.

이번 여행이 행복했던 이유 중 하나가 2층 방이었던 것 같다.

 밖으로 나오기 좋고 바다가 잘 보이면서도 멀지 않고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눈높이가 잘 맞는 2층 방은 어느 전망 좋은 카페 부럽잖았다.

 지도에서 해안선이 가까운 곳인 만큼 바다가 테라스에 펼쳐진 느낌이었다.

 주인에게 저녁 식사할 곳을 물으니 길 건너 편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기에 저녁은 가볍게 고등어 구이를 주문했는데 이 또한 잘 구워져 맛나고 고등어 크기도 작지 않았다.

 저녁 먹을 장소를 안내해 주면서 주인은 망고주스 드시고 싶으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고등어 구이를 먹고나서  당연히 망고 주스 생각 나서 사무실로 가니 주인이 망고주스를 바로 갈아서 주었다.

 방으로 가져와 먹는데 망고만 갈아넣고 진해서 물을 타서 마셔도 진하고 맛있었다.  

사람의 작은 친절은 결코 작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주스를 갈아주는 것은 가정에서 가족에게 해주는 것도 큰 정성이 담긴 일이다.

이모와 나는 그렇게 맛있는 망고 주스를 마시며 친절한 주인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날 여정을 마무리 했다.

제주에서는 일정 하나만 보냈지만 아침부터 저녁 8시가 넘은 시간까지 신경쓰고 움직였더니 피곤이 밀려왔다. 샤워를 하고 짐 정리를 하고 난 이모님은 제주 방언에 관한 책을 한번 훑어 보고 깊이 잠드셨다.

 나도 사무실에서 빌려온 제주 방언에 관한 책을 좀 보고 TV를 보다 다음날 먹을 곳과 들를 곳을 찾아보았다.

 주스를 가지러 사무실에 갔을 때 한쪽 모서리쪽에 책이 있었고 꺼내보니 가져가서 보라고 기꺼이 빌려 주었다.

 패키지 여행을 하면 가이드가 제주 방언을 몇 마디 가르쳐 주었다. 지금은 잊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몇마디 찾아보고 싶었는데 책꽂이에 제주 방언에 관한 책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가볍게 보기 보다는 논문 형식이었는데 제주 방언의 어미에 대한 이해가 조금 생겼다.

올레로 펜션 앞

 다음날 아침 6시 전에 잠이 깨어 바다를 바라보다 이모랑 둘레길을 걷고 아침을 먹자고 했다. 아침을 먹기 전 바닷길 산책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침마다 손에 붓기가 있던 내게 참 상쾌하고 좋았다. 앞마당 나가듯이 잠바만 입고 나가서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사진도 찍었다.

문득 파도는 뭐라하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저 먼 곳에서 파도치는 인생을 살다 온 두 여인에게 아침 파도가 들려주는 말과 저녁 파도는 서로 다른 말을 할까, 같은 말을 할까. 분명한 것은 둘 다 위로와 환영의 말이 아닐까 싶었다.

 저 멀리 보이는 빨간 등대에 붉은 빛 불이 들어오는 시간까지 맞추어 사진을 찍어주신 이모님은 여행의 좋은 벗이었다.

 이른 아침 사진을 찍고 있었더니 다소 쌀쌀하여 숙소로 들어가 딸이 사준 바샤커피를 내려 마셨다. 숙소의 수도 옆에 정수기가 있어서 차끓이기도 좋았다. 

따끈한 숙소에서 몸을 좀 녹이고 용두암을 구경하고 기념품점에서 졸업 선물로 이모님께 모자를 사드렸더니 여행 내내 쓰고 다니셨다.

 성게 미역국과 김희선 몸국을 아침으로 먹었다.

 몸국이 무엇인가 했더니 모자반의 제주 사투리라고 한다. 쑥 비슷한 향인데 해초이다 보니 톳과 비슷한 모양이기도 했는데 먹고나니 개운한 것이 가벼운 아침으로 좋았다.

 내가 이렇게 숙소를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은 상업적 목적은 없다. 사실은 쓰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계절마다  그곳에 가서 쉬고 싶은데 안그래도 좋은 위치와 깔끔한 숙소가 조금이라도 홍보되어 내가 쉬고 싶을 때 빈 방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장님은 홈페이지 리뷰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 줄 정도로 펜션 경영에 진심인 분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2박3일의 여행을 다녀와서 이모도 나도 한달을 쉬고 온 것 만큼 푸근하고 든든한 데는 이 펜션과 주인장의 따뜻한 마음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에 진심인 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지며 나도 내 일을 저렇게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사려니 숲길과 이중섭 미술관을 들르려 하였으나 사장님이 시간되면 금오름을 가보라고 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코스를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목적지를 금오름으로 향했다.

 초반에는 말똥 냄새를 좀 맡았지만 목장을 내려다 보며 오르는 길이 힘들지도 않고 시야가 트이고 저 멀리 말과 제주의 모습이 두루 보여서 좋았다.

특히 입구에서 먹은 한치빵은 한치 냄새도 진하게 나고 맛있었다.

 시야가 탁 트인 오름을 10분 정도 오르니 커다란 분화구도 보였다. 오름을 올라가니 저 멀리 작은 섬과 바다가 보였다.

지난번 갔던 원시림 같던 거문오름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오르는 길에 노랗게 열린 비자나무 열매가 쓸쓸한 겨울 숲에서 먼데서 온 손님을 맞이하듯 걸려 있었다.

 다시 일주로로 돌아와 제주 해물궁이라는 음식점에서 문어 전복 전골을 먹었다. 공항에서 먹은 전골도 전복과 문어가 들어갔지만 문어 전복 전골에 들어간 문어는 훨씬 큼직했다.

가볍게 오름을 올랐으니 다음에는 바다로 갔다. 닭머르 해변길을 차로 가다 멈추어 바다를 보고 또 가다 파도를 보고 정자에도 올라보며 함덕해수욕장으로 갔다.

가는 곳마다 이모님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이런 구도로 찍어달라고 하니 이모는 그렇게 찍어주셨다.

 등대 앞에서 펄쩍 뛰어보시라 했더니 생기 발랄한 모습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모님의 모습이 찍혔다.

 혹여 무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모님은 너무 행복하게 여행하며 나도 어른이랑 다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 편하게 길을 걸었다.

 작년에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쓸쓸하시겠지만 공부하고 농사짓도 작은 아들 점심도 해다 주며 바쁘게 사시며 자녀들에게 그 쓸쓸함을 짐지우지 않고 열심히 사셨다. 함덕해수욕장의 물은 더 깊고 밝은 옥색이었다.

바다 위까지 델문도 카페 테라스가 있어 고요하고 깊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바닐라 라떼와 빵으로 저녁을 간단히 때웠다. 창가쪽 자리는 비는대로 사람이 바로 찼다. 저녁이 되니 가슴 속까지 바다가 가득 차서 뿌듯하고 시원했다. 제주 여정에 대한 글을 따로 쓰려 하였는데 숙소에서의 느낌이 사이사이 있어서 말을 하게 된다.

둘째날은 함덕해수욕장에서 마무리하고 편의점에서 음료와 간식거리를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녁에는 왈츠스텝을 이모에게 가르쳐 드렸더니 금방 배워 커플댄스가 되도록 잘하셨다. 혼자 계실 때도 가벼운 운동이 되는 동작만 가르쳐 드렸는데, 적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와 달리 이모는 무엇이든 금방 배우신다. 운전하며 식당을 검색해보라고 했더니 검색하시고 사진 구도도 무엇이든 금방 배우니 칠순이 넘은 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배움에 열정이 있고 부지런히 산 만큼 이모님의 뇌는 사십대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세째 날도 올레로 펜션 앞 둘레길을 등대까지 걷고 안도타다오가 건축한 건물인 본태미술관으로 갔다. 쿠사마야요이의 밝은 색 호박 앞에서 사진을 찍고 빛이 변하는 거울방에서 신기한 체험을 했다.

 백남준 작품과 전시된 도자기와 동양화 병풍 그림까지 이모님은 열심히 보고 설명을 읽으며 좋아하셨다.

 애월읍쪽에서 갈치구이를 먹고 카페에 들러 차 반납까지 비행기 탑승 시간에 맞게 제주에서의 여정을 끝냈다. 이모님은 초코렛을 선물로 사주시고 김포공항에서 저녁도 사주셨다.

나는 혹여라도 이모님이 힘들까봐 걱정했는데 이모님은 다음날도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다니셨다.

동행한 이모님께도 배움이 있는, 펜션 주인의 자신의 일에 임하는 자세를 보고도 배움이 있는 뜻깊은 여행이었다.

본태박물관 담장 앞 이모님

#제주#여행#동백#카페#박물관#제주 펜션#올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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