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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Jan 23. 2023

설날 떡국

무염떡국

삼십여 명이 모여 지내던 명절을 몇 년 전부터는 동서네 네 식구와 시동생 두 명과 시어머니 11명 또는 10 명이 지내게 되었다.

동서네는 추석이든 설이든  전을 부쳐오고 나는  떡, 만두, 나물, 잡채나 불고기를 준비한다.

동서는 '뭐 더 할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라고 예쁘게 말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전을 기꺼이 해오는데, 게다가 내가 한 나물을 맛있게 먹고 설거지도 앞장서서 후딱 하는데 더 무얼 랄까.

시어머님의 식기세척기에는 안 쓰는 그릇이 잔뜩 있어서 사용하는 게 번거로워 그냥 한다.

어떤 친구는 동서가 깐족거리는 바람에  학교 다닐 때 누구랑 싸운 적도 없던 그 친구가  머리끄덩이를 잡고 서와 싸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혼하고 당신 아들이 최고 신랑감이라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적지 않았지만 사촌동서까지 모여 명절을 보내던 시절 동서와 사촌동서 모두 성격 좋고 마음 씀씀이도 예쁜 사람들이라 거의 삼십 년을 지낸 지금  그들과도 깊은 정이 들었다. 가족인 것이다.

그중 우리 동서는 사람이 더 반듯하고 진중하다.

조카들과 우리 아이들 여덟이 모여 지낼 때도 옹기종기 모여 노는 모습들도 예뻤다.

시어머님께서 국 국물을 우리고 산적과 생선은 준비하셨는데 올해부터는 며느리들이 다 알아서 하셨다기에 며칠 전 한차례 끓여 낸 사골과 우족을 우려 국물을 만들었다.  양지도 삶아  고깃살을 찢어 양념해서 고명 고기를 준비했다.

예전에는 계란 흰자와 노른자로 지단도 준비했지만 그것은 생략했다.

제는 꼬맹이들이 자라 대학생이 되고 우리 집 아이들도 취업을 하였다.

그래도 명절날 모여 준비한 음식을 잘 먹고 오랜만의  만남을 즐기니 음식을 준비하며 수고롭기는 하지만 모두 맛있게 먹을 생각에 정성이 더해진다.

명절을 포함한 연휴를 가족 여행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머님 생각을 굳이 거스르고 싶진 않다.

둘째가 대학 가고 한번 설 연휴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긴 하다.

그때는 어머님께 죄송하여 두고 드시라고 손만두를 100개 만들어 미리 갖다 드렸다.

동서네가 새우튀김을 해올 것이지만  냉동실에 둔 새우뿔에 찔리고 나니 얼른 먹어야겠다 싶어서  그것까지 튀겼다.

수정과도 내 방식대로 계피는 약하게 넣고 인삼과 대추를 넣어 차처럼 달였다.

나이를 먹었는지 수고스럽기보다  가족들한테 따뜻하게 밥 한 끼 준비한다는 마음이 든다.

마음을 쓰느라고 썼는데 정작 진하게 끓인 국물에 떡만둣국을 다 들 먹고 나서 국이 좀 싱겁네요 한다.

아이고, 고명 고기를 짭짤하게 양념을 하긴 했지만  국 국물에는 간을 하나도 안 하고 상에 소금도 놓지 않은 것이다.

시동생이 반찬하고 먹으니 괜찮아요, 하긴 했는데 좀 더 맛있게 먹을 국이 밍밍하였을 생각을 하니  아쉽긴 하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고들 말하니 고맙다.

약지 손가락에 문제가 좀 생겼다고 했더니 동서가 제기부터 식기까지 부지런히 설거지를 했다.

요리를 잘하는 시동생이 전은 같이 부치든지 도맡아 하던지 했을 것이다.

제가 설거지는 잘해요 라며 웃는다.

그래도 고맙다.

점심을 먹고 난 설거지는 시댁에서는 처음으로 남편이 나서서 했다.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시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오래전부터 사위가  다림질도 잘하고 김치찌개도 잘한다고 말씀하셔도 당신 아들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셨을 어머님인데.

세월이 가고 시대도 변하고 나이를 먹으며 가족의 모습도 변한다.

명절의 모습도 서로 이해하며 화평하게 지내는 방향으로 바꿀 것은 바꾸고 그대로 갈 것은 가면 될 것이다.

올해는 조카 한 명이 군대에 가서 참석 못했는데 내후년에도 둘째 조카가 군에 가고 참석자가 바뀌기도 할 것이다.

결혼 초에 모두가 시댁 어른 뿐인 명절을 보내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는 모난돌이었고 일손도 더디고 벅적이는 분위기가 피곤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몽돌이 된 느낌이다.

무소금 떡국을 맛있게 나누어 먹은 올 설날, 가족들의 모습도 밀려오고 밀려가는 바닷물을 받아들이는 몽돌처럼 둥글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명절의 의미는 제사보다는 가족이 모여 음식을 먹으며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피자를 놓든 산적을 올리든 가족이 잘 먹는 음식이면 좋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시 작은 어머님 두 분이 '만두는 속 먹는 만두니 크게 해야 한다', 다른 한 분은 '만두는 한입에 쏙 들어가야 한다'라고 옥신각신 하시더니 결국 둘째 작은 어머님 생각대로 크게 만들었다. 다음날 막내 작은 어머님은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또 만들어 오셨다.

이 정도 다툼은 아름다운 결말이라 하겠다. 나에게 막내 작은 어머님은 사기그릇을 스테인리스그릇으로 바꾸어 주셔서 설거지를 훨씬 쉽게 해 주신 분이다.

본인이 형님 생각에 더  반대하기 어려우니  명절음식을 큰 집에서 하고 범에 돌아가 만두를 더 하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착하고 부지런한 분이셨는데 어느새 고인이 되셨다.

큰 만두도 좋고 작은 만두도 좋다. 한 그릇의 떡국에 색도 여러 가지 크기도 여러 가지 만두가 있어도 좋으리라.

모두가 정겨운 웃음 지며 따뜻하게 한 그릇 먹을 수 있다면, 떡국이 아니고 떡볶이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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