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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May 31. 2023

사람과 사람을 생각하며

혜환 이용휴의 글을 읽고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에도 자신의 노예를 풀어 준 사람들이 있다.

조선시대에 김시습도 그러했다.

오늘날은 법적으로 노예는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자본과 권력 아래 사람들의 삶이 자유롭다고만은 할 수 없다.

  '법은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말을 학창 시절 사회 선생님에게 들은 적이 있다.

법만 지킨다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사의 모든 것을 법으로 정할 수 없고 대부분 문제가 발생하고 가능한 한 인권을 지키기 위해 미처 세워지지 않은 법이 따라가 입법되고 있다. 그것이 국회의 일이다.

  권력과 부를 가진 누군가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를 악용한다면 법은 더욱 촘촘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입법권을 가진 사람들은 어쩌면 신의 영역을 대신하는 것인 만큼 진실해야 하고 선거에 출마할 때의 초심을 지켜야 할 것이고, 주변 사람들도 자신의 권력을 힘입어 호가호위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 당연한 진실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보며 새롭게 와닿는다.


人與人相等(인여인상등)하니

(사람〔人〕과〔與〕 사람〔人〕은 서로〔相〕 평등하니〔等〕)

官何居民上(관하거민상)이리오?

(관리[官]가 어찌〔何〕백성〔民〕위〔上〕에 있겠는가〔居〕?

爲其仁且明(위기인차명)이라야

그〔其〕가 어질고〔仁〕 또〔且〕 밝게〔明〕 해야〔爲〕,

能副衆所望이라.(능부중소망)

 뭇사람〔衆〕이 바라는〔望〕 바〔所〕에 부응할〔副〕 수〔能〕 있네.  

    이용휴, “탄만집”, ‘송홍광국성령공지임서하(送洪光國晟令公之任西河)’


  최근에 이용휴의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산문집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는데, 교과서에서 또 이용휴를 만나게 된다.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그 말이 더 깊이 와 닿는다.

 이용휴는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조카로 그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나 노론이 득세하던 시절 당파가 달라 벼슬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

그래도 당대에 그의 새로운 문풍을 배우러 오는 문하생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산문집을 읽으며 부드럽고 인생을 꿰뚫는 지혜와 사람을 바라보는 섬세하고 따스한 눈길이 느껴졌다. 메모하고 줄치고 보느라 읽기 시작한지는 두어 달 되었어도 아직 삼분의 일 쯤 남아있다.

  권세라는 것이 탐하는 사람, 그래서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는 아주 작고 당연한 진리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그래서 벌거숭이 임금님이라는 우화도 나왔는지 모른다.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들은 제도적으로 세상 형편에 따라 자신의 능력에 맞게 세상을 경영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해서 원망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그들이 남긴 지혜와 정신적 유산이 만세를 가게 한다.

  현실에 쫓기며 깊이 있는 전공 공부를 놓은 지 오래 된 내가 혜환의 산문집을 펴들고 오래된 고택에서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듯 행복하게 고전의 향기에 푹 젖었다.

  이 책을 번역한 송혁기 교수는 이십여 년 전에 잠시 이름을 듣고 일로 통화를 했던 분인데 그 짧은 대화에서 깊이 있고 다감한 성품을 느꼈던 분이다. 그분의 서평과 번역으로 이루어진 혜환의 작품을 함께 읽으며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넘어가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책 제목과 같은 그의 시를 올려 본다.


         나에게 돌아가기-환아잠(還我箴)

   

나 그 옛날 첫 모습은

순수한 천리 그대로였는데,

지각이 하나둘 생기면서부터

해치는 것들 마구 일어났네.


뭐 좀 안다는 식견이 천리를 해치고

남다른 재능도 해가 되었지.

타성에 젖고 인간사에 닳고 닳아

갈수록 그 속박을 풀기 어렵네.


게다가 다른 사람 떠받드는 이들이

아무개 어른, 아무개 공 해 가면서

대단하게 끌어대고 치켜세워 주니

몽매한 이들을 꽤나 놀라게 했지.


옛 나를 잃어버리고 나자

참 나 또한 숨어버리고,

일을 위해 만든 일들이

나를 타고 내달려 돌아올 줄 모르네.


오래 떠나 있다가 돌아갈 마음 일어나니

마치 꿈 깨자 해 솟아오르듯.

몸 한번 휙 돌이켜 보니

벌써 집에 돌아와 있구나.


주변의 광경은 달라진 것 없는데

몸의 기운 맑고 평화롭도다.

차꼬를 풀고 형틀에서 벗어나니  

나 오늘 새로 태어난 듯!


눈 더 밝아진 것 아니고

귀 더 밝아진 것도 아니라,

하늘이 내린 밝은 눈 밝은 귀가

옛날과 같아졌을 뿐이로다.


수많은 성인이란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

나는 나에게 돌아가기를 구하리라.

갓난아기나 어른이나

그 마음은 하나인 것을.


돌아와 보니 새롭고 특이한 것 없어

다른 생각으로 내달리기 쉽지만

만약 다시금 떠난다면

영원토록 돌아올 길 없으리.

분향하고 머리 조아려

천지선명께 맹세하노라.


이 한 몸 다 마치도록

나는 나와 함께 살아가겠노라.


#혜환 이용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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