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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Jan 04. 2024

정조대왕의 은택

 융건릉에서 어치를 만난 날

  그저 글을 쓰고 싶어 하고 글감이 잘 준비된 분을 문학회에 소개했을 뿐인데 등단하시고 당선 소감에 내 이름을 올려주셨다.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근무하는 학교에서 이동하는 내 삶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유가 있나 보다라고 생각될 때도 있다.

  때로는 암치료를 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분과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고 특성화고로 전향하는 학교에 근무할 때는 내신점수 높은 신입생을 몇 명 영입하고 관리자로부터 귀인을 만났다는 도 넘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사실 지역에 그런 특성화고가 생긴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기에 한 일이었다.

  2년 전 근무했던 학교에서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글을 쓰고 싶은데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들었다.

 퇴직을 앞두고 이야깃거리도 잘 준비된 예비작가 선생님이었다.

 나는 브런치와 내가 공부했던 문학회를 소개했다.

 그분은 문학회 지도 선생님과 통화 후 바로 수업 등록을  하셨다.

 첫 번째 수업 과제를 하셨다며 내게 읽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글에 대해 내 의견을 말씀드렸고 며칠 뒤 글을 수정하셨는데 이미 훌륭한 작품이 되어있었다. 어려서부터 작가의 꿈을 오롯이 간직해왔다고 하신 만큼 기본기가 있었다.

 그다음 해에 그분은 퇴직하시고 문학회 수업을 꾸준히 들으셨다.

  수업을 들은 지 2년 되었을까.

  지난 12월 등단하였다고 연락이 왔고 오늘 내게 밥을 사겠다고 했다.

 내가 밥을 얻어먹을 일을 한 것인가.

 이미 잘 준비된 작가를 글쟁이 마당에 소개했을 뿐인데. 어쨌든 한번 보고 축하해 줄 겸 약속을 잡았다.

 그분과 함께 6개월 근무한 학교에서 정답고 맘통하는 동료선생님을 한 분을 만났고,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한 예비작가를 문학회에 소개했다.

  그 해는 나에게도 내가 만났던 분도 서로에게 만남이 길이 되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예비작가님, 이제 등단 작가님이 같은 아파트에 산다.

 등단작에 나온 소재인 겨울 목련, 나도 아파트 현관을 나설 때마다 바라보던 솜털에 싸인 은빛 꽃봉오리였다. 그 분과 내가 같은 생명을 바라보며 마음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오늘 그 신인 작가이자 한때 동료교사였던 분과 동네 공원을 걷고 밥을 먹기로 하였다.

 아침 뉴스에서 미세먼지가 많다는 말을 듣고 아무래도 나무가 많은 곳이 낫겠다 싶어 동네 공원 대신에 융건릉을 가자고 했다.

소나무가 많고 부드러운 흙길이 많은 평지라서 융건릉은 마음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곳이다.

  맑은 날도 좋지만 비가 오고 습기를 머금은 숲은 더 좋다. 짙은 나무 향은 숲이 우리에게 속마음을 터놓고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함께 마시려고 내려간 블루마운틴 커피를 마시며 신인 작가 선생님은 행복해하셨다.

  갈참나무잎은 겨울 손님맞이를 위해 깔아놓은 갈색 카펫  같아 숲이 살아서 손님맞이를 하는 듯했다.

  안개가 걷히고 서서히 빛을 드러내는 햇살도 정겨웠다.

  융릉 옆으로 난 길을 걷는데 검은색 줄무늬 사이로 노르스름한 깃털을 안은 작은 박새가 느긋하게 모이를 먹고 있었다.

위에는 소나무 잎뿐인데 무얼 먹는지, 작은 발걸음 소리에서 멀리 나는  동네 산에서 보던 박새와 달리 이들은 사람 발걸음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도망가기는커녕 내 옷 위로 날아와 앉아 놀라서 내가 소리를 치고 말았다.

 허허, 사진 한 장 찍으려 하면 이 가지  저 가지, 위에서 아래로, 저리로 훨훨 날아가던 새인데, 느긋하다 못해 사람 위에 앉다니 참 신기하다.

 좀 더 걸으니 저 쪽에 암갈색 몸통에 푸른색과 노르스름한 옆 날개를 가진 새가 난다.

 좀 있다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소리쳐서 나도 비슷하게 흉내 내니 몇 마리 같은 새가 난다.

  신인 작가 선생님은 새들이 예쁘다고 감탄사를 연발하신다.

  이곳을 여러 번 왔지만 새들을 가까이서 이리 보기는 처음이다.

 결국 나중에 만난 녀석의 모습은 제대로 찍지 못했는데 집에 와서 검색하니 어치라는 새였다.

  목소리도 내가 들은 소리와 같다.

어치, 영리하기로 소문난 새라네요

  박새는 귀엽고 소리도 예쁜데 어치는 목소리가 곱지는 않다. 개구쟁이 아이가 소리치는 것 같다.

 이렇게 소나무 가득한 숲을 걷고 나니 손에 있던 부기가 빠지고 개운하다.

  이곳은 이렇게 걷기 좋고 소나무 길이 좋아  걷기 힘들어하시는  친정어머니하고도 몇 번 왔던 곳이다.

 정조대왕의 효심으로 만들어진 곳이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은택이 된다는 생각이 이곳을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점심은 융건릉 앞에서 진한 미역국 정찬을 먹었다. 따뜻한 겨울날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시간 넘게 밖에 있었더니 조개 가득한 진한 미역국이 보약 같다.

 두세 시간밖에 못 자며 학기말 업무를 하던 피로가 싹 가신 듯하다.

  지나갈 인연인 줄 알았는데 이제 한쪽 발을 같은 방향으로 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행할 선배교사이자 작가님과 신년 초 행복한 동행이었다.

 깊은 속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던 정조대왕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마음 한 자락 따뜻하게 할 글귀를 쓸 수 있길 바라며 신년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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