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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Jan 07. 2024

숨어 우는 바람소리

이정옥 원곡, 전유진 현역가왕 전

   수필 공부를 하면서 같이 공부하는 문우님들의 글을 읽으면 작가의 얼굴과 평소 모습이 떠오른다.   수업을 할 때는 과제로 해온 작품을 본인이 직접 낭송하기에 더욱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다.

작품에 드러나는 작가의 시선과 관점, 어투성격, 철학 등 내가 알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작품 사이를 넘나 든다. 때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깊은 내면이 작품에서 드러때도 있다.

  오랜만에 갈대 우거진 겨울 저수지를 걷다 보니 언제인가 한 작가 분이 '숨어 우는 바람 소리'라는 을 써 와서 읽던 생각이 났다. 

  보통 갈대 소리는 쓸쓸한 속삭임이나 울음으로 들린다. 가을 잎들이 지고 갈대만 남은 저수지에서는 갈댓잎을 지나는 바람 소리는 더욱 가슴 속을 파고들며 크게 들린다.

  혹시 수필 제목이 가요에서 가져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이정옥이라는 분이 부른 '숨어 우는 바람 소리'라는 가요가 있다.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 집 창가에

  길 떠난 소녀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


  김이 나는 차 한 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그 사람 목소린가

  숨어우는 바람소리


  둘이서 걷던 갈대 밭길에

  달은 지고 있는데

  잊는다 하면 무슨 이유로

  눈물이 날까요

  아아, 길 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이 돌아오면

  쓸쓸한 갈대숲에

  숨어 우는 바람 소리


  숨어우는 바람 소리라는 수필을 썼던 작가분은 큰 수술을 하고 입원 중에 같은 병실에서 만난 환자의 사연을 글로 썼던 것 같다.

  작품 내용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작가 본인 처한 뜻하지 않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오십 대 중반을 넘은 연세에도 맑고 귀여운 얼굴에 늘 선함이 느껴졌던 선배 작가님을 문병하며 우리는 그분의 회복을 간절히 기원했다.  문우로서 함께 글을 쓰고 읽을 날이 속히 돌아오길 바랐다.

  다행히 남편의 지극한 간호로 잘 회복하셔서 행복하게 사시며 근래에는 손녀를 보며 느끼는 행복을 글로 쓰기도 했다.

  그 이후로 많은 날들이 지나고 숨어 우는 바람 소리라는 구절을 떠올린 적은 없었는데 그때 읽은 작품이 내 마음의 숲 낙엽더미 아래서 싹을 틔우고 있었나 보다.

  5,6년은 되었을 그 제목이 수년을 지나온 이 갈대밭을 걷다 문득 떠오르다니 참 신기하다.

  이 갈대는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누구의 아픔을 대신 울고 있었을까.

  가을이면 곱고 화사하게 물드는 단풍대신 마음을 비우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 가는 줄기 사이로 아픈 바람을 보내었을까.

  저녁 햇살을 받은 갈대는 황금빛 무대 위의 주인공 같다. 저수지에 비치는 석양빛은 잔잔히 갈대에게 손을 내민다. 이때만큼은 갈대의 울음은 쓸쓸하지 않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내게도 노랫말처럼 갈대밭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취업 시험을 치른 큰딸과 순천만 갈대습지를 걸었다. 

  취업 시험은 입시 못지않게 인생의 큰 언덕이고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 너머 있는 풍경을 알지 못해 힘겹고 쓸쓸할 때 갈대가 있는 풍경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남편과 해 질 무렵 재인 폭포 가는 길에 갈대 핀 오솔길을 걸은 적이 있다.

그 길이 확장되어 작년에 가보니 고라니나오던 갈대 핀 길이 사라졌다.

그때는 밤에 봐서 억새인지 갈대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쓸쓸한 느낌이 갈대 같았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  근무하며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남편과 늦가을 저녁 걸었던 그 길은 인적이 없어서 쓸쓸함이 깊게 느껴졌다.

  지금은 동네 저수지를 혼자 걸을 때 늘 그곳에 있는 갈대가 좋다. 그리 쓸쓸해 보이지도 않는다. 겨울 물가의 친구 이 정겹다.

  얼음 언 겨울 저수지에 갈대가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외롭게 서서 누군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이 갈대의 매력인가 보다.

  사람도 그렇다. 따뜻한 위치에서 모든 것 다 가지고 자기 것만 지키려고 남을 춥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갈대처럼 추운 자리에서도 남의 외로움을 달래고 온기를 나누며 남의 추위를 가려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가슴속 자신의 아픔은 스치는 바람에게만 전하는.

연초에 만난 저수지의 갈대처럼 누군가의 아픔을 들어주고 덜어주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숨어 우는 바람 소리를 흥얼거려 본다.

  원곡 가수 이정옥의 노래도 좋지만 트롯 경연에서 어린 전유진이 부른 숨어우는 바람 소리도 감동적이었다.

어리지만 꿈을 향해 경연에 참여하며 전유진이 기획사 없이 어머니와 서울을 오르내리며 남몰래 숨겼던 흐느낌도 있으리라. 경연에서는 자신의 음색과 맞는 선곡이 중요한 만큼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이 곡을 부르는 어린 가수의 노래 부르는 모습에 담긴 그녀의 삶이 아름답게 보였다.

  아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면 쓸쓸함으로 가득했던 세상 풍경이 윤슬을 머금은 물결처럼 빛난다.

그리고 자신을 위로해 준 세상의 따뜻한 호흡에 감사하게 된다.

  갈대숲 사이에 내려놓았던 슬픔은 승화되고 갈대는 또 다른 이의 아픔도 기꺼이 품어준다.

  이 겨울 갈대는 아침 햇살도 저녁노을도 모두 감싸 안고 누군가의 슬픈 한숨을 바람의 노래로 날려 보내며 겨울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갈대#바람소리#숨어 우는 바람 소리#이정옥#전유진


https://youtu.be/gbS0NrVfIyQ?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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