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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의 선생님

선생님의 가르침

by 우산

30년 그리워한 선생님과 올해 초 전화 연락이 닿았습니다.

당장이라도 뵙고 싶었지만 서로 간의 여러 사정으로 봄, 여름을 넘어 가을의 중턱이 되어서야 뵈었습니다.

'ㅇㅇ야' 하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음성이 기억 속의 음성과 같아서 금세 예전 15살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기억 속의 선생님은 눈망울도 예쁘고 자주 환하게 웃으시고 손도 예뻤습니다.

오늘도 선생님의 모습은 예전과 변함이 없고 운전하는 저에게 길을 가르쳐 주시는데 다정한 음성도 그대로였습니다. 제가 어려지고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약간 몸이 불편하셨는데 제가 운전을 좀 거칠게 했을까 걱정이 됩니다.

중요한 일정 사이 저를 만나 오늘 하루를 함께 해 주신 선생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중학교 다니던 시절 이야기, 우리 다음 세대를 가르치며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선재도 목섬으로 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추석즈음 저에게 푸짐한 과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바닷가에서 회를 먹는 것이 좋겠지만 생고기를 먹는 것이 선생님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 해물찜을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전복과 낙지가 원기 회복에 좋을 테니까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냥 굴솥밥을 드신다고 해서 그것을 먹고 낙지 만두를 포장해서 드렸습니다. 사부님과 맛있게 드시길 바라며.

어제 선생님을 만날 생각에 뭔가 해드리고 싶어 마트를 둘러보다가 얼갈이배추와 열무김치 거리가 보였습니다.

직접 담근 매실과 갈색 설탕 조금만 넣고 국내산 찹쌀풀을 쑤어 김치를 담갔습니다.

처음 선생님과 역락이 닿았을 때 인터넷으로 과일을 보냈더니 받지 않으셔서 무얼 사기보다 입맛 도는 열무김치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친구들과 같던 해변의 글램핑장이 있는 카페를 갔는데 선생님도 그곳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아, 이런!

식사 후에 평일의 여유로운 오후, 카페의 바다전망과 햇살을 한참 선생님과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리 확인을 못해 집에 가서 서류처리할 일이 생겨 그 여유는 짧게 누리고 떠나왔습니다.

오는 길이 막혀 예상보다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선생님과 어렵게 잡은 시간이 마음 바쁘게 지나가 안타깝고 죄송했습니다.

선생님을 뵌 그날까지 늘 기억나고 그리운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선생님의 특별한 친절함도 있었습니다.

학교가 파하고 근처 분식집에서 선생님께서 사주시던 떡볶이와 김말이 튀김의 맛이 생생합니다. 한창 크던 때 몇몇 학생들이 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교실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꽤 먼 길이었고 하굣길은 배가 고팠지요. 선생님은 우리 마음을 아시는지 근처 분식집으로 우리를 데려가셨습니다. 저도 교사가 된 뒤에 학생들에게 떡볶이를 사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도 그때의 우리만큼 맛있게 먹었기를 바랍니다.

모교로 교생실습 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피자를 사주셨네요. 당시의 피자는 지금처럼 흔하지 않을 때입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 담임반 학생이 아니어서 선생님이 더 그리웠는데 선생님께서는 그와 상관없이 저에게 친절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당연히 수업 시간에 재미있고 열정적인 수업을 해주셨습니다.

음악에 맞추어 시를 읽는 낭송 수업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집에서도 종종 시낭송을 혼자서 하곤 했습니다.

저를 교지 편집위원으로 추천하셔서 당시에 한문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인터뷰하고 교사 탐방 기사를 써서 교지에 싣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과 글짓기 대회에도 나갔습니다.

그때 흰 블라우스에 보라색 세미 타이트스커트, 한쪽 끝에 주름이 있는 스커트를 입은 선생님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저는 그때 대회에서 수상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시화전에도 고민만 하다 작품을 못 냈는데 어떻게 저에게 글쟁이 기질이 있다고 하셨어요?"

"과제를 자세히 읽으니 학생들의 재능과 마음이 보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같으면 평가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 당연한 일이지만 수행평가도 없던 시절 학생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제자 중에 글쓰기 재능이 보이는 학생을 코칭하여 큰 대회에서 상을 탄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학생을 발굴하여 그 학생이 글을 쓰며 학교 생활에 행복하게 적응하고 학부형에게 감사 인사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하십니다.

나에게 선생님은 글을 읽고 쓰는 기쁨을 알려주신 분입니다.

중학교 시절 나는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뭔가를 끄적거리며 새벽까지 있기는 하였지만 고등학교를 들어간 후에는 입시 준비를 하고 그 후는 일상에 쫓기며 50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50이 되기 전 글을 쓰는 일을 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고 그와 관련된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추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선생님은 늘 고맙고 그립고 선생님과 수업한 시간이 생생할 뿐이었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그토록 생생하게 선생님을 그리워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교단 이야기를 들으며 교단에 계신동 안 선생님은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깊었습니다.

저 개인에게 직접 해 주신 말씀보다 수업시간이나 학교 생활 내내 학생들에게 부어주신 관심과 사랑의 햇살이 지금까지 마음에 따뜻함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대부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주어졌던 기회와 관심을 선생님은 제자들 모두에게 고르게 주고 재능을 파악하고 키우셨습니다. 덕분에 학생들에게는 생기 있는 학교 생활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중년 이후에도 새롭게 변하는 세대의 아이들에게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교육을 하여 학급 자치가 이루어지고 젊은 교사들에게도 모범이 되었습니다.

밤하늘이 컴컴하여 까만색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에게 한밤중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어둠 속에서도 밝은 하늘을 바라보는 꿈을 꾸게 해 주셨습니다.

교단에서의 열정을 쏟고 퇴직하신 선생님은 지인들과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사랑하고 교육에 열정적인 모습의 선생님은 당연히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분이겠지요.

퇴직하신 선생님의 사랑이 지인들과 행복한 만남으로 이어지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선생님 뜰에서 행복을 가꾸고 계십니다.

저는 앞으로도 선생님께서 재능과 꿈을 키워준 학생들의 행복한 웃음이 모두 선생님의 웃음으로, 밝은 햇살로 선생님의 날들을 비추길 기원합니다.

십여 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치다 나의 선생님과 함께 한 어느 날, 다시 배움의 시간으로 선생님과 함께 해서 행복한 시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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