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평창 1일 여행
친구들이 강릉에 있는 딸기 농장에 가자고 지난 송년회 때 날짜를 잡아놨다.
한 달 전에 모임 공지와 신청을 받아서 나는 개인 상황이 어떨지 몰라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수원에서 차를 갖고 가는 친구가 평소에 잘 다녔는데 이번에 안 가느냐고 전화를 했다.
전화해 준 것도 고맙고 모임에 잘 못 나오는 친구도 간다고 해서 딸기하우스랑 겨울 바다를 보면 좋지 하고 길을 나섰다.
지난해 강릉 딸기 농원을 다녀와서 그 안의 공기도 좋고 딸기도 많이 먹어서인지 갈 때 무거웠던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끼며 돌아왔었다.
예전에는 수원도 딸기 농원이 유명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모두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때는 5월 정도가 딸기 철이었던 것 같은데 딸기 농사를 짓는 친구 말을 들으니 첫번째 수확한 크고 맛있는 딸기는 좀더 일찍 나오고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생산되는 것이 5월쯤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11월부터 5월까지 딸기 수확을 제일 많이 한다고 했다.
'강릉 딸기랑'은 바로 옆이 연곡해변이다. 많은 생명이 얼어붙는 겨울에 빨갛게 익은 딸기를 보며 밝은 에너지를 얻고 쪽빛 겨울 바다를 보는 것은 겨울 여행의 별미일 것 같았다.
그럼에도 외출도 자주 하지 않는 요즈음 선뜻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게으름은 추운 날씨를 핑계로 늪처럼 나를 잠식하는 중이었다.
10년 넘게 새벽 출근을 하고도 몇 개월 쉬며 느리게 시간을 보내던 나는 그 장면을 머리로만 상상하고 적극적으로 길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같이 가자고 연락해 준 친구가 참 고마웠다.
친구의 딸기 하우스는 스마트 농법으로 딸기 농사를 하고 있었다. 하우스의 천장 높이가 굉장히 높고 공기 정화 장치가 있어서 숲 속 못지않게 공기가 좋았다.
지난해 5월은 딸기 출하가 거의 끝난 상태여서 딸기 농원 주인과 점심도 같이 먹고 솔밭과 해변을 같이 걸었다.
이번에는 한참 수확하고 포장을 하는 때라 친구는 많이 바빠서 근처 카페에서 커피만 같이 마셨다.
' 강릉 딸기랑'하우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고 농약 사용을 극소로 하고 천적을 활용한 딸기 농사법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으며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해도 환경과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해서 신념을 갖고 연구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색 파인베리, 파인애플향 딸기는 다음 달에 본격적으로 출하된다고 하며 겨우 1박스 수확한 것을 우리에게 내주었다.
이 모임에서 친구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며 이(利)보다 진심을 다해, 타인을 생각하며 일을 하는 마음씀을 배운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분명 딸기잎은 다른 것일 텐데도 나를 보고 반기는 듯, 친숙한 느낌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행복한 성장을 하는 농작물이 건강한 에너지를 준다.
유치원 같은 데서 딸기 따기 체험도 가기는 하지만 나는 친구의 하우스를 방문하기 전 자라나는 딸기를 본 적이 없다.
지난번에는 판매가 끝나 사지 못했던 제일 큰 딸기 두 박스를 샀다. 친정에 가져갔더니 캐나다에서 온 동생은 출국 전 날 어머니와 맛있게 강릉에서 직배송된 싱싱한 딸기를 먹고 떠났다.
그날의 여행은 '강릉 딸기랑'에서 딸기를 보고 먹고 바다를 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난번에는 4명이 와서 해변 옆 소나무 길을 걷고 고운 모래사장을 걸은 뒤 경포대 주변을 휘 돌아보고 저녁때 집으로 왔다.
그때는 싱싱한 딸기로 만든 잼을 열 병 사서 돌아왔다.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는데 점심을 먹으며 발왕산 케이블카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다른 날의 모임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근처 유명 커피숖에서 커피를 마시고 당일 발왕산으로 간다고 했다.
마지막 케이블카가 5시에 있다고.
그 저녁에 산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탄다고?
등산을 해서 산을 올라가고 내려올 때 케이블카를 탔던 날이 기억났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줄도 길고 엄청 바람도 세고 추웠던 기억.
상고대를 보고 행복했지만 그 행복만큼 내려오는 길에 케이블카를 기다리며 겪었던 고난의 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다수가 가고 싶다면 가야지.
날이 며칠 포근했고 오후여서 상고대는 없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가며 눈 쌓인 설산의 풍경과 스키장의 활기찬 모습을 내려다보니 좋았다. 케이블카 안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며 적당한 아찔함도 있었다.
게다가 케이블카에서 내려 바로 앞이 천년주목숲길로 이어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으른 겨울을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해발 1200m 이상을 거저 올라와서 바로 고요한 숲길과 멋진 전망을 보다니 겁먹었던 마음이 확 풀린다.
아이처럼 들떠서 친구들과 케이블카를 타는 시간도 즐거웠다. 나이만 먹었지, 마음과 얼굴표정은 다들 체험학습을 앞둔 초등학생과 다름없었다.
겨울이라 입구를 오를 땐 연한 무지갯빛이었던 하늘가가 내려올 때는 다홍빛에 물들었다. 붉은 고요 위에 저녁 해도 또렷이 얼굴을 보여주었다.
케이블카 티켓이 왕복권이고 시간제한이 30분이라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게 숲길은 한 20분 정도 걸었지만 이미 겨울 바다를 걷고 온 길이라 산과 바다의 신선한 겨울 향기가 가슴에 가득했다.
따뜻한 곳만 찾고 움츠러들던 마음에 청명한 겨울 기운이 마음에 가득 차올랐다.
해가 지니 이제 저녁 먹고 집으로 가나 했다.
12시에 점심 먹고 느리기는 했지만 야외에서 거의 7시간을 거닐며 보낸 터라 청국장과 생선구이를 접시가 뚫어지게 싹싹 먹었다. 이제 어둑하니 집으로 가야지.
그런데 별을 보러 간다고 했다.
안반데기, 지명으로는 강릉이지만 밤 시간을 기다리느라 발왕산 케이블카를 먼저 탄 것 같다.
저녁을 먹은 시골 밥상집에서 한 20분 갔을까.
좁은 언덕길 도로를 올라가는데 거의 다른 차가 보이지 않고 가로등도 없었다.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이 여덟 명, 승용차가 두 대가 아니었다면 소심한 나로서는 많이 무서웠을 것이다.
다행히 며칠 날이 따뜻하고 도로가 말라 있어서 어딘가에 숨어 있을 블랙 아이스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깜깜하고 호젓한 겨울 도로를 올라가니 풍력 발전기의 조명이 조용히 들어왔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그 빛을 보며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으앗, 만차였다.
사람들이 어느새 이곳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고랭지 밭둑길을 휴대폰 등으로 비추며 돌아 올라가니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정말 까만 하늘에 박힌 수많은 보석들. 세상의 소요를 벗어나 숨어서 빛나는 것 같다.
친구 중 한 명은 카시오페이아, 오리온자리를 찾고 있었다.
으악, 이 나이에 이 겨울에 이런 별을 보게 되다니.
결혼 전 별이야기로 나를 혹하게 했던 남편은 결혼 후 여러 현실적인 사정들이 있었지만 별을 보러 가자고 한 적도 별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다.
몇 년 전 여름, 충북에 있는 한 펜션에서 고기 구우며 보이는 별을 보고 이야기해 준 것이 전부였다.
조명이라고는 풍력 발전기의 조명밖에 없는 높은 고랭지 밭 위에 별밭이 펼쳐졌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곳의 고요한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별을 보고 있자니 같은 과 동기가 고등학교 때 s대 천문 동아리랑 별 관측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 별자리에 관한 책을 냈던 작가 이름도 나오는데, 그 동아리에 우리 남편이 가입해서 활동했고 그 작가도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오래 본 친구지만 별을 보기 전에는 그런 인연이 있는 줄 몰랐다.
그날 별자리 관측을 간 우리 친구들과 우리가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연보다 더 깊은 사연으로 연결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우리는 언젠가 어느 별빛이 서로 연결해 준 인연의 빛을 따라 살다가 지금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곳에 별을 보러 모인 사람들을 어쩌면 당사자 보다 별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겨울 바람과 함께 이마를 스쳤다.
중학교 때 내 방 창문을 열면 눈앞에 펼쳐졌던 별빛들, 잠 못 들고 무엇인가를 끄적거렸던 시간들. 그날의 별구경은 그 시간들의 연속이었을까. 겨울밤에 창문 열고 별을 보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인 연합고사를 한 달 앞두고 독감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그 지나간 날들의 별도, 바람도, 감기까지도 졀을 보러 안반데기에 간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
낮에는 그리 포근했어도 별을 보고 있노라니 몸이 너무 떨려서 발길을 돌렸다.
별 보러 가자고 한 친구가 커다란 비닐을 가져와서 잠깐씩 그 안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아침에 손난로라도 갖고 떠날까 하다 늦잠이 들어 헐레벌떡 나오느라 못 챙긴 것이 후회되었다.
그래도 얼떨결에 한 하루 여행이 누군가의 동심과 야무진 계획과 추진력으로 알차게 진행되었고 8명의 마음에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별자리의 아름다움이 휴대폰에는 다 담기지 못했지만 우리들의 마음에 남았으니 괜찮다.
어쩌다 서로의 인생을 돌다 만난 친구들 덕에 하루 여행길의 끝에서 아름다운 별을 만났다.
겨울날 바람이 세서 출어하지 못할 때 연곡천의 민물고기를 잡아서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송강 정철에게 연곡주민들이 끓여 주었다는 '꾹저구탕'을 점심에 처음으로 먹어보았다.
정철이 이 고기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저구새가 꾹 집어 먹은 고기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철이 '꾹저구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했다.
살다 보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민물고기를 먹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할수없이 된장과 민물고기가 어우러져 꾹꾹 누른 수제비를 넣어 꾹저구탕을 만들었다. 어쩌면 옛날에 민물고기를 갈아 수제비에도 섞었을까.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며 주어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적응하며 양념들과 식재료가 서로 어우러져 만든 이 탕은 구수하고 맛있어서 연곡의 향토음식이 되었다.
이런저런 인생을 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산도 넘고 물도 건너며 만난 친구들의 만남이 구수한 맛을 내는 꾹저구탕처럼 따뜻하다.
그렇게 따뜻하면서도 하늘이 있음을 잊지 않고, 추운 겨울날에도 아름답게 빛나는 별을 바라볼 줄 친구들이 함께 해서 행복한 겨울날이었다.
별을 바라보는 마음을 잊지 않으면 우리는 오래도록 행복하리라.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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