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안에 예쁜 정자와 연못, 한옥 담장이 생겼다. 갈색 담장 앞에는 데이지 꽃이 하얗게 피어있다. 가운데 노란 꽃술을 품은 데이지 꽃은 태양의 사랑을 흠뻑 받고 감사의 미소를 짓는 듯하다.
서영은 그 꽃을 보며 학교에서 밝고 긍정적이며 활기차게 생활하는 현이를 떠올린다.
누가 봐도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자란 모습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언제나 밝게 웃으며 제가 할게요. 아이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손걸레를 깨끗이 빨아 걸고 가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은 어떤 분일까 하고 궁금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학교에 왔을 때 보면 왜 그 학생이 그렇게 빛나는지 정답지를 만난 것 같았다.
곧 서영의 눈에붉은 자줏빛 꽃잎을 반짝이는 엉겅퀴 꽃이 보인다. 하얀 데이지 꽃잎 사이에 있어서인지 더욱 강렬하고 곱게 보인다. 그 빛깔의 강렬함이 자기주장과 고집이 강한 아이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곧게 서서 꽃잎을 받쳐주는 줄기 옆으로 뻗은 가시가 달린 엉겅퀴의 잎을 보니 귀엽게 웃다가도 자기 영역을 확실하게 주장하는 영락없는 사춘기 아이이다.
사춘기 병을 심하게 앓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충분한 사랑을 주었는데 내가 무얼 잘못했길래, 쟤는 왜, 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모든 아이들 문제에 정답을 찾아줄 것 같은 오OO 박사라면 해결해 줄 수 있겠지만 보통의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겉으로 문제가 빨리 드러나는 경우는 해결이 쉬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런 경우, 아이의 마음이 어그러지기 시작한 시점과원인이 불분명하고 부모들도 문제를 포장하고 솔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모든 성장과정과 생활환경은 가치관 형성의 과정이다. 무심코 한 부모의 행동이 아이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다. 허용해서는 안될 부분을 허용했거나 지나친 사랑이나 기대가 아이를 가식적으로, 강박관념에 지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모든 문제 행동이 부모의 잘못은 당연히 아니다.
사춘기의 호르몬 작용은 어떤 작은 바람에도 커다란 파동이 될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 질풍노도라는 감정이 연잎을 띄우는 바람으로 잔잔하게 하거나, 커다란 유람선을 밀 수 있는 에너지로 키우는 것도 때로는 교사의 능력과 책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서영은 교단에 서 왔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부모들의 전적인 지지와 협력도 필요하다.
고운 자줏빛과 엉겅퀴 잎의 가시를 보며 서영은 얼마 전 결혼을 한 선이를 떠올린다.
서영이 존경하는 서 부장님의 딸인 선이는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를 자퇴했다.
선이가 어떤 사건인지 어느 정도 가담했는지를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다만 서 부장님이 부부의 도덕적 완벽주의가 아이를 너무 몰아붙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들과 밀착도가 높아진 것 같다고 자책하며 눈물짓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
같은 나이 학생들과 고등학교에 다니려면 이번에 보는 검정고시에 꼭 합격해야 하는데 영어를 전혀 못하니 걱정이라고 했다.
한때 초중학생의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서영은 선의의 공부를 돕겠다고 했다.
검정고시는 절대평가로 일정 수준만 공부하면 되니, 선이가 잘 따르기만 하면 가능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았다.
선이를 만나보니 말수가 적고 웃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열심히 하겠냐고 물으니 선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검정고시까지 40일 정도 남았으니 체계적이고 집중력 있는 교육이 필요했다. 하루에 세 시간씩 주 3회를 수업했다.
중학교 1학년 정도의 교과 내용을 정리하고 발음을 좀 가르쳤고 선이는 숙제도 밀리지 않고 열심히 따라 했다. 간간이 아이의 기분이나 마음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목적 없이 순수한 봉사였기 때문일까, 배움이 절실한 아이였기 때문일까. 선이를 가르치며 서영은 마음이 밝아지는 걸 느꼈다. 그 정도로 장점이 많은 아이였다.
선이는 열심히 했고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다음 해에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후 선이는 서영이 다니는 교회 생활을 성실하게 했고, 전문대를 졸업했고, 얼마 전 결혼하였다. 사춘기의 빛깔을 진하게 보낸 선이는 잘못을 뉘우치고 지금의 행복을 잘 이어가리라 생각된다.
서 부장은 선이 이야기를 하며 자책을 많이 했다.
직장생활과 특별한 내조를 필요로 하는 남편의 직업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빠서 아이에게 따뜻한 대화보다 다그치는 말과 의무만을 강요했다고.
사실 서영도 안 하던 직장 생활을 하느라 힘들었던 시기에 큰딸에게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빨리빨리'라는 말만 한다는 원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실리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마음이 급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학교 생활 이모저모에서 그런 모습이 보였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교 규칙은 잘 지키지만, 친구들을 자신의 잣대로 재고 맘대로 되지 않으면 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지낸다. 친구들을 늘 비교와 불평의 대상으로 보며 그늘진 학교 생활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서영은 많이 안타까웠다.
그녀 자신도 그런 부모의 모습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어서 씁쓸하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자신이 부족하다거나 잘못을 깨달으면 가르치는 학생이든 자신의 자녀이든 곧 사과하고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녀의 장점이었다.
선이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던 서영이 엉겅퀴 꽃밭을 더 둘러본다.
나란히 붙어 서 있는 꽃송이를 보며 수년 전 담임을 했던 진이와 철이를 떠올린다.
힘겹고 위태하게 중 3을 보내고 졸업시켰던 진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나는 가시가 많아요,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라고 외치는 아이 같았다.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 동안 진이는 지각을 했고, 뒤늦게 나타나 교실 문을 확 열고 꽝 닫고는 당당하게 자리에 앉았다. 학교 규칙을 당당하게 무단 횡단하는 모습이었다.
첫날은 그냥 지각하지 말고 내일부터 일찍 오라고 했지만 진이는 그다음 날도 늦었다. 왜 늦었니 하면, '그냥요'가 답이었다. 계속해서 지각을 하며 문을 꽝 닫는 진이에게 서영은 차분하고 약간 냉정한 어조로,
"적어도 늦게 들어올 때는 문은 조용히 열고 들어와야지."
했더니,
"나에게 그런 말 하지 마요, 난 세상에 선생님은 없고 선생 직업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선생님은 그냥 월급 받으니 하는 거잖아요!"
교무실로 오라고 해서 말했지만 녀석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반성의 기미도 없고 지각을 하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수업 중간에 불러 말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도 않아 일단 교실로 보냈다.
오후에 진이와 친한 철이가 와서 진지하게 말했다.
"선생님, 진이는 제가 타이를게요. 걔는 그렇게 말하면 절대 말 안 들어요. 죄송합니다."
뭐지?, 이 상황은? 서영은 자신이 상담을 받는 것 같았다. 철이는 진이의 보호자인가.
철이는 언제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학교 생활을 하며 학기말까지 꾸준히 성적이 올랐고 자신이 좋아하는 영이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면서도 진이를 챙기는 모습이 기특하고 듬직했다.
전혀 생활하는 모습이 다른데도 진이를 친구로 챙기는 철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동료 교사에게 들으니 진이는 가장 요주의 인물이고 해마다 폭력사태가 있던 학생이라고 했다. 1학년 때 담임인 김 선생님에게도 그런 식이다가 지금은 좀 듣는 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녀석의 태도를 그냥 두고 볼 수도 없어 서영은 어머니와 상담을 해봐야 할 것 같아 집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너무 죄송하다고 하면서 타이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진이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여자 선생님이라 남자아이를 이해하는 폭이 좁으신 것 같은데요, 우리 진이 아무 문제없어요. 선생님께서 너무 좁은 잣대로 재지 말고 이해의 폭을 넓히셔야 해요. 우리 진이 꽤 괜찮은 아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