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 동네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골목대장을 하기는 했지만, 그 아이들은 내가 하나, 둘 하면 셋, 넷 하며 발걸음을 맞추어 다녔다. 싸우지도 않고 욕도 하지 않았다.
나의 남동생은 밖에 나가 온 동네 딱지며 구슬을 다 휩쓸고 다녔지만, 집 안에서는 큰소리도 치지도 않고 뛰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부지런하고 힘도 셌지만 말수는 적으셨다. 아주 가끔 어머니와 의견 차이로 큰소리 날 때는 있었지만.
나는 조용하고 예민한 딸만 둘을 키웠다.
남편도 목소리가 크지 않고 조용한 편이다.
나는 조용하고 규칙적인 것을 좋아하는 여선생이다. 남자아이들의 세계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은 한다. 절대 무조건 비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뭐, 남자아이들은 다 지각하고, 늦게 들어오며 문을 꽝 닫고, 모두가 담배 피우고, 난 선생을 선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선생을 무시하는가요? 그게 남자들의 세계인가요?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아버님 생각대로 제가 그렇게 아이를 오해하는 것은 아니고요, 담임으로서 학생 지도를 위해 부모님과 상의를 해야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아버님과 저는 진이의 더 나은 학교 생활을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할 사람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내용으로 전화를 마무리했다.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에게 더 이상 말한들 소용이 없다.
서영의 뇌리에 어머니께서 말씀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 똥은 하도 써서 개도 안 먹는단다'
교사에게 남자들의 세계를 이해 못한다고 하며 자신의 아들을 변호하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처음 학폭이나 선도 위원회에 회부되면 부모들은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자기 아이 변호가 우선이고, 그로 인해 교사들이 자기 아이를 공연히 미워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할까 봐 방어기제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고, 울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더절망적인 경우는 부모조차 아이를 포기하고 알아서 하라고 학교에 아예 오지 않을 때이다.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야 어느 경우가 부족한 것이라 할 수 없으나, 역시 나중이라도 잘못을 깨닫고 아이들이 변화의 과정을 갖게 되는 경우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문제를 직시하고 잘못을 올바로 인식하고 반성하는 경우이다.
순간 지난해 서영을 힘들게 했던 일이 떠올랐다.
자신이 가져와야 할 출결 관련서류를 안 가져오고, 일주일에 3일 이상 지각하고, 청소당번일 때 그냥 가는 등의 행동을 하며, 친구들에게 기분 나쁜 말을 종종 하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는 학생이 있었다.
가져와야 할 것을 안가져 오는 것은 물론이고, 청소 당번도 생각안나요, 친구에게 욕한 것도 생각 안나요...하도 잊어버렸다고 하니 서영은 작은 수첩을 주며 메모하는 습관을 갖자고 했다.
서류는 꼭 필요해서 어머니에게 전화했더니,
"선생님이 우리 아이 말은 믿지도 않고 우리 아이만 미워한다면서요..."
이게 무슨 말? 서영은 황당했지만, 메뉴얼대로 했다.
"어머님,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학교에 오셔서 말씀을 나누면 좋겠네요."
학교에 온 어머니는 아이의 말만 듣고 다짜고짜 선생님이 그러면 되느냐며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한참 이야기했다. 일단 화가 난 학부형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하게 들어주어야 한다.
때로는 삶에 지친 그들의 원망이 교사에게 화살을 돌릴 때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표출하고 나면 그들의 감정은 진정된다.
어머님 속상하셨지요, 한마디 공감하고 수첩에 적어 놓은 아이의 생활 태도와 지도한 내용, 지각한 날짜 등을 알려 주었고, 자꾸 잊어버렸다고 해서 수첩을 주기까지 했다는 말을 했다.
학생의 어머니는 그제야 선생님이 아이를 위해 그만큼 노력하신 줄 몰랐다며 자기 아이 문제 있는 것 알고 있지만 인정하기가 싫었다고 했다. 아이 문제를 인정하기 싫어서 선생님 핑계로 미루었다. 제발 우리 아이 포기하지 말고 잘 지도해주셔요 하고 돌아서는 학생의 어머니를 보며, 결국 어른이 문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감정 처리가 미성숙한 채로 부모가 된 사람들. 그들에게도 도움이 필요하다. 부모 교육은 국가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상담을 하다보면 현실에서는 교사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고 만다.
서영도 아이가 학교에서 꾸중을 들었다고 하면 자기 아이의 문제를 돌아보기 보다는 일단은 기분이 나쁘고, 그 선생님 문제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리고 무조건 아이 말을 믿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도 교사이기에 평소 아이의 성격을 생각해 보고 아이에게 반대의 경우를 질문해 보았다.
일단 부모에게 말하는 아이는 어떤 해결보다 부모의 공감을 원하는데, 직업이 교사와 같은 입장이고 보니 그럴 수만은 없었다.
맘 따로, 아이에게 하는 말 따로이다 보니 아이는 아이대로 섭섭하고 그녀의 마음은 맘대로 쓰릴 때가 있었다.
이렇게 교사의 아이들은 반대의 경우로 상처를 받는다.
서영이 교사가 되기 전 집에서 개인 지도를 할 때, 항상 다른 아이 먼저 배려하느라 소외되었는 큰아이는 '나도 엄마 학생이었으면 좋겠어'라며 울기도 했다.
아이들이 다 큰 지금은 밖에서 속상한 일을 말하면 우스갯소리로 엄마가 가서 혼내줄까? 하기도 하지만... 정작 엄마의 공감이 필요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누구나 부모는 연습할 기회는 많지 않다. 때를 놓치면 아이의 시간은 상처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래도 멈쳐서서 제대로 바라보고 노력해야 하는게 부모이다.
그 후, 진이와는 틈틈이 대화를 했다.
서영은 맞아, 나는 월급 받고 하는 나의 직업이 선생이야.
난 내 일을 잘하고 싶어. 그러니 너를 가르치는 내 직업에 충실할 거야. 너와 이야기하고 너에게 관심을 가질 거야라고 했다.
처음에 진이는 대화를 회피했고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말라고 했지만 차츰 서영의 관심을 기다리는 듯 했고 마음 문을 열어 갔다.
아이는 아이였다. 센척으로 약함을 가리고 싶은.
그래서 어린 학생들에게 교육과 관심은 더 중요한 것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변화가 가능한.
그러던 어느 날, 진이가 수업하다가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며 교복을 던지고 집에 가버렸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학교를 이탈했으니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조금 있다가 어머니로부터 우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 선생님 저는 진이를 교육할 수 없나 봐요, 아이가 막 흥분해서 난리예요. 흐흑."
어머니에게 전화를 바꾸어 달랬더니,
" 왜 엄마에게 고자질하는 거예요, 난 선생님이 싫어요. 학교 안 가요. 관둘 거예요"
라며 소리친다.
"진이야, 내가 누구지?, 그래 선생이야, 네가 학교에 없으니 엄마에게 알려드리는 게 규칙이야, 고자질이 아니고,
선생님 밉지? 그러니 학교 와서 얘기해, 선생님 밉다고, 일단 마음 가라앉히고, 오늘 중으로 꼭 와, 기다릴게."
오후 세 시쯤 되어 진이가 사복 차림으로 학교에 왔다. 나는 음료수를 들고 벤치가 있는 곳으로 나가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