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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아나 Aug 28. 2024

바다가 젤리로 변했다!

1. 바다 위를 걷는 신발

1. 바다 위를 걷는 신발


  펭귄이 사는 곳에는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있다. 언젠가 남극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력이 커지면 미래의 지구는 해수면이 높아지고, 남극에 서식하는 동물들이 위험해진다는 이야기였다. 남극의 빙하를 지켜야 한다. 꼭 지켜야 한다. 아~ 걱정이다! 지구의 자전속도도 점점 느려지고 있다고 하던데... 지구를 지켜야 한다!

  엇! 해돌! 토리!

  해돌이와 토리가 덩치 큰 북극곰을 보고 겁을 먹었나보다! 펭귄들 사이를 정신없이 휘젓고 다녀서 아기 펭귄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해돌, 토리! 얼른 이리로 와!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여긴 남극인데 북극곰이 어떻게 왔지? 그러고 보니 저 북극곰 어디서 본 것 같아! 맞아! 지난번 작은 얼음조각 위에 위태롭게 서 있던 그 곰이네! 지구온난화 때문이야. 이 때문에 빙하가 줄어들어서 북극곰들이 힘들어해. 북극곰들 먹이도 부족해졌어. 북극곰들은 빙하에서 바다사자를 사냥하잖아. 그러니까 빙하를 지켜야 해!

  아, 참! 해돌아, 토리야!


  “해리야, 아빠 오셨다! 해리야?”

  드디어 아빠가 돌아오셨다. 아빠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아빠는 무려 131일 만에 집에 오신 것이다. 아빠 얼굴 봐야 하는데, 아~ 잠깐 다시 꿈속으로 돌아가 해돌이와 토리를 얼른 데려와야 하니 아빠, 아주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이것도 꿈인 걸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난 해리는 아래층으로 한걸음에 두 계단씩 내려갔다. 해돌이와 토리도 쫓아 내려왔다. 아빠가 돌아오실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간밤에 있었던 일들이 꿈이었는지 실제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아빠가 커다란 손으로 해리의 양볼을 감싸 안으며 뭐라 하신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깨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해서다.


  “엄마아~, 엄마아~ 아빠 오셨어요?”

  솔솔 풍기는 맛있는 냄새가 뱃속을 자극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간밤에는 그렇게 깨워도 일어나지 않더니 일찍 일어났네! 아빠 새벽 두 시 넘어서 주무셨으니까 조금만 더 주무시게 하자!”

  아침 준비를 하시던 엄마가 쉿! 하면서 말씀하셨다.


  진짜였다! 아빠가 오셨다. 131일 만에! 야호!

  해리는 너무 기뻐서 해돌이와 토리를 안고 온 거실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아빠한테 할 말이 너무도 많이 쌓여있었고, 무엇보다 정말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리 아빠는 해양과학자다. 남극에서 환경 변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어서 몇 개월씩 남극대륙 테라노바만이라는 곳에 있는 우리나라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살다 오시곤 했다. 물론, 늘 남극에만 계시는 것은 아니다. 연구소에서 일하실 때에도 몇 개월씩 연구실에서 지내시기 때문에 1년 중 집에 계시는 날은 50일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아빠 영향인지 해리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다. 주 관심사는 해양오염이었다. 최근에는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내용들을 수집하여 정리하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떠들썩한 아침을 먹고서도 해리의 질문은 끝이 나질 않았다.

  “몇 개월 만에 우리 딸 키가 쑤욱 컸네!”

  “131일!”

  “아빠, 남극 너무 추워서 힘들지 않았어요?”

  “우리 딸 핫팩 덕분에 괜찮았어! 영하 40도도 핫팩이 있으니 견딜만하던데!”

  “아빠, 나 어제 꿈에 펭귄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왔는데, 글쎄~ 요 녀석들이 펭귄들 틈을 막 휘젓고 다니면서 난리를 일으켰지 뭐예요! 근데 황당한 건 거기에 또 어마무시하게 큰 흰 북극곰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꿈이 좀 황당하기는 하지! 그런데, 아빠! 남극은 어떻게 빙하가 유지되는 거예요?”

  “해리가 아빠 생각하느라 남극 꿈을 꿨나 보다! 요 녀석들, 너희들이 펭귄들을 놀라게 했나 보네!”

  아빠는 해돌이와 토리를 번갈아 안아 올리며 말씀하셨다.

  “해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해류에는 난류와 한류가 있지? 남극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해류는 강한 한류여서 따뜻한 바닷물이 남극해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준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아~ 그러니까 강한 한류 덕분에 남극의 거대한 얼음이 유지된다 이거네!”

  “그렇지!”

  “그리고 아빠, 그거 진짜예요? 이번에는 내 생일 지나서 연구소 가는 거?”

  “우리 딸 열두 번째 생일날에 아빠가 빠질 순 없지!”

  “야호! 그런데 이번에는 휴가가 길어도 괜찮은 거예요?”

  “그럼! 이 아빠가 누구냐? 해리의 아빠잖니? 아빠 연구팀이 남극어류 유전자 설계도 분석을 완성해서 특별휴가를 받았지!”


  “아빠, 나도 그동안 연구를 했는데... 어마어마한 아라온호도 바다 위를 항해하잖아요... 내가 만든 신발을 신으면 바다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을까?”

  “우리 딸 연구는 얼마나 진행이 되었는지 한 번 볼까?”

  “네, 박사님! 일단 제 연구실로 박사님을 모시겠습니다!”

  해리는 목소리 톤을 바꿔 사뭇 연구원 같은 억양으로 대답을 하고는 아빠 손을 이끌고 2층 자신의 방과 마주하고 있는 쪽방 연구실로 향했다. 해리는 그동안 스노보드처럼 신발 바닥을 넓게 만들면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을까 해서 오리발과 신발, 스노보드 등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해리′s 연구실’ 팻말이 달린 문을 열면 온갖 요상한 물건들이 가득한 방안의 모습이 보였다.


  해리네 집은 작은 범섬이 정면으로 보이는 법환포구 안쪽 마을에 있는 키가 낮은 이층집이다. 3년 전 이사 와서 마을지도 그리기를 하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이 너무 꼬불꼬불하고 돌담이 많아 해리는 땅속 개미집을 연상했었다.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꼭 손으로 그린 미로가 될 것이라고도 생각했었다. 서귀포는 아빠의 고향이다.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지만 이사 오기 전에도 서귀포에 왔었기 때문에 서귀포로 이사를 오는 것은 무척 기대되는 일이었다. 특히 바다를 매일 보고 바다에 매일 갈 수 있다는 것이 해리에게는 가슴 콩닥거리는 일이었다. 키 작은 이층집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서울의 아파트하고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나뭇가지처럼 큰 도로와 연결된 꼬불거리는 좁다란 돌담길을 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다시 초록잔디 길이 집마당과 연결되어 있다. 초록잔디 길 가운데에는 맷돌 서너 개가 징검다리처럼 땅속에 박혀 있어 깽깽이 발로 가기 딱 좋았다. 엄청 넓지는 않지만 야생화를 가꾸는 마당도 있고 마당 가운데에는 커다란 파라솔도 있다. 엄마는 자잘한 풀꽃들이 사계절 내내 필 수 있도록 돌 틈과 항아리 뚜껑과 소쿠리, 나무상자, 심지어 낡은 군화 속에도 모두 풀꽃들을 심어 놓으셨다. 솔직히 해리도 무척 맘에 들기는 했다. 벽면에 매달린 풀꽃도 예쁘지만 소쿠리 가득 작은 꽃들이 채워지면 정말 예뻤기 때문에 가끔은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카페인 줄 알고 기웃거리기도 하고 예쁘다고 한마디씩 하면서 가곤 했다. 어쨌든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었다.


  이층집이라고는 해도 사실 이층은 다락방보다 조금 넓은 정도였다. 뾰족지붕으로 인해 해리의 방 천장은 세모꼴이었고, 연구실 천장도 비스듬하게 내려오다가 방바닥과 맞닿아 있었다. 해리는 연구실 모퉁이에 2년 동안 연구하면서 갖다 놓은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그 중에 최근 몇 개월간 연구하고 있는 물건들이 연구실 다른 한쪽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여러 크기의 낡은 스노보드, 오리발, 고무신, 튜브 등이었다. 스노보드는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에 외사촌 오빠에게 받은 것이 있었고, 중고나라에서 구입한 것도 있었다. 오리발은 마을 해녀 할머니께 얻었고, 찾기도 힘든 검정고무신과 흰고무신도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께 얻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글루건이나 접착제, 공구 등은 엄마 따라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구입을 해야 했다.


  “아빠, 바다 위를 걸어 다니려면 관건은 신발을 신고 물에 떠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서프보드는 부력이 좋아서 사람들이 파도타기를 잘 할 수 있지만 너무 흔들려서 걸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좀 무겁고 넓은 보드를 신으면 덜 흔들려서 바다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거지요!”

  “좋은 생각인데! 넓은 바다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겠구나! 그런데 계속 파도가 밀려오는 곳에서는 어떻게 될까?”

  “아! 그래서 제가 이렇게 방수복도 생각 중이긴 해요. 그렇기는 해도 파도 위를 걷는 것이란 정말 힘든 일이겠지요?”

  “해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파도의 힘은 엄청나게 셀걸! 그래서 아빠도 준비를 하고 있지! 해리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기대해도 될 듯하긴 한데 아직은 비밀이다! 생일날까지는!”

  “와~ 아빠, 정말이에요?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사실 해리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뭔가 아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너무도 궁금해서 두 배 커진 눈으로 빨리 알려 달라 졸라댔지만 아빠는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아 밝힐 수 없다고 하셨다. 할 수 있다면 생일날을 당장 앞당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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