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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아나 Aug 31. 2024

바닷물이 젤리로 변했다!

4. 바닷물이 젤리로 변했다!

4. 바닷물이 젤리로 변했다!


  해리와 라산은 일어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바닷가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선착장에는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 웅성거리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선착장에 폴리스라인이 처져 있었다. 밤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작은 어선 몇 척이 선착장에 밧줄을 묶지 못한 것 같았다. 배들은 선착장으로 들어오다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고 굳어진 바닷물에 갇힌 듯했다. 몽돌해변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도 폴리스라인이 길게 처져 있었다.


  “어른들이 경찰에 신고한 걸까?”

  라산이 폴리스라인 주변과 쇳덩어리가 있을 위치를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그렇겠지!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 아빠는 괜찮겠지?”

  해리는 사실 밤새 걱정이 되어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자기 때문에 큰일이 벌어진 것 같아 겁이 나기도 했고 가루약이 문제가 되어 아빠가 경찰에 잡혀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해리야, 정말 미안해! 내가 가루약 쓰자고 해서 일이 이렇게 된 것 같아. 경찰 아저씨께는 내가 말할게.”

  “아니야, 내가 약통에 신경을 쓰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지! 그런데 그 가루 약통은 어떻게 된 걸까?”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난 저녁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꼼꼼히 되짚어 보았다. 가루 약통을 안전한 위치에 두고 한참이나 확인을 못한 것은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박힌 바위를 빼내는데 정신이 모두 빼앗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안전한 위치라 생각해서 걱정하지도 않았다. 언제 가루 약통이 바닷물 있는 곳까지 옮겨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바람이 세게 불었나 생각해 봐도 통이 날아갈 정도는 아니었고, 해돌이와 토리가 물고가서 쏟기에는 통이 좀 큰 편이었다. 그렇다면 통들이 바닷물 근처까지 굴러갔나? 그럴 수는 없는 것이 모두 울퉁불퉁한 돌들로 이루어진 해변이다.


  오전에 해리와 라산은 어른들과 함께 해양경찰서에 갔다. 쓰레기를 줍다가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어떻게 해서 가루약이 바닷물에 투입이 되었는지는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햇빛이 점점 뜨거워지자 바닷물은 훨씬 더 단단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어느 깊이까지 어디까지 굳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해양경찰은 경비용 헬기를 띄워 조사하기로 했다. 해리 아빠는 아직 굳어지지 않은 먼 바닷물 근처에 들어가 바닷속을 살펴보고 해결 방안을 찾기로 했다.


  법환포구에 경찰들이 배치되고 몽돌해변에도 조사가 시작되었다. 마을을 둘러싼 포구 일대에는 일시적으로 출입이 통제되었다. 어촌계와 해녀들을 비롯한 마을 어른들의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부 어른들은 해리네 집을 찾아와 어떻게 된 일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를 물으며 빨리 잘 해결하라고 한마디씩 하셨다. 해리 엄마는 연신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려 사죄드렸다. 해리와 라산은 너무 죄송해서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바닷속을 확인하고 돌아온 아빠는 생각보다 더 깊은 곳까지 바닷물이 굳어있었다고 했다. 바다 속에 있는 생물들은 일시적으로 젤리에 갇힌 상태가 되어 있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바닷물을 되돌려 놓지 않으면 생물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바닷속 동물들이 더 위험해서 굳어진 바닷물을 한시라도 빨리 풀어야 한다며 가루약품 실험에 집중하셨다.


  해리가 생각하기에 무척 힘든 상태는 바닷물이 서서히 굳어지면서 생물체의 일부가 움직일 수 없게 된 상태일 것 같았다. 해리는 자신의 몸 반쪽이 마비된 것과 같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고 먹먹했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속상했다.


  해안으로 돌아오는 배들에게도 문제가 발생했다. 간밤에 바닷물에 갇힌 배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무사히 마을로 돌아왔으나 다른 배들은 굳어진 바닷물로 인하여 선착장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인근 다른 포구로 이동을 해야 했다. 마을 사람들과 어부들은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에 새벽부터 온종일 선착장과 포구 근처를 서성거리며 배가 언제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누가 제보를 했는지 굳어진 바닷가 사진이 뉴스에 보도가 되고 경찰서장 브리핑이 오전, 오후로 이루어졌다. 취재진이 마을로 찾아왔다. 해외언론에도 해외토픽으로 방송이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굳어진 바닷가를 보기 위해 법환포구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법환마을에는 유례없이 북적이는 관광객들과 폴리스라인을 지키는 경찰들과 세계 곳곳에서 온 취재진들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간밤에 바닷물을 밟고 걸어 나온 작은 어선의 어부 아저씨는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벌써 인터넷에서는 스타가 된 것 같았다. 취재진은 해리 아빠, 해리와 라산을 취재하기 위해 아침부터 해리네 집에 찾아왔으나 해리와 라산은 뭔가 일이 점점 커져가는 것 같아 무서워 꼼짝하지 않고 해리의 연구실에 숨어 있었다.


  온종일 집 안에 숨어 있던 해리와 라산은 깜깜한 밤이 되자 조용히 집을 빠져나와 상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언제 따라 나왔는지 토리가 뒤를 쫓아왔다. 북적거리던 낮과 달리 밤은 차분히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단지 지난밤과 달리 오늘 밤은 낮 동안의 열기가 더해져서인지 공기가 식지 않아 후덥지근했다. 어찌 된 것인지 바닷바람도 불지 않아 무척이나 더운 여름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는 초여름 아니 늦은 봄이라 한밤에는 춥기도 한데 오늘은 덥고 습한 기운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아~ 바닷물이 굳어서 바람이 없는 걸까?’ 생각하며 선착장 근처에 왔을 때 해리는 어둠 속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컴컴한 바다 위에 고양이들이 모여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라산아, 저기 좀 봐! 길냥이들이 이상하지 않아?”

  “어디? 그러게! 땅을 파고 있는 것 같은데!”

  “야! 저긴 바다야! 좀 가까이 가보자!”


  폴리스라인에 바짝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니 대여섯 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 고양이들이 굳어진 바다 위를 긁어내며 바닷물에 갇힌 생선들을 잡고 있었다. 해리와 라산은 큰 소리는 내지 못하겠고 어떻게든 고양이들을 말리고 싶은데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토리가 고양이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순간 놀란 고양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토리는 어떤 고양이 한 마리를 추격했다. 해리가 돌아오라고 숨죽이고 소리쳤지만 토리는 듣지 못했다. 해리와 라산이 동시에 어? 하고 바라본 것은 그로부터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토리와 토리가 추격하던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라산아, 토리가 바다에 빠진 것 같아!”

  “바닷물이 모두 굳어있는 거 아냐?”

  “글쎄! 그건 알 수 없잖아. 어쨌든 나 저기 가봐야 하겠어.”

  “안 돼! 위험해. 그리고 여기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다급해진 마음에 해리는 라산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선착장 가장자리는 생각보다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다. 해리는 토리가 갔던 위치를 생각하며 뒤꿈치를 올려 앞발로 뛰었고, 라산도 해리를 돕기 위해 뒤따라 선착장 바다 위로 뛰어 내렸다.


  “해리야, 같이 가.”

  “라산아, 앞이 잘 안 보여. 어쨌든 내가 토리를 구하면 넌 토리를 얼른 집으로 데리고 가. 알았지?”

  “아~ 저기인가 보다! 라산아, 저기 웅덩이!”


  해리가 바닷물 웅덩이를 가리키려던 순간 발을 헛디뎌 앞으로 넘어지면서 쭈욱 미끄러져 갔다. 라산이 어떻게 할 새도 없이 해리는 해리가 웅덩이라고 말한 그 웅덩이 속으로 푹 빠지고 말았다. 라산은 신발을 벗어 던지고 해리가 빠진 곳까지 달렸다. 웅덩이 가까이로 갈수록 바닷물이 물컹거렸다. 해리와 토리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라산은 입고 있던 웃옷을 벗고 해리한테 잡으라고 했다. 해리가 라산의 옷을 잡자 라산은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그러나 디디고 있는 바닷물이 물컹거려 라산 자신도 빠질 것만 같았다. 라산은 바닥에 엎드려서 옷을 잡아당겼다. 해리가 올라오려고 하면 옷이 닿아 있는 물컹거리는 바닷물이 무너지려 했다. 라산은 있는 힘을 다해 뒤로 이동하면서 옷을 잡아당겼다. 겨우겨우 해리가 바다 위로 끌려 올라왔다. 라산은 해리를 좀 더 끌어당겨 단단한 바다 위에 눕혀 놓고 다시 가서 바닷물 속에 들어가 토리를 왼쪽 팔로 감싸 안았다. 바닷물이 약간 되직한 느낌이라 풍덩 빠지지 않아서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올라오는 것은 힘들었다. 바다 표면이 물컹거려서 쉽게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단단한 표면을 찾아 잡고 토리를 위로 올려놓은 뒤 가까스로 기어 올라왔다. 바다 위로 올라온 라산은 해리 옆에 다가가서 풀썩 쓰러졌다.


  바로 그때 ‘아이쿠!’하는 소리와 함께 바다에 철퍼덕 빠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정신 차릴 여유도 없이 해리와 라산은 서로의 귀를 의심하며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약간 멀기는 했어도 분명 할아버지 목소리 같았다. 해리는 토리를 선착장 근처에 데리고 가서 기다리게 하고 라산과 같이 소리가 들렸던 방향으로 서둘러 찾아갔다.

  바다 표면이 미끄러워 해리도 신발을 벗어 던져놓고 작은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상태라 해리와 라산은 여러 척의 배들이 정박하고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범섬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유심히 살펴보던 라산이 뭔가 바다 표면이 이상한 곳을 감지했다.

  “해리야, 저~기 좀 봐봐. 바다 표면이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어, 그러네. 가보자! 근데 아까 할아버지 목소리 맞지?”

  “응, 할아버지 목소리 같았어.”


  라산이 가리킨 곳은 배들이 있는 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바다 위였는데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아무것도 없는 바다 표면이 아까 빠졌던 웅덩이처럼 그 부분에서 뭉개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리와 라산이 가까이 다가가니 허우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바닷물이 뭉그러져 빠질 것 같았다. 라산이 “할아버지~”하고 부르니 웅덩이에서 손을 들어 사람이 있음을 알려줬다. 해리와 라산은 바다 위에 엎드려 바닷물 웅덩이 근처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라산이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양손으로 할아버지의 한쪽 팔목을 잡았고 해리는 무릎 꿇고 엎드려서 라산의 발목을 잡아끌었다. 해리가 뒷걸음질치려고 한쪽 무릎을 뒤로 빼려는데 할아버지 팔이 다시 바닷물에 빠지면서 해리와 라산은 쪼르르 미끄러지며 바닷물에 풀썩 빠지고 말았다.


  ‘우리나라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정신 차리자!’ 이런 생각을 하며 해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정신이 없었을 때는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닷물 속이 생각보다 위험한 것 같지가 않았다.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지는 것 같기는 하나 바닷물이 생각보다 되직한 상태라 바닷속으로 깊게 빠지지는 않았다. 발버둥치지 않고 침착하게 움직인다면 이 바닷속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리와 라산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이내 곧 라산이 조심스레 고개를 바다 위로 내밀었다. 그리고 해리도 따라 내밀었다.

  “해리야, 할아버지가 정신을 잃으신 것 같아. 우리가 양쪽에서 부축하고 걸어보자.”

  “그래, 서두르자!”

  해리와 라산이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바닷속을 걸어가기 시작하자 발이 바닷물을 으깨는 것 같았다. 푹푹 빠지듯 하면서도 그들은 포구 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말없이 어느 정도 간 것 같은데 해리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아악! 라산아, 나 뭔가를 건드린 것 같아. 발이 너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어.”

  “해리야, 무슨 일이야?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혹시 해파리한테 쏘였나?”

  “응, 그런 것 같아. 라산아, 할아버지랑 너 먼저 가. 나 천천히 가볼게.”

  “해리야, 내가 할아버지 얼른 포구에 모셔 놓고 금방 다시 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라산은 급한 마음에 있는 힘을 다해 할아버지를 오른팔로 껴안고 반은 걷고 반은 헤엄치듯 포구 쪽으로 향했다. 그사이 해리는 다리를 추스르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만 생각해 보니 좀 전에 뭔가 서늘한 것이 발목 윗부분에 스친 것 같았는데 해파리의 촉수였을 지도 모르겠다고 해리는 생각했다. ‘해파리가 다행히 살아있구나!’ 그런데 자꾸만 힘이 빠지고 있다. 해리는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머리가 점점 바닷속에 잠기고 있었다. 바닷속에서 눈을 뜨니 안개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리고 뭔가 건드려지는 것이 물고기 같기도 하다. ‘물고기도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멈춰있을 거야.’ 이런저런 생각들이 해리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팔을 뻗어 앞쪽을 파헤치자 이번에는 손에 미끄덩거리는 나뭇가지 같은 것이 잡혔다. ‘이런! 여긴 바다잖아. 나무가 있을 리 없지.’ 해리는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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