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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아나 Aug 30. 2024

바다가 젤리로 변했다!

3. 환경 쓰레개? 환경 사고 발생

3. 환경 쓰레기? 환경 사고 발생


  “포터, 너 잠수함 타 봤냐?”

  “야! 별명 부르지 말라고 했지! 너 자꾸 별명 부르면 나도 너한테 ‘낫산’이라고 할 거야.”

  “아~ 알았어. 미안해! 그건 그렇고 잠수함 타 봤어?”

  “아니, 넌 타 봤어?”

  “지난 일요일에 잠수함 타고 바닷속 구경했는데, 엄청 신기했어.”

  “그럼, 산호 봤어?”

  “응, 산호가 원래 그렇게 예쁜 건 줄 몰랐는데, 진짜 엄청 예쁘고 색깔도 다양하더라. 니가 좋아하는 보라꽃 무더기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어. 근데 진짜 웃긴 게 있었는데 요렇게 생긴 가오리 얼굴!”

  라산은 양손으로 눈꼬리와 입꼬리를 올려 가늘게 찢어진 눈을 만들고 해리를 쳐다봤다. 해리는 순간 못생긴 도깨비 가면을 본 것 같아 웃음을 퍽 터뜨렸다. 해리와 라산은 오늘도 법환 앞바다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줍고 있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을 다니지만 그 시간에 해리와 라산은 바다를 지키기로 약속했다. 가끔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칭찬을 해주시곤 했다.


  “라산, 너 그거 알아? 플라스틱 쓰레기, 2050년에는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전체 물고기 수보다 훨씬 더 많아지게 된대.”

  “야! 물고기 수가 얼마나 많은데! 말도 안 돼!”

  “진짜야, 나 그거 지난번 엄마랑 서울 갔을 때 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전 사진 설명 자료에서 읽었어.”

  “그것만이 아니야. 현재 바다에는 5조가 넘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떠다니고 있대. 있다가 집에 가면 내가 사진 한 장 보여줄게. 너 해마 알지?”

  “어, 해마 사진 찍었어?”

  “아니, 내가 어떻게 해마를 찍을 수 있겠냐? 해마 사진을 찍어왔지. 해마들이 해류를 타기 위해 해초나 자연 부유물들을 잡고 이동을 하는데, 그 사진에는 해마가 플라스틱 면봉을 붙들고 있어.”

  “헐!”

  “그래서 사진작가가 존재해서는 안되는 사진이라고 그랬대. 그거 오염된 바다에서 촬영한 거라 했거든.”

  “야,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잖아! 청정 법환 바다는 우리가 지킨다!”

  “그리고 너, 뉴스 봤어?”

  “어떤 뉴스?”

  “우리 동쪽 바닷가에 괭생이모자반이 해류를 타고 엄청 밀려와서 포구를 뒤덮고 있대.”

  “아니, 못 봤어. 모자반? 그거 먹는 거 아냐?”

  “응, 근데 그건 식용이 안되나 봐. 문제는 괭생이모자반이 가지에 공기주머니가 있어서 조류를 타고 제주 바다로 막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 문제지. 엄청 쌓여서 악취를 풍기고, 그리고 그게 양식장 그물에 달라붙어서 수산업에도 피해를 끼친대.”

  “그러다 여기까지 밀려오면 우리 바다는 어떡하냐? 해양쓰레기로 넘쳐나는 거 아냐?”

  “그러니까 우린 부지런히 이렇게 쓰레기들을 치워야지. 그런데 라산아, 나 너무 배가 고프다. 우리 내일 다시 오자!”

  “그래!”


  바다는 맑은 햇빛을 통째로 흡수했다가 토해내는지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부서지는 포말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듣는 소리가 바람 소리인지 아니면 부서지는 파도 소리인지 헷갈렸다. 해리는 서귀포 바닷가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했다. 집을 조금만 걸어 나오면 시커먼 바위들이 바닷물을 막는 것인지 지키고 있는 것인지 아무튼 시커먼 바위들이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자체가 신기했고 바닷물이 마을로 들어오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가끔 바위들이 너무 날카롭고 거칠어서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지만 바다로 나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거친 현무암 덩어리들은 강한 햇빛에 그을려 숯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파도와 비바람에 온갖 형상으로 나타나 해리와 라산에게는 상상의 공간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허연 딱지들은 패각인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실험의 대상임에는 틀림없었다. 심심찮게 살아있는 생물도 발견하니까! 밤에는 똑같은 우리나라인데 서울보다 이상하리만치 서귀포의 밤은 훨씬 더 껌껌했다. 껌껌해서 좋은 것은 집 마당에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것이었고, 껌껌해서 무서운 것은 더 크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더 시꺼멓고 크게 보이는 바닷가 검은 바위들이었다. 이것들은 마치 완벽하게 다른 세상을 연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볕발이 길게 드리워지자 해리와 라산은 또 쓰레기봉투를 들고 만났다. 어느새 탔는지 벌겋게 탄 얼굴이 뭔가 하늘색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해돌이는 혓바닥이 두 배는 길어진 듯한 모습으로 쫓아왔고 낮잠을 즐기던 토리도 오늘은 무슨 일인지 따라왔다. 여느 때처럼 선착장 길냥이들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올레길을 따라 무성하게 자란 풀숲을 사이로 작은 몽돌해안으로 향했다. 올레길 코스이기는 하나 몽돌해안으로 가는 길은 한 사람씩 걸어 다녀야 할 만큼 좁았고, 조심하지 않으면 높지는 않지만 절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절벽이라기보다 해안가 돌들을 쌓아 만든 돌담 혹은 키 낮은 둑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했다. 가끔씩 손바닥선인장인지 부채선인장인지 바위틈에 자란 선인장에서 백년초가 눈에 들어오지만 오늘 수거해야 할 쓰레기를 생각하면 다른 곳에 신경써서는 안된다고 해리는 생각했다. 그 좁다란 길 중간에 졸졸 흐르는 도랑물과 만나 진흙탕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었는데 어른들은 거기에다 멍석 - 야자 매트라 했던 것도 같은데 - 같은 걸 깔아서 발이 젖지 않도록 해놨다. 길은 몽돌해안에서 사라지고 작은 몽돌해안 끝으로 다시 올레길 코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해리와 라산의 오늘 목적지는 몽돌해안이었다.


  “라산아, 넌 저 범섬에 가봤어?”

  “아니, 넌?”

  “당연 못 가봤지. 한번 가보고 싶다.”

  “옆집 할머니가 그러셨는데 저 범섬에 옛날에는 토끼가 살았대.”

  “정말? 지금도 살고 있을까?”

  “에이, 설마! 지금도 살고 있다면 토끼섬이 되었겠지!”

  “야! 그럼, 범섬은 범이 살아서 범섬이냐?”

  “해리야, 잠깐! 그런데 바닷가에 왜 이런 쓰레기가 있을까?”


  라산은 말라 쪼그라진 운동화 한 짝을 주워 해리에게 보여줬다. 해리는 깨진 플라스틱 바가지를 보여주며 ‘이건 어떻고?’ 하는 반응을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쓰레기가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줍고 있으니 쓰레기가 꽤 많았다. 해가 서쪽으로 제법 기울어진 것 같았다. 그때 해돌이와 토리가 바닷물 남실거리는 돌 틈에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입으로 물려다 선뜻 물지 못하고 해리 쪽을 바라보며 짖어댔다. 해리와 라산은 해돌이 쪽으로 달려갔다. 살펴보니 물속에 원통 모양의 쇳덩어리 같은 게 비스듬히 박혀있었다. 일렁이는 바닷물 때문에 정확히 보이지는 않으나 대략 1.5L 음료수병 크기처럼 보였다.


  “해리야, 이거 혹시 포탄이 아닐까?”

  갑자기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유심히 쳐다보던 라산이 말했다.

  “에이 설마! 여기에 포탄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너, 포탄 본 적 있어?”

  “야, 너 지난번 4․3사건 배웠던 거 기억 안 나? 그때 썼던 게 지금 드러날 수도 있지! 그리고 포탄, 만화에서 보면 진짜 이렇게 생겼어.”

  라산의 진지한 말에 해리는 덜컥 겁이 났다. 만약에 이게 포탄이라면 더 이상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라산아, 우리 이거 그냥 두고 집에 가서 어른들께 말씀드리자.”

  “안 돼! 이거 그냥 두고 가면 바닷물이 밀려와서 나중에 찾지 못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그냥 두면 위험할 수도 있고!”

  “그럼, 어떡해? 여기다 나뭇가지를 꽂아서 표시할까?”

  “그건 금방 휩쓸려 가버릴걸!”

  잠시 정적이 흘렀다. 뭔가 생각하던 라산이 말을 이었다.

  “해리야, 그거 있잖아, 바닷물 젤리 만드는 가루약! 그걸 조금 뿌려서 바닷물을 멈추게 하면 내가 양옆에 돌을 치우고 호미로 살살 파서 꺼낼게.”

  “그러다 포탄이 터지면 진짜 큰일 나! 그리고 가루약 아직 미완성이라 아빠가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 그랬잖아.”

  “아주 조금만! 요 부위만 쓰면 되지. 이거 못 꺼내서 나중에 큰일이 나면 그건 우리 때문에 생긴 일이 될 거야.”

  라산의 말에 해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걱정도 되고 무섭기도 했다. 일단 라산의 말대로 아주 작은 부위만 바닷물을 멈추게 하면 쇳덩어리를 꺼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해리는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해돌이도 해리를 따라 달렸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가서 가루약을 가지고 와야 할 것 같았다. 호미도 가지고 와야지!


  해리는 급한 대로 바닷물 젤리 가루통 두 개와 호미를 챙겨서 다시 몽돌해변으로 달려왔다. 그 사이에 라산은 쇳덩어리 주변 돌덩이들을 낑낑거리며 더 바깥쪽으로 밀어 쇳덩이 주변에 호미질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했다.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깊게 박혀있어 옆으로 밀어내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얼추 방해물들이 제거된 셈이었다. 심장이 심하게 방망이질했다. 해리가 도착하자 둘은 눈을 마주치고 조심스럽게 가루통에서 가루를 꺼내 바닷물에 조금씩 넣었다. 바닷물이 찰랑대서 그런 것인지 수온이 낮아져서 그런 것인지 바닷물은 여전히 남실거렸다. 두 번째 통의 가루를 좀 더 넣었다. 아마도 어쩌면 바닷물이 움직여서 가루들이 흩어지니 빨리 굳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해리는 생각했다. 좀 더 많이 넣었다. 서서히 바닷물이 굳어졌다. 그제야 둘은 안도감에 긴장을 풀었다. 너무 많이 굳어지기 전에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라산의 발목으로 느껴지던 바닷물의 움직임이 사라지면서 바닷물은 푸딩이 된 것 같았다.


  “라산아, 자갈흙인데 파낼 수 있겠어?”

  “응, 생각보다 파기 쉬워. 바닷물이 가만있으니 그냥 모래 파내는 것 같은데. 조약돌들이 많아서 그렇지, 식은 죽 먹기다.”

  “그래도 조심해!”

  “걱정하지 마!”

  “그런데 해리야, 이거 이 돌 밑에 박혀있나 봐.”

  열심히 바닥을 파던 라산은 그 원통 모양의 쇳덩이가 치우지 못한 돌덩어리 밑으로 박혀있는 것을 확인했다. 마음 같아서는 쇳덩어리를 붙잡고 반대 방향으로 힘껏 끌어당겨 빼내고 싶은데 혹시 폭발할지 모르니 함부로 다룰 수는 없었다.


  “우리 둘이 이 돌을 치워야 할 것 같아.”

  해리와 라산이 동시에 말했다. 해리는 위쪽으로 올라가 가루통들을 제법 평평하게 보이는 바위를 찾아 안전한 위치에 두고 돌아왔다. 그리고 라산의 옆으로 가서 돌부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꼼짝하지 않았다. 둘은 다시 힘을 합쳐 힘껏 잡아당겼다. 그래도 돌은 움직이지 않았다. 라산은 돌 주변을 호미로 파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파서 빼내든지 아니면 한 명은 밀고 한 명은 끌어당겨 볼 요량이었다. 돌 주변을 파내고 잡아당기고를 반복하니 드디어 돌이 움직였다. 그러나 쉽게 빠질 것 같지는 않았다. 땀이 비 오듯 했다. 그때 어디서 해돌이가 짖는 것 같아 잠시 멈추고 주변을 돌아봤다. 어느덧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고 해안가는 바닷물이 좀 더 빠진 것 같았다. 해돌이와 토리가 바닷물이 들어오는 쪽에서 소리를 지르며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보였다. 해리가 돌아오라고 큰 소리로 말해도 바닷가 주변을 분주하게 맴돌며 돌아오지 않았다.


  “라산아, 아무래도 이거 오늘 못 뺄 것 같아. 우리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올까? 토요일이니까.”

  해리가 다소 지친 듯 말했고 라산도 하던 걸 멈추고 해리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뭔가를 하기에는 날이 너무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라산아,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큰 걸음으로 몇 걸음 되는지 알아보고 쟤네들 데리고 오자!”

  “그래!”


  쇳덩어리 위치를 다시 확인한 후 해돌이와 토리가 있는 쪽으로 뛰어가니 그제서야 해돌이와 토리도 달려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해리를 사로잡았다. 어스름한 바닷가가 너무 조용한 것이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해리와 라산은 동시에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바닷물 쪽으로 달려갔다. 바닷물은 굳어있었다.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어도 생각보다 더 넓은 부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둘은 서로를 쳐다보다 가루통의 위치를 확인했다. 통이 보이지 않았다. 해리와 라산은 가루통이 있었던 위치까지 뛰어 올라가 주변을 확인했다. 통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바닷가 쪽으로 달려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통을 찾아다녔다. 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더 멀리 가기에는 너무 어두워서 갈 수 없었다.


  “해돌아, 가루통 어디 갔어?”

  해리가 해돌이한테 다급하게 물어보자 해돌이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짖어댔다. 해돌이와 토리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큰일났다! 라산아, 어떻게 하지? 빨리 아빠한테 말씀드려야겠어. 해양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하나? 일단 아빠한테 가자.”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으나 큰일이 생긴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엄습해 온 적막감에 둘은 가슴이 툭 내려앉는 것 같았다. 덜컥 겁이 났다. 해돌이와 토리를 안고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라산과 해리한테는 휴대폰이 없었다. 몽돌해변 입구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아이들을 찾아 나선 어른들이 보였다. 엄마, 아빠를 보자마자 해리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더듬거리며 죄송하다고 하는 사이에 라산은 해리 아빠께 바닷물이 굳었다고 말씀드렸다. 해리와 라산은 엄마를 따라 집으로, 아빠들은 몽돌해변으로 향했다.


  늦은 밤 해리네 집에서는 어른들의 의논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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