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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아나 Sep 19. 2024

바다가 젤리로 변했다!

10. 맨틀 속 거대 도시

10. 맨틀 속 거대 도시


  린이 사는 도시에서는 이제 곧 이주 100주년을 맞이하는 행사를 준비하느라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해리와 라산은 린의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얇은 겉옷을 입고 다시 그 비행접시를 타서 그 도시에서 가장 존경받는 1, 2호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1, 2호라는 것은 이 도시에 처음 이주한 사람이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모두가 그분들을 존경한다고 했다. 100전에 오셨다면 그분들은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 물었더니 린도 정확히는 모르고 대략 120세 정도인 것 같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생각보다 젊고 다정하셨다. 그 도시에 온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지구인 아이들을 보고 너무 감격스럽다며 눈물 흘리시면서 해리와 라산을 꼬옥 안아주셨다.


  “우리 행성이 파에톤처럼 사라지는 행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 조상들은 후손들이 이주할 새로운 행성을 찾기 시작했단다. 과학자들이 찾아낸 것은 결국 지구였지. 그런데 지구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더 많은 고민을 했어. 우리가 지구보다 100년 정도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다 해도 지구를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거든.”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집 옆에 짓고 있는 역사박물관으로 데려가면서 말을 이었다.

  “어느 날 한 과학자가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 지구 내부 맨틀 속에 도시를 만들면 된다고 했던 거야.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몇몇 과학자들은 행성이 폭발하고 우리 모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보다 후손들이 살아갈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어. 그들은 계산했지. 언제부터 도시를 만들기 시작해야 행성이 사라지기 전에 사람들을 이주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했어. 과학자들은 지구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 같은 지구 대양을 중심으로 조금씩 조금씩 지구와 행성을 오가며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단다. 이쪽으로 오렴.”


  할아버지가 안내한 박물관 가장 안쪽 영상 스크린에는 맨틀 속에 거대 도시를 만들어가는 행성의 사람들 모습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우주복처럼 특수 제작된 옷을 입고 있어서 사람들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없었으나 그들이 딱딱한 암석을 파괴할 때는 우주전쟁이 발생한 것처럼 거대한 폭파음과 불꽃이 튀었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구획을 정하여 그 안의 것들을 가루로 만들 때는 날아다니면서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로봇이 대량 투입되었다. 대형 투명 프로펠러가 하늘처럼 보이는 곳마다 설치되었고, 인공 태양과 인공 강우가 시스템에 의해 자동 작동되도록 만드는 과정들이 보였다.


  “내가 스무살 때 내 아내랑 이 도시에 처음 왔어. 그땐 도시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을 때라 살아갈 수 있는 집은 있었지. 그래도 텅 빈 도시는 너무 적막하더구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지. 나중에 사람들이 좀 더 오고 나서야 도시가 사람 사는 도시처럼 보였어. 어쨌거나 소중하고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은 늘 힘든 법이야.”

  할아버지, 할머니 눈가에 슬픔이 고였다. 해리와 라산도 가슴이 울컥해지는 것 같았다. 해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았다. 정말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할아버지, 저건 무슨 뜻이에요? ‘미래로부터 오늘에 이른다.’ 스크린 위에 적힌 저거요.”

  “허허, 잘 봤구나! 미래를 미리 생각하고 만든 것이 오늘 현재라는 뜻이란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 도시를 미리 생각하고 만들었어. 우리는 그들의 미래를 살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 너희들도 너희들의 미래 모습을 먼저 그려보렴. 그러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거든.”

  해리는 그 말이 무척 어려웠지만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나의 꿈이 해양과학자라면 내가 해양과학자가 된 모습을 그려본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할아버지 말씀은 해리 가슴에 확 파고들었다.


  “이쪽으로 와 보렴. 우리가 기후별 스마트팜 만드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란다. 맨틀 속 도시는 계절이 없는 도시야. 1년 내내 20℃ 내외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최근에 각 도시별로 4계절을 만들려고 하는 시도가 있기는 한데 아직까지 구현은 하지 못했어. 계절 체험장만 운영해. 그래서 대부분의 농작물들을 기후별 스마트팜에서 이렇게 재배하고 있단다.”

  “우와~~ 맛있겠다! 이거 다 진짜 과일이에요?”

  “그럼, 당연하지! 우리가 지구로 올 때 우리 행성의 모든 동식물들을 가지고 올 수 없어서 극소수의 어린 동식물들을 가지고 왔단다. 동물들은 적응이 힘들어서 야생성을 제거하고 반려동물로 만들어서 보호하고 있지. 식물들은 다행히 잘 적응했어. 가축이 없는 대신 저렇게 과일, 야채, 곡식, 곤충들을 사육해서 가공식품을 만들고 있어. 고기와 생선을 대체할 훌륭한 단백질 식품들이야.”

  “어쩐지 점심에 먹은 고기가 맛있더라!” 라산의 말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크게 웃으셨다.


  “린, 지금 몇시야?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아닌가 해서.” 문득 해리는 엄마께 아무 말도 못한 게 걱정이 되었다. 오늘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여기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 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졌다.

  “여긴 너희들의 시간보다 느리게 흘러. 지금 오후 3시니까 5시에 바닷가로 돌아가는 게. 어때?”

  “좋아, 5시에 떠나는 걸로 하자.”


  “할머니, 저 올해도 피부세포 축소 대회에 나갈거에요. 얘들아, 나 지난번 세포 축소 대회 1등 했거든.”

  “그거 혹시 아까 우주선 속에 들어갈 때 변화되는 그거야? 네가 말한 3단 축소.”

  “맞아, 우리 도시에서 해마다 피부세포 축소 확대 대회가 있는데 축소 대회는 위험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매일매일 꾸준히 연습해야 해. 특히, 벌레 조심!”

  “아, 그렇구나! 얼마만큼 작아질 수 있어?”

  “아마도 지금 키의 1/4 정도까지.”

  “헉! 그거 위험하다면서 왜 그렇게 연습하는 거야?”

  “난, 사실 내 우주선을 내가 만들고 지구 위로 올라가 보고 싶었어. 그런데 여기를 나가려면 오늘처럼 몸을 압축시켜서 작은 로켓 속에 들어가야만 해. 내가 노력했기 때문에 너희들이 있었던 그 바닷가까지 갈 수 있었던 거야.”

  “린, 너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우주선을 만들고 조종을 할 수 있게 된거야? 우린 상상도 못하겠다!”

  “사실 요번에 너희들이 있는 곳까지 간 것은 성공했지만 우주선 앞뒤 전환 장치가 고장이 나서 그걸 수리하느라 2주나 걸렸다. 지금은 물론 다 고쳤어. 그때 라산이 내 우주선을 발로 찼을 때 내가 기다리던 너희가 있는 걸 알고 문을 열었던 거야.”

  “아~ 그럼, 내가 뭔가를 건드려서 열렸던 게 아니었구나!”

  “가끔 너희들이 거기에 오는 걸 봤어. 아직 우주선 제작은 못하고 정비만 할 수 있어.”


  1, 2호 할아버지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면서 몇 가지 사실들을 더 알게 되었다. 이 도시에서는 어릴 때부터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쭈욱 학습해 나간다는 것. 주로는 스크린을 통해 배우지만 가끔씩 멘토들이 방문해서 실습을 도와준다는 것. 그래서 린은 다섯 살 무렵부터 우주선 조종 놀이를 하며 자연스럽게 조종사가 되었다는 것.


  “조종사는 돈을 엄청 많이 벌겠다!”

  “아니, 여긴 돈이 없어!”

  “으응?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서는 누구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우리 엄마 아빠는 시내에서 팔띠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일을 해. 나는 우주선 조종과 정비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 열심히 배우고 있어. 그런데 우린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각자 하는 일에서 얻은 것들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살아가. 옛날 어른들이 지구로 올 때 각자가 살아갈 집을 미리 정하고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고 왔거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야. 물론 일이 바뀌기도 하지만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그냥 필요한 것들을 서로서로 주고받으며 갈아가. 그래서 생산품의 가치를 따지지 않아.”

  “그럼, 만약 네가 입을 옷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해?”

  “엄마, 아빠가 만든 팔띠를 주고 우리가 필요한 걸 가져오는 거야.”

  “필요한 게 다 없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우리 도시에는 ‘필요센터’라는 것이 곳곳에 있어. 한국에 있는 쇼핑몰이나 백화점 같은 거야. 사람들이 필요센터에 자기들이 생산한 제품을 갖다 주고,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 가지고 와. 필요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정리하고 기록해.”

  “우와~~~ 그럼, 모두 공짜야? 왕창 가져가 버리면 어떡해?”

  “하하,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공짜 아니야!”

  “아이들도 일해?”

  “아니, 아이들은 나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여러 가지를 자기가 정한 기간 동안 해보고 선택해서 나중에 그 일을 하는 거야. 우리 도시가 진짜 좋은 건 지구 위처럼 흉측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거.”


  “그건 정말 좋겠다! 그런데, 난 계속 궁금한 게 있어. 물어봐도 될지 조심스러워.”

  “괜찮아, 뭐든 물어봐.”

  “음~ 너희 행성 사람들은 원래 피부가 밀랍인형 같은 거야?”

  “아! 우리 도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하나 있어. 그게 바로 피부병이야. 지구인이 말하는 피부암 같은 거지. 우리는 인공으로 조성된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피부가 처음부터 약했어.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악성종양 예방 주사와 피부가 강해지는 약을 해마다 먹도록 했어.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 좀 징그럽지?”

  “아니야, 절대 그런 거 아니야. 단지 우리랑 달라서 궁금했어.”


  궁금한 것도 많고 아쉬운 마음도 컸지만 오후 5시가 되자 해리와 라산은 K-158을 떠나 몽돌해변 우주선으로 돌아왔다. 해리와 린은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울었다. 막상 헤어지려고 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라산의 손을 잡고 우주선 밖으로 나와서도, 몸이 작아졌다 커졌다 했어도, 린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해리의 눈물 위로 그 쇳덩어리 꼭지 부분은 점점 바닷물 속으로 파묻혀 아른거리며 사라졌다. 빠른 속도로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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