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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아나 Sep 16. 2024

바다가 젤리로 변했다!

9. 플루오린

9. 플루오린


  드디어 린이 사는 세계에 도착했다. 우주선 문이 열리고 플랫폼으로 나오니 린이 팔띠에 있는 버튼을 눌러 우주선의 크기를 축소한 후 플랫폼 맞은편 주기장에 우주선을 넣어 놨다. 플랫폼을 따라 100m쯤 걸어가니 공항이라 해야 할지 역사라고 해야 할지 모를 흡사 우리나라 인천공항 같은 느낌의 큰 건물 자동문이 열렸다. 건물 안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의 사람들 그러니까 밀랍인형 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린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두 어른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와 린부터 해리, 라산을 차례로 감싸안으며 “어서 오렴! 진심으로 환영한다!”라며 반겨주셨다.


  “엄마, 아빠, 다녀왔어. 얘는 해리, 얘는 라산이야.”

  “안녕하세요?” 라산과 해리가 동시에 인사를 했다.

  “한눈에 봐도 알아보겠구나. 기다렸단다. 오느라 고생 많았지? 배도 고플 텐데 얼른 집으로 갈까?”


  해리와 라산은 린의 가족과 함께 공항 같은 건물 반대쪽 계단으로 내려와 작은 비행접시를 타고 이동했다. 비행접시는 몇 개의 버튼에 의해 자율주행으로 움직였다. 해리는 린의 부모님이 우리나라 연예인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TV에서도 많이 봤던 연예인과 비슷해서 어딘가 친숙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처음 만난 것 같지가 않았다. 아마도 라산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360도 투명 유리창으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서울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지만 좀 더 세련되고 잘 정비된 도시의 사진을 보는 느낌이었다. 린의 집은 도시를 조금 벗어나 외곽에 있었고, 그곳은 해리가 사는 제주도처럼 초원이 있는 곳이었다. 린은 자기가 우주선 정비를 하고 조종 연습을 해야 해서 마당 넓은 집으로 옮겨왔다고 말했다.


  “점심을 먹고 우리가 사는 도시를 구경시켜 줄게. 그리고 우리 도시 1호, 2호 할아버지 할머니도 만나러 가자!” 린은 신나서 마음이 들뜬 상태였고, 해리와 라산은 이 모든 게 신기하고 의문투성이 상태였다. 게다가 시간이 한참 흘렀다고 느껴지는데 이제야 점심시간이라니! 더 신기한 것은 신기한 이 도시가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린이 살고 있는 집은 처음 보는 암석으로 지어진 다소 웅장해 보이는 집이었고, 너른 마당 동쪽에는 비행기 격납고처럼 생긴 건물이 하나 더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면서 린이 자기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면서 가리킨 곳이었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바닥 전체가 대리석처럼 반들거렸다. 거실 한쪽 벽면은 모두 책장이었는데 책들이 해리가 다니는 학교 도서관보다 많았고, 맞은편 벽면은 벽 전체가 터치스크린으로 되어 있었다. 그 모든 책들은 스크린에 내장되어 있다고 했다.


  어디에 있었는지 삽살개 한 마리가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윤기 흐르는 은빛 털로 뒤덮여 있는 이 녀석의 이름은 바륨이었다. ‘우와~’ 찰랑대는 은빛 털에 해리와 라산은 입이 떡 벌어졌다.


  “바륨? 어... 어디서 들어봤는데... 이거 혹시 원소기호 아니야?” 해리는 바륨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

  “맞아, 우리는 너희들이 알고 있는 원소기호보다 훨씬 많은 원소기호가 있어.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원소들을 포함하면 약 1000개가 넘을걸.”

  “원소기호가 이름이야?”

  “응, 우린 원소기호를 이름으로 쓰거나 원소기호를 조합해서 이름을 지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같은 거야.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성분이 원소니까 원소처럼 소중한 존재가 되어라. 뭐, 그런 것 같아.”

  “플루오린도?”

  “응! 아빠, 맞지?”


  린의 부모님은 큰소리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하셨다. 그리고는 해리와 라산을 위해 미리 만들어 준비한 팔띠를 왼쪽 팔에 둘러 주셨는데 얇고 투명한 이 띠는 자석이 달라붙듯 팔에 착 감겼다. 서늘한 젤리 랩핑! 그건 스마트워치 혹은 웨어러블 같은 것으로 건강 체크뿐만 아니라 일종의 원격제어 시스템 역할을 한다고 했다. 린의 엄마가 냉장고 스크린에서 팔띠에 있는 아이들의 정보를 확인하고 자동화 버튼을 터치하자 각 개인별 음식에 필요한 식재료와 조리법이 나타났다. 린의 부모님은 바로 요리하기 시작하셨다.


  책과 삽살개 등 한동안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던 라산이 물었다.

  “아구구, 턱이야! 그런데 모든 동물들도 원소기호로 이름을 만들어?”

  “아니, 바륨은 특별한 존재야. 그래서 우리처럼 원소기호 이름을 붙여줬어. 사실 바륨은 한국말로 하면 우리 행성 ‘골든쉽독’이라는 품종과 자연번식이 된 최초의 개가 낳은 후손이야.”


  잠시 스크린을 보기 위해 거실로 가면서 린이 말을 이었다.

  “이 도시에 몇 마리 없어. 처음 이 도시를 만들고 있을 때 건설노동자 한 분이 우연히 바다 위에 떠있는 황색삽살개 한 마리를 구조하고 우주선에서 키우다가 우리 행성으로 데려갔대. 다행히도 황색삽살개는 잘 적응해서 최초로 지구와 행성 결합체가 된 것이지. 대단하지?”

  “정말 대단하다! 바륨! 멋진 걸!”


  린이 대형 스크린 하단을 터치하자 린의 어린시절 행복한 일상이 영화의 장면처럼 나타났는데 스크린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의 반은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반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인지 신호음인지 그야말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그 어떤 주파수 같은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해리와 라산이 깔깔대고 웃자 린은 약간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 말들이 다른 행성의 언어라고 했다. 린이 다시 스크린을 터치하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 스크린에는 지금 현재 제주도와 서울의 모습들이 실시간 무작위로 보여지고 있었다. 린은 오래전부터 하루에 한 번씩 해리를 보고 있었고 빨리 해리를 직접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장면은 린의 조상들이 살았던 행성에서의 모습이었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별이었다.


  식사 칼로리 자동 조절 시스템에 의하기는 했으나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극한 배고픔을 느껴 쪼르르 한달음에 식탁으로 달려갔다. 개인별 접시에 군침도는 먹음직스런 요리를 기대했던 라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기보다 야채와 과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해리의 점심은 야채와 과일보다 고기가 더 많았다. 이내 실망하는 라산의 표정을 읽은 린의 부모님은 라산을 위해서 고기가 듬뿍 들어있는 다른 접시 하나를 더 준비해 주셨다. 아이들은 허겁지겁 식사를 하다 서로 쳐다보고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기는 하나 그 고기는 사실 야채로 만들어진 가공식품이었다. 그러니까 이 도시에는 수산물과 축산물이 없기 때문에 농산물을 이용하여 육류와 생선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칼로리 자동 조절 시스템에 의한 요리를 먹으면서 건강을 유지한다고 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어떻게 돼?”

  “그럼, 그 이후에는 시스템이 배만 부르고 칼로리가 없는 걸 요리하게 하거나, 아니면 일단 먹고 토하게 만드는 요리를 하게 해.”

  “윽, 그건 너무했다!” 라산의 말에 또 한바탕 웃었다.

  “뚱뚱한 사람은 없어?”

  “가끔 있어. 칼로리 자동 조절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요리를 하는 분들도 있어. 표준보다 뚱뚱해지면 의사 선생님한테 혼나! 병원에 잡혀가서 따로 치료받아야 해.”

  “허걱! 그건 더 싫겠다!”


  “린, 넌 왜 나를 보고 있었어?”

  “내가 너를 닮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지구인이 아니야, 그런데 100년 전 우리가 지구 내부에 살게 되면서 우리는 지구인들과 닮은 모습으로 변하기로 했대. 왜냐하면 우리는 지구인들과 어떠한 충돌이나 갈등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거든. 언젠가 우리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을 때 서로 좋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는 거야.”


  “근데, 왜 나야?”

  “우리 부모님이 나를 낳기 전에 누구를 닮게 해야 할지 신중하게 한국을 살펴보다가 우연히 너희 부모님과 갓난아기인 너를 스크린에서 봤고, 너무 행복하고 예뻐 보여서 결정했대. 나를 너의 모습과 닮게 하겠다고!”

  “나를 닮은 사람도 있어?” 라산은 호기심이 발동해서 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었다.

  “푸하하하! 라산, 너를 닮은 사람은 아직 없어.”

  “아~ 실망이다! 진짜 없어? 그걸 어떻게 알아?”

  “어른들이 누구를 닮게 할 것인지 미리 등록 시스템에 등록하거든. 그래야 서로 비슷해지는 혼선을 막을 수 있어서. 아쉽게도 라산은 아직 등록 시스템에 없어.”


  “혹시,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는 부모님을 우리나라 연예인과 닮게 만드신 거야?”

  “맞아, 외모를 똑같이 하는 것은 아니고 비슷하게 최대한 지구인과 닮게 하려고 했어. 우리 도시는 직선거리로 한국이라는 나라 아래에 있기 때문에 우리 도시 사람들은 한국 사람과 닮았고, 한국의 표준어를 학습해. 그렇지만 다른 나라 밑에 있는 도시로 가면 그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위에 있는 사람과 문화가 비슷해.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언어를 학습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


  “그럼, 지구에 있는 모든 나라의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아니, 여기 팔띠에 요 버튼 누르면 동시통역 ... 난 한국말과 우리 행성 언어 두 개를 할 수 있지!”

  “여기 나라 이름은 뭐야?”

  “우린 나라가 없고 그냥 모두 도시라고 해. 내가 사는 도시는 약 2천만명 정도가 살고 있어. 우리 도시는 K-158, 즉 158번째로 만든 한국 닮은 도시, 뭐 이런 뜻!”

  “그래서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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