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익어 가는 저녁으로

by 이안정

온몸을 채우는 공허함을 안고

한낮의 바르셀로나 해변을

가로지르는 햇살을 한 입 베어 물면


산란하는 고독은 날카로운 어둠의 비에 베여 덧나기 시작한다


가난이 꽃처럼 무성하게 피어나던 세찬 세월 속에서

하얗도록 사위어가는 절망을 끌어안고

아무렇게나 던지는 말들의 무수한 칼끝이 송곳처럼 심장을 찌르면

차마 피하지 못한 소낙비를 온몸으로 맞는다


상처 자국으로 얼룩진 쓸쓸한 시간을 갈아 먹으며

내일의 불안을 피하지 못한 어제를 온몸으로 후회하다

끝내 오늘로 소화하지 못한 채 게워 내는 고통


슬픔이 익어 가는 저녁으로

아픔이 밀려와 밤을 흔들고

고독한 외로움을 쓸어가 버리는 날이면


나는 창가에 머문 달빛을 오래도록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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