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시간의 수업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한 문장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
T.S. 엘리엇의 황야, 4월은 왜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3월과 4월이 되면 국어 1단원은 늘 정해진 규칙처럼 시로 첫 수업을 시작한다. 국어 선생님에게 3월과 4월은 시와 소설을 가르치는 달인셈이다. 그렇게 시작한 어느 봄, 교단에 선 지 오래지만 그날의 공기와 아이들의 눈빛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선명하다. 그래서 여전히 매 시간 그들의 눈빛이 시의 은유가 되기를 꿈꾼다. 봄비가 지나간 뒤, 교실 창문 너머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던 날이었다. 시를 읽는 시간, 아이들은 여전히 무심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이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어요’라는 말 없는 표정과 영어 문제집을 꺼내는 아이, 수학 문제를 몰래 풀고 있는 학생들. 그냥 먼 창밖을 쳐다보는 몇몇 아이들의 불편한 시선이 교실 안을 메웠다.
한참을 모르는 척, 꿋꿋하게 수업을 진행하던 나에게 맨 뒷자리에 있던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평소 말이 없고 늘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학생이었다. 아이는 정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무 작아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얼핏 표정으로 알 것 같다고 좀 더 크게 이야기해 줄래라며 부탁했다. 그 아이는 정말 용기 내며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시인은 왜 이렇게 어렵게 말할까요? 그냥 솔직하게 이건 이거다 확실하게 말하면 안 돼요?”
순간 교실이 고요해졌다. 몰래 문제집을 풀던 아이의 볼펜이 떨어졌다.
나는 웃으며 대답 대신 칠판 이렇게 적었다.
숨바꼭질
“어렵게 보이는 말속에는 사실 누군가의 가장 솔직한 마음이 숨어 있단다.” 그렇게 꼭 숨겨놓은 진실을 언어로 찾아보는 것.
미로처럼 답답하고 헤맬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걷다 보면 나만의 길을 발견해 낼 수 있는 시간.
그리고는 아이들과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던 4월의 벚꽃 잎이 흩날리며 운동장에 쌓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면 너희는 어떻게 말하겠니?”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이들 하나하나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꽃비가 내려요.”
“하얀 눈처럼 보여요.”
“세상이 잠깐 멈춘 것 같아요.”
그 순간 교실은 살아 있는 시가 되었다. 누구도 억지로 해석하려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표현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가려던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선생님, 오늘은 시가 좀 좋아진 것 같아요.”
가르침은 위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적시며 흐르는 작은 시냇물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수업은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가르쳐준 순간이었다. 시는 책 속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작은 풍경과 마음속에서도 피어난다는 사실을.
“진정한 배움은 교과서를 전부 배우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움을 품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
그래서 나는 지금도 교단에 서면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오늘의 교실이 또 다른 한 편의 시가 되기를.
나는 교단 위에서 가르친다고 믿었지만, 사실 그 아이들의 눈빛이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배움은 위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이 아니라, 마주 본 눈 속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