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재판관-참회자의 흥미로운 도식

by 시지프
우리는 우리보다 나은 사람에게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차라리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하게 됩니다. 대개는 그와 반대로 자기와 비슷하고 자기와 같은 약점을 가진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제 결점을 교정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남에게 교정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자면 우선 잘못이 있다는 판결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동정을 받고,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서 격려를 받고 싶어 할 뿐이에요. 결국 죄를 짊어지기도 싫고 결백해지려고 노력하기도 싫은 겁니다. 충분한 시니시즘도 없고 충분한 용기도 없어요. 우리에겐 악의 에너지도 선의 에너지도 없습니다. 단테를 아십니까? 정말 아세요? 허! 그럼 단테가 신과 악마 사이의 투쟁 가운데 중립적 천사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걸 아시겠군요. 그리고 단테는 그 천사들이 있는 데가 지옥 변경(邊境)이라는데, 말하자면 지옥의 현관이지요. 우리도 현관에 있는 셈입니다. …(중략)… 어쨌든 오랜 자기 탐구 끝에 나는 인간의 깊은 이중성을 밝혔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내 기억을 탐색한 결과 나의 겸손은 남의 이목을 끄는 데 도움이 되고, 겸양은 남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며, 미덕은 남을 압박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평화적 방법으로 전쟁을 했고, 결국 청렴한 듯한 수단으로 내가 탐하는 모든 것을 쟁취했습니다. …(중략)… 어떤 때는 아침에 변호를 맡은 사건을 끝까지 검토하고 나서, 내가 특히 뛰어나게 잘하는 일은 남을 멸시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곤 했습니다. …(중략)… 어느 날, 어느 날 밤 조소가 느닷없이 터지고 맙니다. 남에게 내리는 판결이 결국은 이편 얼굴로 곧장 튀어 와서 상당한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틀어보십시오. 희한한 방법이 있습니다. 지배자들과 그들의 채찍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승리를 거두기 위하여 코페르니쿠스가 한 것처럼 추리를 역전시켜야 하리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심판함 없이 남을 심판하기란 불가능한 일인즉, 남을 심판한 권리를 얻기 위해서 우선 자신을 통렬히 비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판자는 모두 마침내는 죄인이 되고 마니까, 길을 반대로 잡아서 죄인의 직책을 다하여 나중엔 심판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했어요. 내 이야기를 아시겠습니까? 좋습니다.
- 알베르 카뮈, "전락" -


클라망스의 통렬한 자기 반성 뒤에 이어지는 반전과 웃음을 주면서 현대인을 뚫어본 것 같은 통찰까지, 내가 최근 읽은 문학 작품 중에 최고였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카뮈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다고 한다. 클라망스는 지극히 '상식적 기준'으로 보자면 '인간 쓰레기'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는 본인이 쓰레기라는 것과 모두에 대한 죄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며, 심지어 그것을 팔고 타인을 심판하는 사람이다.

클라망스의 이중성과 그에게 부여된 '재판관-참회자'의 역할은 '재판관' 혹은 '참회자'만 되려 하는 사람들에게 생각 거리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진솔한 참회의 묘사로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사람들의 마음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싫어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들만의 심판을 피하는 방식이었으며, 내가 그들에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던 과거 또한 나의 심판을 피하려 도망쳐온 과거가 아니었을까. 사르트르-카뮈의 논쟁 이후 쓰여진 글이라고 아는데, 내가 읽었던 "이방인, 시지프 신화, 반항하는 인간"보다 카뮈의 최종 견해에 가까운 생각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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