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우리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by 시지프

우리는 이미 시지프가 부조리한 영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의 열정뿐만 아니라 그의 고뇌로 부조리한 영웅인 것이다. 신들에 대한 멸시, 죽음에 대한 증오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는 일에 전 존재를 바쳐야 하는 형용할 수 없는 형벌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이것이 이 땅에 대한 정열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이다. 지옥에서의 시지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전해진 것이 없다. 신화란 상상력으로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으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에서는 다만 거대한 돌을 들어 산비탈로 굴려 올리기를 수백 번이나 되풀이하느라고 잔뜩 긴장해 있는 육체의 노력이 보일 뿐이다.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쪽 다리, 돌을 되받아 안은 팔 끝, 흙투성이가 된 두 손의 온통 인간적인 확실성이 보인다.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나 측량할 수 있을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표는 달성된다. 그때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저 아래 세계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 아래로부터 정상을 향해 이제 다시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시지프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되돌아 내려올 때, 그 잠시의 휴지의 순간이다. 그토록 돌덩이에 바싹 닿은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은 이미 돌 그 자체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諸神)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민음사 번역]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


주희(주자)가 말한 주일무적(主一無適, 중국 송나라의 정주(程朱)의 수양설(修養說). 정이가 처음에 주창하고 주희가 이어받아 주장한 것으로 마음에 경(敬)을 두고 정신을 집중하여 외물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장자가 말한 심재(心齋), 좌망(坐忘), 물아일체(物我一體)와 맞닿아있다. 시지프는 "지금, 여기"에 집중함으로 자신을 고뇌에서 해방한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모습도 여기서 보인다. '나는 해야 한다...' 혹은 '나는 싫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되풀이될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모습이 영원회귀 속에서 "그래도 다시 한번!"을 외치는 위버멘쉬의 모습과 비슷하다.

의지들의 반복은 일반성으로 규명되지 않는다. 반복은 은폐된 것처럼 보이는, 기저에 있는 무수한 차이들에 의해 규명된다. 내포가 무한하며, 외연은 하나 뿐인 '이 순간'에 의식을 집중하며 자신을 해방하지만, 필연적으로 돌아오는 '의식의 시간'에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시지프를 닮고 싶다. 시지프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반복들이 모두 차이 속에 존재하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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