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르겠다…
‘있음’으로 사는 일은 피곤하다. 누군가로 있어야 하는 삶, 그로부터 탈주한다면 해명해야 하는 삶… 어린 시절부터 근원적 탈주를 열망해왔다. 초등학교 2학년 12월, 음악과 미술 학원을 거짓말로 결석하고,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만화를 보고 함께 라면을 먹은 그날, 내 삶은 바뀌었다. 그날 늦은 밤까지, 나는 태극기로 체벌당하고 엄마는 옆집 친구의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내 거짓말을 드러냈다. 부모가 있지만, 부모가 없었던 삶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선생님에게 ‘착한 아이’로 보이고 싶은 열망이 한창 강했던 나이였다. 무엇인가로 ‘있음’을 열망하였다. 그 모습이 보기가 싫었는지, 한 아이가 고약하게 나를 괴롭혔다. 초등학교 5학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신체적으로 우월하지도 못하고, 정신적으로도 나약했다. 나는 ‘보호받음’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리고 부모가 내가 밖에서 폭력을 당하고 돌아온 것은 용납하지 못하였기에, 나는 점점 분열되어 갔다. 밖에서는 무엇인가로 있고 싶고, 안에서는 없어지고 싶었던 삶이었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가르친 아빠였지만, 학원에 가지 않은 날이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았다. 아직도 종아리에 가끔 쥐가 난다. 나는 내가 틀린 줄 알았다. 부모는 나름 그 세상에서 인정받고, 학교에서 권위가 있는 초등학교 교사였기 때문이다. 항상 강박적으로 이유를 들며 자식을 체벌하며 그들만의 논리를 세워갔다. 나는 부모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죽고 싶을 때마다 그들 탓을 한다. 그들 앞에서 나는 결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 앞에서는 나는 결백하지 않다. 그게 문제이다. 괴리이다. 죽고 싶어도 살아야 하는 삶. 타인 앞에서 나는 결백하지 않다. 내가 죽는다면, 나는 그들에게 죄를 짓는다. 내가 죽는다면, 그들은 나로 인해 [잠시일 수는 있으나] 슬퍼할 것이고 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 법이다. 자살을 거부할 수도 없으나, 자살을 옹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나름대로 찾아낸 방법은 ‘삶이자 죽음으로 있기’이다. ‘있음이자 없음으로 있기’이다. ‘물음표이자 느낌표로 있기’이다. 내가 무언가에 집중하면, ‘나’는 없어질 수 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나’는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 [우울증 등으로]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면, 사랑에 실패하게 된다면, 죽음이 나를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끌어당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인 양 키보드를 잡았다. 나는 또 없어질 수 있었다. 죽음으로 삶을 연장하는 방법. 헤밍웨이도 자살을 이렇게 늦춘 게 아니었을까? 내 최종 귀결점은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든 느낌표로 돌아가는 삶이다. 물음표를 최대한 보존하고자 하는 열망은 순수한 죽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