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오늘의 이야기

시골 할머니의 추억과 조향미의 <온돌방>

by 김영욱

맞벌이 하는 부모님 덕분에 이릴 때는 청주 할머니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학교 다닐때도, 방학이 되면 늘 그곳으로 갔다.


신기하게도 오른쪽 옆집에도, 왼쪽 옆집에도 나와 동갑인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소여물로 쓸 풀을 베고, 쥐불놀이를 하고 들판을 뛰놀았다.

겨울이면 꽁꽁언 논바닥에서 썰매를 타면서 즐거웠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절절 끓는 아랫목에 엎드려 간식을 먹던 시간이다.

뜨거워서 이불위에 누웠다가

다시 그 지글거리는 이불아래 맨 바닥으로 내려가기를 반복하였다.

등은 뜨거운데 일어서면 코끝에 스치는 찬바람이 그렇게 좋았다.


불을 너무 많이 때서 장판이 새까맣게 변한것도 기억난다.

늙은 호박씨를 까먹고 손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고 고구마를 먹었던 그때의 겨울이 유난히 그립다.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

제일 싫었던건 집 안 가득 고르게 퍼지는 미지근하고 훈훈한 공기였다.

어딘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럴때면 생각나는 그 겨울 할머니댁의 온돌방

등은 뜨겁고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가 그립다.


조향미님의 시 <온돌방>은

이런 추억들을 한꺼번에 불러온다.


온돌방

- 조향미-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찾아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원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새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는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 시집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 실천문학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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