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독서를 했는가
나의 독서라이프는 그리 길지 않다.
사실 중학시절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부모님 덕에 논술학원에 다니며 매달 한 권의 책을 강제로 읽곤 했지만, 강제된 독서 중 지금까지 내 안에 남아있는 내용은 많지 않다. 물론 또래 대비 논설문, 독후감 등을 쓸 기회가 많은 편이긴 했다.
내 인생의 주체적인 독서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입대 전 겨울방학에 시작되었다. 당시 1학년 과정엔 필수과목으로 글을 쓰고 토론하는 수업이 있었으며, 영화에서 보고 꿈에 그리던 대학의 토론 수업을 할 수 있어 열정으로 참여하곤 했다. 학기를 마친 후 교수님을 따로 찾아가 방학 동안 독서 및 글쓰기 스터디를 부탁드렸고, 그 과정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입문 독서라기엔 꽤나 어려웠고 지루했다.
그렇게 입대를 하고 본격적인 독서라이프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의 이유에 대해 마음의 양식 혹은 교양 등을 언급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독서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달랐다. 나는 내용에 관심이 없었고, 감성적이지 못한 사람이기에 단 한순간도 내면의 울림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고등학교 시절 윤리를 공부하며 알게 된 역사에 길이 남을 철학 고전이 가진 문장력이 궁금했다. 그들의 문체를 보고 싶었고, 그들의 어휘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직접 선택한 첫 번째 독서는 존 롤스의 '정의론'이었다. 존 롤스의 사상을 간략히 배워 알고 있었기에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사실 이해가 아니다. 그저 이런 사상을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그 후에도 나는 일관된 태도로 독서를 대했다. 수준에 맞지 않는 난이도의 인문고전을 읽었다. 로버트 노직의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을 시도했다. 물론 너무 어려워 완독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쳐버린 것이다. 이러한 인문학 서적이 힘들면 항상 가벼운 에세이 혹은 단편소설을 읽어 마음을 가볍게 하곤 했다.
이러한 과정 속, 두 권의 책을 만나 독서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잡았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다. 독서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내용에 감정의 울림을 받았고, 이 둘은 곧 소위 나의 인생책이 되었다. 지금도 두 책엔 무수히 많은 포스트잇과 메모가 채워져 있다. 처음으로 내용을 잊고 싶지 않았고, 내 안에 새기기 위해 반복하고 노력했다.
이러한 경험 이후 나는 세 가지의 태도로 독서를 대하게 되었다. 문장력 탐구를 목적으로 가볍게 책을 선택했고, 내용이 어려워 머리가 복잡하면 생각을 비우기 위한 목적으로 가벼운 독서를 병행했다. 그 속에서 울림을 받는 내용을 발견하면 왜 울림을 느끼는지, 어떤 감정의 울림인지 파악하기 위해 거듭 곱씹었다. 그렇게 나의 독서 라이프는 한 단계 성장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고,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다. 예술에 관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이해하기 위해 애쓰곤 했다. 그럼에도 난 피카소의 스케치 원본을 보아도, 모네의 그림 원본을 보아도, 거대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원작을 벨베데레 궁전에서 보아도 그 어떤 놀라움과 경외심을 느끼지 못했다. 전 세계와 역사가 인정하는 시대의 명작을 보아도 내겐 그 무엇도 다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9년 초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만나게 된다. 난 그를 알지 못했다. 그의 작품을 처음 봤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림이 주는 기운에 마음이 울렁거렸고 우울했으며, 그저 압도당했다. 그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마크 로스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문학과 예술에 대해 사람들은 대게 위대한 작품을 위대하게 느끼고 싶어 한다. 감탄과 경외심을 느껴야 대중에 걸맞은 교양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일련의 경험을 통해 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주체적으로 문화를 향유하게 되었다. 작품의 평판을 보지 않는다. 유명하다 하여 더욱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
나의 호감은 대중이 아닌 나의 감정이고, 내겐 나의 감정을 움직이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남들이 좋아한다 하여 내가 좋아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