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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과사색 May 24. 2022

내 인생이 잘못된 것 같은 느낌

이야기의 시작

2021년 12월. 코로나가 잠식한 세상에 산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왔지만 나의 삶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그 덕분에 아침 9시까지 넙치처럼 침대에 누워있어서 편하지만, 사람과 만나는 일 없이 집에 갇혀 일만 하는 삶이 참 무료해 지친다. 코로나로 잃은 커뮤니티는 회복이 더디고 사람과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은 여전히 밑바닥을 맴돌고 있다. 외국 생활은 원래 외로운 것이지만 코로나가 휩쓸고 간 내 삶은 외롭다 못해 반쯤 죽은 좀비 같다. 사람과 커뮤니티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나이 서른다섯에 코로나로 세게 맞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무런 생기 없이 집에 박혀 소통도 없고 의미도 없는 하루하루에 넌덜머리가 난다.


나처럼 코로나에 나가떨어진 사람들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보인다. 우리가 모여 커다란 우리가 되고 거대한 우리가 되고 결국 이 세상은 두려움과 혼란과 피로감이 뒤엉켜 어수선하고 침울한 하나의 덩어리가 된 듯하다. 몇 백 년 몇 천년 동안 일구어 만들어진 세상은 전염병의 공포와 사람과의 단절, 이 두 가지 만으로도 죽은 사회가 되기에 충분했다. 코로나가 후- 하고 내뱉은 숨에 맥없이 꺼져버린 초라한 촛불 같다.  


더군다나 2019년 12월,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무렵은 공교롭게도 나의 세상에도 많은 변화가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인생을 잘 못 산 것 같은 느낌이 몇 년 동안이나 지속되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오랫동안 고민을 해보았다. 외국에 혼자 살고 있어서일까, 김삼순보다 세 살이나 많은 노처녀가 되어서일까, 잘못 태어나서일까, 잘못 살아서일까.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직업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생겨버렸다. 아마 직업을 탓하는 것이 가장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태생과 인생 전체를 탓하게 되면 너무 속절없고 바꿀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삶의 방향을 틀기 위한 수단으로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재활치료사로 일하는 것은 매우 보람되었지만 내가 아닌 타인만 돌보느라 정작 내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학사 4년과, 보스턴에 건너와 공부한 석사 2년과, 재활치료사로 일한 5년 도합 총 11년의 세월이 아까웠지만 아깝다고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큰 후회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까운 것이 눈에 뵈지 않을 정도로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컸다. 일 초 일 초 견디는 것이 매우 길었고 숨 막혔다. 사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씁쓸함이었는데 그저 덮어두고 직업에 다짜고짜 주먹질을 해댔다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고 지금도 알고 있다.  


나는 이곳이 아닌 어떤 곳으로 떠나야 하는지 고민했다. 재활치료사로 임상 일을 시작한 것은 실제 환자를 치료해 본 경력을 쌓은 후 박사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연구가 하고 싶은 사람인데, 어떤 것을 연구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박사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임상 일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져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5년 동안 연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재활' 연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변해버렸다. 어느새 나의 관심은 '역학'으로 바뀌어 있었고 역학 연구를 하자고 결심했다. 머리 틀어 묶고 안경 쓰고 밤새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칠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했다. 수많은 분야 중 역학을 택한 것은, 역학이 공중 보건 연구의 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 인생에 대한 지겨움과 회의감과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이 기가 막히게 큰 에너지의 원천이 될 때가 있다. 콸콸 뿜어 나오는 지하수처럼. 나는 그 지하수에서 두레박으로 크게 물을 떠 나르며 대학원 갈 준비를 했다. GRE 점수가 하필 몇 개월 전에 만료되는 바람에 다시 공부해야 했었고, 영혼을 갈아 넣어 자기소개서만 두 달을 썼었고, 모든 인맥과 나이스 하지만 비굴한 미소를 총동원해서 교수님들에게서 추천서를 받아 냈다. 그렇게 약 8개월을 매일매일 퇴근 후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지친 몸뚱이를 책상에 앉혀 공부하다가 중얼중얼 욕을 하며 공부하다가 침대에 눕혀서 공부하다가를 반복하며 탈출과 시작을 꿈꿨다.


그리고 이듬해 9월, 흰머리가 분수처럼 뿜어 나오는 서른세 살의 나는 하버드 대학원 공중 보건 역사 석사 대학원에 입학했다. 박사 과정은 이러저러한 씁쓸한 이유로 포기를 했고, 2020년 5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코로나 대환장 무대의 한가운데서.


미국은 코로나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참 공포스러웠다. 그리고 언제나 나의 '쓸모'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는 나는 갑자기 영웅 심리가 묘하게 자극되고 있었다. 때 마침 역학 전공을 하고 졸업을 하니 전염병의 중심에서 일하겠노라고, 세상에 유용하게 쓰이겠다고 호기로운 다짐을 했다.


그런데 가당치도 않았다. 취직은 배부른 소리였다. 난데없이 등장해 점점 거대하게 몸집을 키워나가는 전염병 모두가 패닉이었고, 날마다 감염자 수가 신기록을 세웠고,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죽어나갔다. 회사들은 문을 닫았다. 고용을 멈췄다. 고용은커녕,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가고 있었다. 백신이 언제 개발될 수 있을지, 아니 개발이 가능한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마트에서는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서 휴지 하나를 몇 달 동안 살 수가 없었다. 휴지는 둘째 치고, 마스크도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아마존에서 겨우 마스크를 주문하면 중국산 마스크가 30일 후에 배송된다고 했다. 밖에서는 아시안 혐오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했다.


바이러스와 공포와 죽음이 한데 섞인 난장판이었다. 나의 쓸모를 논하며 설렜던 나는 이미 바닥에 널브러지고 없었다. 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쟁과 맞먹는 패닉 속에서 미국에 혼자 있는 나를 보았다. 홀몸으로 나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내 현실을 보았다. 의지할 가족도 곁에 없었고, 대학원을 졸업해 버리니 소속된 곳도 없었고, 학교에서 제공해 주던 의료보험도 졸업 후 3개월 후면 끝이 나는 상황이었다. 팬데믹 한가운데서 가족도 없고 의료 보험도 없고 직장도 없고 수입도 없이 미국에 혼자 있었다.


나의 생존이 오로지 나에게만 달려 있었다. 난 처음으로 내 존재의 무력감과 막중한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은 공포였다. 패닉 어택이었다.


하루는 무력감에 몸져눕고, 하루는 애써 산책을 하며 괜찮다 위로하고, 하루는 내 인생이 야속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았다. 사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삶이었다. 그렇게 1년 반이 흘러 2021년 8월이 되었다. 직장도 구했고, 안전하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의료 보험도 있고, 백신도 맞았고, 마스크와 생필품은 마트에서 매우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예전의 밝고 활기차고 개똥에도 깔깔거리며 웃던 나는 잃고 없었다. 무기력하고 슬프고 침울했다. 남들이 보기에 석사 학위도 두 개나 있고,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했고, 데이터 분석가로 커리어 체인지도 잘했으니 그저 기쁘게 주말에 선글라스 끼고 등 파진 원피스 입고 야외 파티오에서 브런치 먹으며 호호호 웃으며 살면 되겠다 싶겠지만. 정작 난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없어서 아침 10시가 되어도 일어나기가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자꾸만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일도 없었다. 바싹 마르고 속은 텅 비어 있는 공갈빵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자꾸만 멍했다. 눈동자도 멍했다. 그렇게 멍하게 하루를 지내다가 멍하게 잠에 들었다. 자면서도 멍했는지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잤다. 정말 방바닥을 치면서 통곡을 해도 모자를 정도로 내가 이상하고 싫고 낯설었다. 이렇게 살기 싫었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살고 있어서 더 싫었다.


이것은 코로나 때문에 변해버린 내 외부 환경과 그와 같은 시기에 복합적으로 발생했던 내 인생의 변화들이 합체한 대환장 파티였다. 실패, 고립, 배신, 외로움, 회의감 등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에린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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