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것들
강아지에 대한 공포는 단순한 무서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린
'통제 불가능한 위험'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이었다.
두려움은 '개'라는 실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마치 전이되는 바이러스처럼 내 삶의 많은 영역으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의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지고,
그렇게 내가 만든 작은 원 안에 갇혀버렸다.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나를 쫓아오던 개의 위협처럼,
낯선 사람의 호의적인 접근이 가끔 나에게는
'공격 전의 유인'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을 조금씩 닫았다.
먼저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주저했다. 혹시라도 상처를 주거나 받을까 봐, 나는 스스로 안전한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생존 방식이라고 믿었다.
나는 생존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의도를 끊임없이 파악하려 했고, 그들의 말에서 숨겨진 비난이나 위험 신호를 찾으려 애썼다.
이는 관계를 피곤하게 만들었고, 나는 외로움이라는 낯익은 감옥으로 스스로 돌아와서 눕곤 했다.
강아지를 무서워했던 나는, 사실 세상 모든 이의
예측 불가능성을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화려한 하늘을 선택했고,
승무원이 되어 세계의 도시들을 떠돌았다. 매일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겉으로는 능숙한 미소와 친절한 응대를 보였지만,
내면의 경계심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호찌민의 새벽 시장을 홀로 걸을 때에도, 사우디의 광활한 모래사막 위 별빛 아래서도 나는 늘 주위를 살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잠시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예기치 않은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내 발걸음을 늦추었다.
길 위에서 강아지를 마주치지 않더라도, 눈앞의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돌발 변수가 없는 완벽한 흐름'을 만드는 것이 나의 무의식적인 목표였다.
기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뉴얼대로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 속에서만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매뉴얼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승객의 돌발 행동은 내 심박수를 끌어올리는 작은 경보음과 같았다.
필라테스와 명상을 공부하면서 이 모든 것이
나의 몸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두려움에 갇힌 몸은 늘 도망치거나 숨는 자세를 유지한다. 어깨는 올라가고, 목은 앞으로 빠지며, 호흡은 얕아진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세상의 위협에 대해 웅크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 곧 '나는 약하다'는 신호를 세상에 보내는 것과 같았다. 몸이 먼저 트라우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나는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이 좁은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착각이며,
삶의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순간들은
이 경계 너머의 '예측 불가능한 우연' 속에 있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공포가 내 삶의 내비게이션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단순한 강아지 공포증 치료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웅크림을 펴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용기 있는 선언이어야 했다.
나는 경계선 너머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두려움보다 더 큰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