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live is to die
명상 수련 중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숨은
당연한 권리인 양 아무런 저항 없이 수용되었고,
이내 고요하게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한 번 들인 숨을 영원히 붙잡아둘 수는 없다.
붙잡는 행위는 곧 멈춤이며,
멈춤은 죽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무언가를 흘려보내야만 한다.
고인 물은 썩고, 쓰지 않는 근육은 퇴화한다.
호흡 또한 마찬가지다.
가두어 둔 숨을 다시 내뱉지 않으면
생명은 흐름을 잃고 고인 시간이 되어버린다.
만물은 흐른다.
탄생은 죽음으로 흐르고,
남겨진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유영한다.
인류라는 거대한 강물은 그렇게 '흐름'으로 존재한다.
오늘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의 생이 소멸했음을 의미한다.
찰나의 순간조차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과거'라는 이름이 된다.
To live is to be dying;
and to be dying is to be,
in this very moment, alive.
산다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요,
죽어간다는 것은 지금 살아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삶과 죽음은 서로 등을 맞댄 채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죽음이라는 명확한 종착지를 향해,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자처럼 길을 나선다.
무언가를 붙잡으려 발버둥 치는 대신,
가볍게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며
그저 흐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