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시집에서 처음 접했을 수도 있고, 사회가 아이를 위해 제공하는 교과 과목의 책에서 봤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노랫말이나 이야기 속에서 접했을 수도 있다.
나는 글쎄, 솔직히 언제 시를 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처음으로 받은 시집은 기억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다.
아일랜드의 작가 예이츠의 시집이 바로 그것이다.
윌리엄 예이츠
엄마가 젊은 시절에 읽었던 시집이라는 하얀색 양장본.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책은 때가 타지 않도록 비닐로 곱게 싸여있었다.
시집이라고는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밖에 모르던 나에게 이 작은 양장본은 제법 낯설고도 세련된 선물이었다. 신화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해외의 시는 이름 모를 환상에 한껏 젖어있는 10대 청소년의 마음을 앗아가기에 충분했고 말이다.
시는 음악이 되고, 수필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하고자 하는 말, 표현하고자 하는 생리를 언어에 녹이는 개념의 미술로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 역사를 자아내며 존재해왔다. 이리 보면 '근본'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면 시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보기에는 그저 간단하며 실없어 보이는 글귀 몇 자 일지라도 품고 있는 것은 세월이요, 역사였으니 말이다.
... 서론이 길기는 했지만 결론은, 나도 시를 한 번 써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발단은 브런치였다. 브런치를 이곳저곳 기웃대다 보니 시를 쓰고 계신 작가님들의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고, 기세를 타 집에 있는 시집을 다시 찾아 읽다 보니 시가 쓰고 싶어 졌다.
한 번도 써본 적은 없지만, 쓰다 보면 잘 쓰겠지 싶은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나의 첫 번째 단락은, 다시 오지 않을 2021년의 여름에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