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왔다가 어느 틈에 가뭇없이 떠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생활 현장에서 젊음을 보내다 보면, 저마다의 발자취를 돌아보기도 전에 자식들조차 벌써 부모가 되어있다. 그 무렵 삶의 갈피를 더듬어 보지만 흐려진 기억의 조각들을 제자리에 맞추긴 어렵다. 아득한 느낌과 그리움이 밀려오면 일상에서 잊고 지냈던 가까운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먼저 찾아든다. 특히, 손주를 보거나 늙어가는 부모를 대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인생 여정을 돌이켜보기도 한다. 보통사람들은 살아온 세월의 더께가 두터워지면서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도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금요일 퇴근길 차 안에서 장인의 전화를 받았다. 바라보는 앞산 너머 해가 지고 하늘엔 노을 자락이 물들고 있을 때다. 아버지가 편찮은 관계로 사돈의 안부를 물으며 내일 점심 식사를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며칠 전 부모님과 우리 남매의 모임이 선약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다음에 하자고 전화를 끊었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혹시 처가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고 걱정이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에게 어머니(장모)와 통화해 보라고 했다. 확인해 보니 요즘 아버지 병환으로 서울 병원 동행은 물론, 환자 음식 해 나르느라 고생이 많아 격려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어버이날에도 두 분 생신에도 정담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다. 삶의 언저리에서 작은 틈도 내지 못한 것은 순전히 우리 탓이리라. 아무튼, 자식을 생각하는 그분들 '마음 씀씀이'에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이 되자, 장모는 아내에게 다시 전화해 기어이 점심을 같이하자고 하셨다. 나들이 겸해서 우리는 마지못해 승낙하고 말았다. 서둘러 주말 집 청소를 마치고 두 분을 태우러 가기 위해 자동차에 올랐다. 처가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자동차로 약 15분여 거리에 있다. 수도권으로 치면 지척으로 무척 가깝게 느껴지겠지만, 느슨하고 한적한 지방 소도시에서는 상당한 거리로 가늠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서두르는 것은 거리보다는 두 분의 성향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외출 시엔 거의 매번 우리가 도착하기 전, 집 앞에 나와 기다리고 계신다. 짧은 시간이라도 길거리에 부모를 세워두고 싶지 않은 건 자식 모두가 당연히 '같은 심정'일 것이다.
목적지인 점심 장소는 순천에서 벌교 가는 방향의 중간인 별량면에 있다. 매년 가을맞이 허수아비 축제가 열리는 곳의 끝자락 순천만 갯벌의 서쪽 연안에 위치한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긴 해도 오랜만에 가진 여유로 우리는 기분이 좋아졌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경치는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났다. 제법 냉기 있는 바람은 텅 빈 들판을 지키고 있는 벼를 흔들어 댔다. 미처 추수하지 않은 벼가 우리를 반기며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길옆에는 군데군데 키 큰 노란 코스모스가 줄지어 늘어서, 봄과 여름에 같은 빛깔로 피어나는 금계국을 연상케 했다. 바닷가 몇몇 식당과 가정집 담 곁의 감나무는 노랗게 여문 자식들의 얼굴을 자랑하고 있었다. 먼저 만져주고 데려가 달라고 서로를 뽐내고 있는 것 같았다.
도착해 보니 식당은 의외로 붐볐다. 그곳은 건물을 중심으로 꽤 넓은 주차장이 있는데도 빈 공간을 찾아 주차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장인은 지인들과 몇 번 방문해 본 모양새다. 먼저 내리시더니 대기표 발행 키오스크에서 번호표를 받아 오셨다. 새우를 파는 전문 직판장이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제법 큰 규모여서. 나와 아내는 깜짝 놀랐다.
우리가 생활 테두리에서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주변 곳곳은 점차 변해간다. 그렇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갈수록 실감한다.
대기 14번을 받았다. 입장까지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정도라고 직원이 설명해 주었다.
대기시간이 길고 넉넉한지라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와 더불어 해안의 갯벌을 중심으로 근처를 산책했다. 바다를 따라 불어오는 바람은 어느덧 겨울에게 손을 내미는 듯하였고, 갯벌에 널린 칠게들은 제각기 자기 집을 지어 들락거렸다. 육지와 바다 사이 경계를 지어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갈대는 이미 파란색을 버리고 옅은 갈색으로 단장하였다. 짙어가는 가을을 배경 삼아 몇몇 젊은이들은 순간순간의 장면을 간직하고자 번갈아 가며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이 보였다. 작고 큰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도 육십 대 초반에 들어 어느덧 ‘젊은이들의 모습이 부러워 보이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용자의 순환이 잘된 탓인지, 우리는 예상보다 20여 분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 넓은 공간의 많은 좌석 중에 한 귀퉁이에 배정받았다, 마주 보는 탁자가 없는 끝자리라서 그나마 오붓이 식사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 여겨졌다.
주요리는 새우 소금구이였다. 냄비에서 새우가 익어갈 무렵 우리는 소주와 음료를 주문하고, 새우가 다 익자 비닐장갑을 끼고 껍질을 벗겨서 먹었다. 새우 머리 부분은 모아 놓으면 종업원이 가져가 튀겨서 다시 갖다 주었는데 그 맛이 무척 고소했다.
주요리를 다 먹고 나면 새우를 비롯한 몇 가지 해산물을 넣은 해물 칼국수를 기본으로 비빔밥을 추가로 선택할 수 있었다. 아내는 혹시 부족할까 봐 비빔밥까지 주문했지만 칼국수가 적지 않은 양이어서 비빔밥은 거의 먹지 못하고 식사를 마쳤다.
바로 옆좌석에는 자매인듯한 세 여성이 정담을 나눠가며 식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정하게 보였고 인상도 좋아 보였다. 우리가 소금구이를 먹은 후 추가 요리를 주문하려 종업원을 찾자 본인들이 종업원을 대신 불러 주었다.
요즘같이 개인적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꽤 정감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하니 흐뭇했다. 남을 배려하는 친절이 무척 가슴에 와닿았다. 문득 우리는 담쟁이덩굴처럼 손을 잡고 어깨에 어깨를 걸고 가야 한다는 어떤 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타인에 대한 경계의 끈이 풀리면서 마음이 포근해져 세 자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그중 가장 어리게 보이는 셋째가 제일 예쁘다고 했다.
나름 친절에 답하는 인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식당을 나오면서 아내는 그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심성이 착하고 예쁜 사람들을 다 예쁘다고 하지 왜 한 사람만 예쁘다고 했냐고.
그렇다. 살아보니 겉모습보다는 튼실하고 넓은, 헤아리는 '마음'인 것을. 내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며 세 자매의 따뜻한 마음씨가 이 사회에 널리 전파되길 소망해 봤다.
두 번째 요리가 나올 즈음 나는 화장실을 핑계로 일어나 식사비를 계산했다. 두 분은 한결같이 “우리가 점심을 산다고 했는데, 왜 계산하냐”라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저희 들이 사 드리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얼버무렸다.
흐르는 세월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이제 그분들도 시간에 쫓기고 있다. 어느덧 여든을 훌쩍 넘어가고 있는 터이다. 자식으로서 앞으로 그분들과 몇 번이나 이렇게 바람을 쐬며 식사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가슴 한구석의 안타까움'을 표현하기엔 너무도 부족했을 따름이다.
식사 후 우리는 처가 근처의 카페에 들러 빵을 곁들여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장인은 과거 철도 기관사로 재직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은 교훈적인 경험담을 회고해 가며 들려주었다. 이에 질세라 어머니는 아내와 어머니로 가정을 꾸리며 겪어온 날들을 큰 줄기로 미담처럼 쏟아냈다. 말씀을 듣는 중에 나는 그분들 마음의 틈새로 잠시 들어가 보았다. 살아온 인생역정, 그리고 부모로서의 자식에 대한 애정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식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는데 찻잔을 들어 올리고, 빵조각을 집어 드시면서 손을 많이 떠는 모습이 보였다. 또 한 번 연세가 지긋해졌음을 실감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세월의 무상함과 애잔함에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카페에서 나오자 오후 한낮의 뜨거운 가을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시원한 바람과 높고 푸른 하늘이 무르익은 계절을 실감케 했다.
오늘의 맑고 쾌청한 날씨처럼 작별하는 그날까지 맘 편하고 건강하게 사시길 바라며 두 분을 배웅해 드렸다.
몇 시간의 외출이었지만 바깥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고,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도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남기고 싶은 말>
⋅부모의 사랑은 내려갈 뿐이고 올라오는 법이 없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엘베시우스)
⋅훌륭한 부모 슬하에 있으면 사랑이 넘치는 체험을 얻을 수 있다.
그건 먼 훗날 노년이 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베토벤)
⋅우리가 부모 됐을 때 비로소 부모가 베푸는 사랑의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헨리 워드 비처)
⋅네 자식들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하라.
(소크라테스)
⋅자식이 효도하면 어머니는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명심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