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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토파일럿 Jan 19. 2023

중개사 자격증 한 번 따봤니?

[멘토파일럿의 코로나 생존기 5탄(최종회)]

코로나 확산으로 백수와 다름없는 생활을 시작한지 3년이 흘렀다. 

일본 비행편이 개방되자 회복세가 완연해졌고 지금은 다들 코로나 이전의 바쁜 일상을 살아가기에 여념이 없다. 

같은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배달이나 인테리어 쪽은 대박을 쳤고, 재택근무 말고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던 업종도 많았으며, 심지어 항공업계 내에서도 화물기 보유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누군가에겐 호재가 되고, 또 다른 누구에겐 상상도 못할 절망을 줄 수 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한 내 몫이다. 


코로나를 탓하기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묵묵히 했다. 

일 년 반은 앞서 언급했던 포크레인, 대리운전, 수행기사, 탁송 같은 일로 알바를 했고, 나머지 기간 동안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했다. 


사실 좀 만만하게 봤다. 


내가 부동산 생초보도 아니고 매매▪경매 경험이 수십 건인데, 몇 개월 공부하면 합격하겠지 하고...

탁송하면서도 시간날 때 마다 유튜브로 인강을 들었다.

8월부터 삼개월간 집에 틀어박혀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방대한 공부량 때문에 전체내용은 엄두도 못 내고 핵심요약집과 기출문제만 사서 열심히 풀었다.      


결과는 불합격.      


시험을 마치고 가채점을 했는데 딱 한문제가 모자랐다. 

같은 해 응시한 서경석씨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출제오류로 정답 처리된 문제가 있어 합격하셨지만 난 그대로 불합격이었다. 

전원 정답처리로 딱점 합격이어야 맞는데... 하며 산업인력공단까지 찾아가서 답안지를 확인했다. 

출제오류 문제는 정상적으로 정답처리 됐지만 시험지와 답안지를 틀리게 마킹한 실수가 하나 있었다…….



이 끔찍한 공부를 또 해야 하나? 

그래도 1차는 합격을 했고, 22년에 도전하지 않으면 6과목을 다시 공부하는 것은 더 끔찍했다. 

고민 끝에 서경석씨가 광고하는 학원에 합격만 하면 낸 돈을 100% 돌려받는 과정으로 등록했다. 

그리곤 별거없다. 

직장일을 병행해 가며 엉덩이와의 싸움을 계속했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점수다. 

부동산 개업은 애초부터 고려사항이 아니었기에 중개사법은 큰 비중을 두지 않았고, 자격증을 따고자 맘먹은 이유가 공법과 세법 때문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투자하는데 뭐 그런 것 까지 할 필요 있느냐고.

아파트는 모르겠지만 토지를 전문으로 하는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실로 방대했다.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퍼즐을 하나씩 맞춰갔지만 내가 끼워 맞추는 퍼즐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알고는 싶었지만 어렵고 재미없는 공법, 세법을 무작정 공부하는 것은 예견된 포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굶주린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검투장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흔히 주식은 기관과 개인과의 싸움이고 부동산은 개인과 개인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주식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지만 정보력이 무기가 된 세상에서 기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낭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던 동생은 코로나로 10년이 넘는 타국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왔다.

2년 내내 작은 집에 팀을 꾸려 주식창만 바라보던 그 녀석도 손실만 보고 다시 태국으로 떠났다. 

부동산으로 난다 긴다 하는 지인들도 주식이나 코인으로 수억 손해 본 사례만 가득할 뿐 수익을 챙겼다는 자랑을 듣기는 어려웠다. 

물론 속절없는 폭락장에서 기관마저 손실을 보고 있겠지만 그들은 정보도, 자금도, 투자자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전문적인 투자기법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런 면에서 부동산은 좀 더 쉬운 것 같다. 

주식의 재무제표 대신 등기부, 감정평가서, 토지이용계획서, 도시계획 등 관련 자료를 분석해서 가치투자를 한다.

내 경쟁상대는 무조건 한 명의 개인이다. 

좋아 보이는 부분은 어필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잘 포장하면 된다.

굳이 묻지도 않는 단점을 알아서 설명해 줄 만큼 난 그렇게 착한 놈이 아니고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근거한 판단을 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간파하고 노련하게 밀당을 한다.



부동산 호황기에 누가 돈을 제일 많이 번다고 생각하는가?

정부다. 

주식은 사팔사팔해도 거래비용이 얼마 안 들어가지만 부동산은 취득, 보유, 양도를 통해 거래가 빈번할수록 정부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다. 

세금에 대해 모르면 두려워서 아예 시작을 못하거나, 그저 돈 된다는 소리에 이것저것 주워 담았다가 세금폭탄 맞고 꼬꾸라지거나 둘 중 하나다. 

주택용 부지가 그냥 땅이 아니고 취득, 보유, 양도시 마다 달리 적용되고 상업용 건물의 토지분, 건물분 비율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는 것을 당신이 알지 못하는 데 그걸 알아서 계산해줄 똘똘한 전문가들은 극소수다. 

전문가 레버리지도 말귀를 알아먹어야 가능하다.    

  


자격증을 가진 지금도 지식 면에서 그닥 나아진 것도 없고 경험도 미천하지만 이젠 퍼즐크기를 대략이나마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퍼즐의 뒷면엔 아는 만큼만 보이는 위치표식이 새겨져 있다.      



23년 새해를 맞아 또 다른 퍼즐을 하나 맞춰보려고 한다. 

일 년에 시험이 세 번 이나 있지만 이렇게 “도-저언!!!” 이라고 

미리 외쳐 놓지 않으면 내 안의 자아가 또 꾸물거릴게 분명해서 눈가리개를 한 채 검투장으로 밀어 넣고 문고리를 잠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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