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파일럿의 코로나 생존기 4탄]
여객기와 화물기 뭘로 타고싶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화물기다.
매번 화물기만 타고 다닐 때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잘 데워진 식사와 커피, 때론 아기자기한 간식들을 내놓는 객실승무원들과의 비행이 그립기도 했지만, 다시 둘 다 가능해지니 역시 화물기를 타고 싶다.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해서 엔진을 끄기까지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해 기장이 책임을 면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에 대해 완벽하게 대처해야 그나마 본전이다.
지연이 빈발하며, 동식물 냄새가 고약하고, 위험화물의 폭발 가능성이 상존할 지언정 공황장애, 심장마비 등의 응급상황, 그리고 평소에 멀쩡하다가 “문 닫고 출발합니다!” 라는 신호에 본색을 드러내는 일부 진상까지 사람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부담이 훨씬 크다.
누군들 마찬가지 아닐까?
대리운전 역시 손님을 모시고 운전 한다는 것은 혼자 운전하는 것에 비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리운전이 익숙해 진 전업기사라면 누구라도 낮 시간에 손님 없이 편하게 운전해서 돈 벌고 싶은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그래서 별도의 보험을 추가로 가입 후 차량만 이동시켜 주는 탁송을 시작했다.
으이구……. 뭐하나 깊게 파지 못하는 맛보기 인생아!
중고 매매된 차를 가져다주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점검기간이 도래한 차량을 정비업소에 입▪출고 시키는 일이었다.
일은 많았지만 대리에 비해 단가가 낮았다.
시간을 더 투입해야 야간 대리 수익을 맞출 수 있는 정도…….
그렇게 며칠을 동네방네 쏘다니다가 나만의 냉장고를 발견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작은 정비소였는데 일반차 정비도 하지만 주력은 쿠팡 1톤트럭이었다.
워낙 주행거리가 많은 차량들이라 타이어, 오일을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했고 이 정비소가 입찰을 통해 계약을 따낸 것이다.
정비가 마쳐질 때마다 앱에 콜을 띄웠는데 한 번 배우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쿠팡 물류창고에 차를 넣고 빼는 절차가 좀 까다로웠다.
입구에서 체온측정 후 쿠팡앱으로 본인인증도 해야 했고, 사무실에서 차키를 받아 셔틀을 타고 이동해야 주차장까지 갈 수 있었다.
사장님은 그때마다 매번 기사에게 설명해주는데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 한 건이 끝나면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콜을 잡기위해 움직여야 했는데 여긴 출발지와 목적지의 단순왕복이었다.
방법을 터득하고 나서 난 정비소 대기실에 둥지를 틀었다.
뜨거운 한여름 열기를 식히지도 못하고 일하는 직원에게 아이스크림과 박카스를 건네 가며 친해지려 애썼다.
항상 입출고 왕복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고 입고, 출고만 수차례 할 때는 탁송으로 가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물류창고를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씩 걸려서 군말 없이 차를 가져왔다.
며칠 지켜보던 사장님이 내게 정비차량 목록을 내밀었다.
쿠팡기사들은 보통 아침8시에 물류창고로 출근해서 운행할 차량을 골라 9시면 택배를 싣고 출발한다. 아침에 가더라도 우물쭈물 하는 사이 에어컨 고장이거나 타이어 펑크가 나서 운행이 어려운 차량만 남고는 사라져버린다.
난 물류창고 입출고 절차를 빠삭하게 알았고 사장님이 주신 정비목록이 있었고, 비장의 무기 포스트잇이 있었다.
물류창고에 도착하자마자 리스트를 보고 차를 찾아 앞 유리에
“정비예정 차량, 금일 운행금지”
라고 붙여 놓았다.
그날이후 쿠팡차는 절반이상 내 몫이 됐다.
한 번 왕복에 4만원 이었는데 아다리가 잘 맞는 날은 7번 이상 오가기도 했다.
이런날이면 새벽에 나가서 깜깜할 때 집에 들어왔다.
셔틀처럼 같은 코스를 오갔기 때문에 핸드폰에 네비대신 중개사인강을 틀어놓고 주구장창 운전을 했다.
돈벌이가 쏠쏠하네라고 느끼던 어느 날 아침 큰일을 본 변기가 온통 선홍색이었다.
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사장님께 리스트를 반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