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별점 4.5점

by Dd

요즘 말하는 로맨스 판타지나 ‘혐관’ 서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캐서린, 그녀의 오빠 힌들리, 그리고 히스클리프는 한 집에서 함께 자란다. 히스클리프는 아버지가 데려온 고아로,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는다. 아버지가 힌들리보다 히스클리프를 더 아끼자 힌들리는 그를 증오한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서로 사랑하지만, 결국 캐서린은 에드거 린튼과 결혼한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말을 오해한 채 집을 떠난다. 세월이 흐른 뒤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힌들리를 몰락시키고, 캐서린은 병들어 죽는다. 히스클리프는 린튼 가문과 언쇼 가문에 대한 복수를 위해 집요하게 움직인다. 결국 캐서린의 딸 캐시와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이 사랑에 빠지고, 히스클리프 또한 죽음을 맞는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하녀 넬리가 화자가 되어 전달하며, 결말은 다음 세대의 화해와 사랑을 통해 비교적 희망적으로 마무리된다.

히스클리프는 복수를 명분으로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헤어튼과 캐시가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복수의 허무함을 깨닫고 삶의 의지를 잃는다. 그는 점점 식사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결국 캐서린을 따라가듯 죽는다. 캐서린 역시 병으로 죽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삶을 포기한 자발적 죽음에 가깝다. 젊은 날의 선택, 즉 린튼과의 결혼을 후회하며 스스로를 갉아먹은 결과처럼 보인다.

사실 린튼과의 결혼은 조건만 보면 나쁘지 않다. 그는 자상하고 부유하며 캐서린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은 늘 공평하지 않다. 캐서린은 린튼을 사랑하지만, 히스클리프를 더 사랑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안정적이고 체면에 맞는 삶을 선택한다. 히스클리프와 함께하는 삶은 더 뜨겁고 자유로웠을지 모르지만, 재정적·사회적 문제를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캐서린은 넬리에게 자신이 린튼과 결혼하는 이유가 히스클리프를 돕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자기 기만에 가깝다. 히스클리프와 결혼할 수 없다는 말이 그녀의 진심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타인에게 하는 거짓말보다 더 나쁜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케서린이 히스클리프를 정말로 사랑했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모험보다 안정을 택했다.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희생처럼 보이는 선택에도 자기 보존의 논리가 숨어 있다. 히스클리프 역시 성숙하지 못하다.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오해를 풀기 위해 대화하거나 설득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도망친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상황을 피한다. 그러고는 시간이 지난 뒤 이미 결혼한 캐서린을 찾아와 그녀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의 존재는 캐서린의 일상을 뒤흔들고,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더욱 후회하게 된다.

그들의 이기적 선택은 다음 세대에까지 상처를 남긴다. 린튼은 불행해지고,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와의 결혼으로 파괴된다. 캐시는 어머니 없이 자라고, 헤어튼은 학대 속에서 성장한다. 히스클리프는 어린 시절의 학대와 상실에 묶인 채 복수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성인이다. 과거는 설명이 될 수는 있어도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자신의 상처를 이유로 타인을 파괴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겉보기에는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 작품이 결국 ‘선택’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순간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캐서린이 린튼의 청혼을 고민하던 순간이 첫 번째 갈림길이었다. 결혼을 망설인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모른다고 말하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알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과 주저함은 경고 신호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과 체면을 의식하며 선택한다. 그러나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다.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선택이 반드시 나에게 옳은 선택은 아니다. 타인을 위한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는다. 무대 위의 배우처럼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기보다, 무대 밖에서 자기 삶을 사는 편이 더 자유롭다.

히스클리프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랑보다 자존심을 택했다. 사랑한다면서도 상처받은 자존심을 이유로 도망쳤다. 문제를 마주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회피는 상처를 키울 뿐이다. 그는 강해져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더 왜곡된 방식으로 문제를 확대했을 뿐이다. 이사벨라를 이용하고, 캐서린을 흔들며, 복수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결국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소모한다. 그는 과거에 갇혀 자기연민으로 무장한 채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한다. 그러나 방의 간수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성인이 된 이후의 선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완벽한 인생은 없다. 그러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모든 선택은 그 순간의 최선이었을지라도, 이후의 삶은 다시 선택할 수 있다. 내 삶은 남의 것이 아니다. 선택의 책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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