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 3점
제목만 보고는 심리 스릴러일 줄 상상도 못 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가정교사로 부임해서 이전의 가정교사였던 죽은 여자와 남자 하인의 유령을 보고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유령의 편에 서서 거짓말을 하는지, 주인공이 정말 유령을 보는 것인지, 허상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책 속에서는 누구도 믿을 수 없게 써놨다. 오히려 주인공이 진실을 밝히려 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죽게 된다. 몇 년 전에 크게 흥행한 영화 ‘곡성’ 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다 보면 누가 선인지 누가 악인지 누굴 믿어도 되는지 혼란스럽다. 나사의 회전 속 여자 주인공도 유령을 몇 번 보고 나서는 자신이 지내던 일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 나에 대한 믿음을 잃는 순간 일상은 공포가 된다.
나는 공포 영화와 온갖 괴담을 좋아한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 집의 안락함 속에서 천둥번개를 즐기는 것처럼, 안전한 집에서 내가 언제든 벗어날 수 있는 공포를 즐기는 것은 환경과 콘텐츠가 대비되어 오히려 아늑함과 안전함을 내게 느끼게 해 준다. 마치 잘 통제된 스릴인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말이다. 보통 괴담 속 인간은 나약하다. 그리고 금기를 언제나 깬다. 하지 말라는 것은 꼭 청개구리처럼 하고야 마는 것이다.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금기에 도전하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시도들이 부질없든 의미 있든 그 과정은 흥미롭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사실상 모든 문명도 이렇게 시작된 게 아닐까. 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불을 마주하게 되고, 불을 사용하게 되고, 그렇게 농경사회와 모든 문명이 시작됐다. 괴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소리, 이상한 형체, 가면 안 될 것 같지만 꼭 사람들은 소리나 형체를 확인하러 간다. 위험할 것을 알면서도 간다. 후회하게 될 걸 예감하지만 간다. 그리고 그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그다음 무속인이나 종교인을 찾아가든 직접 귀신과 싸우든 각자만의 방법으로 미지의 존재와 두려움을 해결해 나간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마주해야 한다. 실제로 그것이 뭔지 알아야 부적을 쓰든 퇴마사를 부르든 해결책이 나오니 말이다. 회피하고 도망만 가서는 두려움이 해결되지 않는다. 무섭지만 정확히 두려움의 원인과 정체를 알아야 우리는 대처할 수 있다. 처음 공포 영화나 괴담을 볼 때는 하지 말라는 걸 왜 하지! 했는데 생각해 보면 하지 말라는 걸 하는 인간의 속성은 이브와 판도라 때부터 무수히 반복되던 인간의 패턴 중 하나다. 초반에는 그들이 어리석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지혜롭다 생각한다. 호기심이 개구리를 죽인다는 속담이 있지만 호기심은 대부분 변화를 불러오고 (물론 긍정적인 변화만 불러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다. 미지는 알지 못할 때 미지지 한 번 알게 되면 지식이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괴담과 공포 영화는 음모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허구 같지만 일부는 진실이다. 두려움의 내면에는 언제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처녀 귀신이 많은 것은 그만큼 희생당한 억울한 여자들이 많았기 때문이고, 이들은 귀신이 되어서 사또나 수사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 억울함을 풀어달라 호소한다. 무미건조하게 이들의 억울함을 공포의 서사가 없이 푼다면 하나의 안타까운 사건이 되었겠지만 공포의 서사가 덧붙여지면서 이들의 사연과 억울함이 더 강조된다. 그래서 좋은 점은 사람들이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기억에 오래 남게 되면 아무래도 비슷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나도 모르게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고, 이것이 오래 살아남는 이야기의 힘이기도 하다. 특히 공포를 이야기에 넣어서 강렬함과 권선징악 서사도 함께 넣는다면 사람들은 이를 교훈 삼아 나쁜 짓을 안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공포의 부작용도 있기는 하다. 다른 그룹의 타자화와 마녀 사냥 등의 역사적 부작용도 있었다. 공감과 연대를 위한 공포가 아닌 배제를 위한 공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공포에 부정적으로 대처했을 경우의 사례다. 공포는 함께 극복해야만 의미가 있다.
매번 비슷한 형태의 공포영화, 괴담이지만 두려움 속에 숨어있는 귀신들의 이야기와 두려움을 자신의 방법대로 소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도 바르게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어리석은 이브와 판도라의 후손으로서 앞으로도 충분히 궁금해하고 마음껏 어리석을 짓을 저지르면서 살겠다. 어리석은 짓의 결과로 항상 지식과 교훈이 남으니까 호기심도 해결하고 남는 장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