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두려워한 길에서, 나는 나를 발견했다
수학 전교 3등이었던 내가 문과로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
점수 아까운데 왜 굳이 취업 안 되는 과로 가냐고.
문과반에 들어가고 첫 6월 모의고사는 이과와 범위가 겹쳤다.
선생님께 이과 시험지를 달라고 하고 모의고사를 쳤다.
1등급이 나왔다.
사람들은 내가 바보같은 선택을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국어와 사회를 더 좋아하고 잘했다.
수업 시간에 문학 작품으로 몰래 눈물을 훔쳤고, 대한민국이 어떤 체계와 역사를 가지고 운영되는지, 철학가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배우는 게 재밌었다. 자연과학은 그닥 관심이 없었다.
당시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유명한 인강 선생님은 문과 가면 인생이 망하는 것처럼 자신있게 말했다. 일부 이과 친구들은 문과생을 은근히 하대하고 무시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문화인류학을 선택했다. 2명 뽑는 연세대 수시 전형에서 당당히 합격통지서를 받았고, 대학공부는 예상대로 행복했다.
하지만, 인문학 전공이라고 하면 대다수는 점수 맞춰 지원한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가고 싶어서 간 건데, 억울할 때도 있었다.
전공 수업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토론하고, 읽고, 쓰는 시간이 충만했다. 자연스레 석차 1등이 됐지만, 억지로 공부한 게 아니라 좋아서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말했다.
‘연세대 갔으면 뭐해. 취업도 안 되는 문과인데.’
세상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갔다.
2025년, 기사가 났다.
“美 컴퓨터공학 졸업생 실업률 6~7%로 취업난”
“인문학 전공, AI시대 새 강자로 부상”
2017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AI를 비롯한 시대의 숨가쁜 변화를 상상조차 못했을 거다. 다만 확실한 건, 남들의 시선보다 끝까지 내가 좋아하는 걸 택했기에 후회는 없다. 만약 열일곱의 내가 주변에 휘둘려 다른 길을 갔다면, 지금쯤 큰 아쉬움을 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미국에서 연예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말 감사하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매거진에 영어로 글을 기고한다. 대학을 다니면서 남들이 다 공부하던 비즈니스 대신 인문학 글쓰기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던 덕분이다. 인류학에서 배웠던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로 미국 에디터 분들이 내 글을 좋아해주시곤 한다.
남들이 No를 외칠 때 혼자 좋아하는 걸 쫓는 건 때론 불안하고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선택 덕분에, 지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길을 잡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꿋꿋이 좋아하는 걸 택한 선택이 앞으로도 나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될 거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