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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힐링여행 day3.part3

자전거 여행

by 정좋아

자전거를 타고 종달리라는 작은 마을을 돌았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탄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아서 살짝 불안정하긴 했지만,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곧잘 달렸다.


굽이굽이 굽어진 시골길, 대로 옆에 작게 나 있는 자전거 전용 길, 해안을 따라 나 있는 자전거 전용 길. 다양한 길들을 마주할 때마다 새롭고, 긴장되고, 또 흥분됐다.


마을을 구석 구석 돌아다니고, 잠깐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궁금했던 카페와 책방에 들렀다.


꽤 쌀쌀했고, 옷이 그리 두껍지 않았는데도, 10분 정도 달리고 나면 이마에도, 등에도 땀이 흘렀다. 긴장한 탓도 있는 것 같다. 가려고 생각해둔 모든 곳들이 자전거로 5분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겁이 많아서, 또 힘이 부족해서 느릿느릿 다니던 나로서는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다.


자전거로 네 곳의 카페와 책방을 지나다녔다.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구경만 하고 지나온 카페들은 더 많다.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방문하는 곳들마다 각각의 색깔과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저 그런, 인스타 감성의 카페라기보다는, 그 공간을 통해서 사장님들이 전하고, 표현하고, 만들고자한 의미가 느껴지는 곳들이 많았다.


어떤 카페에서는 사장님과 대화도 나눠 보았고, 대화를 나누기 조금 어색하면 길게 글을 남겨 두고 오기도 했다.


사실 자전거를 탄 직후 카페에 들어서면 순간 땀을 뻘뻘 흘리며 정신이 혼미해져 있어서 카페를 둘러볼 여유가 잘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옷을 한겹 벗어던지고, 가장 마음에 드는, 구석진 자리를 골라 앉아 숨을 골랐다. 그리고 조금 뒤 여유가 생기면 카페 안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나로거는 참 감사했던 게, 내가 돌아다닌 길목이나 카페, 책방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테이블 정도 있다가도 잠시 뒤 사라지고 나만 남는 일이 반복됐다. 난 그게 마음이 참 편했다. 사람에게 상처 받고, 사람이 두렵고, 그러면서도 사람을 좋아하고, 기대를 하는 나이다. 트라우마로 남아버릴지도 모를, 최근 공황발작의 시발점이 된 일의 여파인 것 같은데, 지금은 사람 많은 곳이 싫다. 나 빼고 자기들끼리 하하호호 웃는 사람들늘 보는 것도 지금은 서글프다. 그리고, 또 조용함, 차분함이 내게 필요했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좋고 감사했다.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장사가 되기는 하시려나. 성수기도 지났고, 엄청난 홤금 연휴들도 막 지난 지금 이 시기에, 평일 낮이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분들의 가게가 더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그런 생각은 뒤로 하고, 마지막 카페를 나서기 전 나는 자전거 대여를 1박에서 종일로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전거로 십분만 가도 이렇게 지치는데, 이십오분, 삼십분을 달려 숙소를 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다음날 오전에 정해진 시간까지 자전거를 다시 종달리까지 타고 달려가 반납할 자신은 더더욱 없어졌다. 자전거 대여 가게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바꿔 주셨고, 따뜻한 말들을 서로 건냈다.


자전거를 종달리에서 빌려 그 동네를 구석 구석 돌아다닌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이만하면 자전거는 충분했다. 달리는 내내 나를 감싸준 바닷 바람, 지미봉, 푸른 수평선, 파도 소리에 나는 참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써보는 것 같다.


그리고, 먼 거리를 달린 건 아니지만, 낯선 곳에서, 나름 용기를 내어 자전거를 타고 새로운 경험들을 해낸 나 스스로가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조금 감격스러웠고, 뿌듯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 모든 것들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인 내가 자전거를 이렇게 탈 수 있었던 건 모두 부모님 덕분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제주도에서 처음 자전거를 탄 경험도 부모님이 선사해주셨다. 지금의 내 상태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많이 자책하고 있응 부모님에게 미안했다. 힘들 때 의지하고자 하는 기대 조차 잃게 되어 부모님이 원망도 스럽고, 내 상처와 우울이 엄마 아빠 잘못이 아니라고, 자책하지 말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고맙다고, 너무 많이는 걱정하지 말라고. 그 정도까지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글을 쓰다 보니, 나는 이전에 혼자 유럽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맞다. 난 활기차고, 활동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지. 무기력이 내 본 모습은 아니었지. 무기력하게 산지 꽤 된 갓 같아 잊어버리고, 난 원래 게으르고,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아니었던 걸로. 잠시 지쳐서 어쩔 수 없었던 걸로.


어쨌든, 보람 차고 뜻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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