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내 나는 뚜벅이의 비애
요가를 마치고, 조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이 걸어서 30초 정도 거리에 있는데, 비가 거세게 흩뿌려지고 있었다. 문을 나서자마자 바람과 비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우산도 없는 나는 그냥 후드를 뒤집어 쓰고 달렸다. 잠깐이니까.
식당에 도착하니 내가 일등이었다. 내가 식당에 자리를 잡은 테이블은 바다가 잘 보이는 테이블이었다. 주변에 비가 계속 새고 있어 바닥이 좀 젖었지만, 테이블쪽은 괜찮았다.
사장님이 바닥을 닦으러 오셨다가, 말씀을 걸어오셨다. 이날도 내가 기분이 괜찮아서인지 그런 대화가 불편하지 않았다. 나도 음식이 너무 맛있다, 가게 이름 뜻이 궁금하다 등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 사장님이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이런 날은 숙소에서 자라고 하셨다. ‘그러게요 허허’
숙소에서 낮잠을 자는 건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쉬러 와도 낮잠을 잔다고? 그건 너무 아깝다.
숙소로 돌아와 조금 느긋하게 씻고, 차도 마시며, 뭘 할까 고민을 했다. 공방 같은 곳에서 반지를 만들까, 미술관을 갈까. 네이버 지도를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딱히 꽂히는 곳이 없었다. 있어도 너무 멀었고, 미술관도 정원과 건축물이 메인인 곳이어서 이 비바람을 뚫고 갈 수는 없었다.
로비에서 우산을 빌렸지만, ‘바람때문에 아마 의미는 없을 거예요’라는 말에 현실을 그제야 좀 파악했다.
오늘은 그냥 숙소에서 쉬어야겠다 싶었다. 택시비도 아깝고,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으니까.
그런데 숙소에서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디서인지 들려오는 물이 관을 타고 빠르게 흐르는 소리, 뭔가 퉁! 퉁! 자꾸만 천장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 거센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고민 끝에,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카페로 가기로 결심했다. 가려고 벼르고 있던 카페였다. 분위기도 좋고, 베이커리나 음료도 맛있어 보였고, 뷰도 물론 좋아 보였다.
문제는 거리였다. 차로 1분 거리라 택시가 잡히지도 않을 것 같았고, 1분을 위해 택시비 5천원을 내는 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요가복을 입고, 그 위에 반팔티랄 입고, 후드를 뒤집어 썼다. 바지는 어차피 젖을 것 같아서 허벅지 반까지 오는 짧은 레깅스를 입었다. 새로 산 책은 비닐봉지에 싸서 후드 앞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우산을 손에 쥐고 밖으로 나섰다.
방수가 되는 옷도 아니고, 옷도 몇벌 없지만 뭐 나중에 말리면 되겠지 생각했다. 평소에 비 맞는 걸 별로 꺼려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젖는 건 문제는 아니었다. 바람이 무서웠다. 추운 건 진짜 싫은데.
그래도 비바람을 뚫고 꿋꿋이 해안 도로 길가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우산은 피지않고 옆구리에 꼭 끼고, 두 손은 주머니에 넣었다.
아.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너무 추웠다. 그래도 좀만 더 가면 돼! 외치며 비바람을 이거내고 카페에 도착했다.
아, 망했다. 카페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사람이 바글바글해 앉을 곳 조차 없었고, 좌석은 앉기는 불편하고, 보기에는 좋은 구조였다. 허무함과 당황스러움에 벙쪄 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를 신기하게 보는 몇몇의 눈동자를 느꼈다. 물에 빠진 생쥐마냥, 머리까지 꽤 젖어서, 옷은 츄리닝차림. 신기했을 법도하다. 모두 차를 타고 온 것 같았다. 뽀송뽀송.
후기에 ‘요즘 최고의 뷰 맛집’이라는 말을 봤을 때 알아차려야 했는데. 남녀노소, 국적불문 다양한 사람들이 넘쳐났고, 활기차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려고 온 거였는데, 이건 내가 기대한 게 아니었다. 따뜻하고 향긋한 차와 운치있게 안개가 낀 바다 뷰는 내 숙소 방에도 있다. 나를 불편하데 하는 소음들을 피해온 곳에서 나는 또 다른 소음들을 만났다.
내가 지금 좀 까칠한 건 맞다.
하지만 이 사람 적은 동네, 올 일 없는 동네에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냥 돌아가기는 너무 억울해서, 소금빵과 제주말차라떼를 시켰다. 이것도 실패. 맛이 없었다.
책을 읽으려고 했으나, 시끄러워서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사실 조금 많이 목소리가 큰 분이 한분 있었다. 오자마자 자기가 제일 좋은 자리에 앉겠다고 소리 쳐서 모든 사람이 쳐다보는 일도 있었다. 죄송하다고 했고, 괜찮다고 나도 얘기했지만 시종일관 높고 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의 나는 그런 것들이 나무나 불편했다.
시람들은 참 이상하다. 나도 비슷하지만, 뷰 좋은 카페라고 찾아와 바다 앞 통창 자리에 붙어 앉아 연신 각자의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뭐, 꼭 바라보고 음미해야만 풍경이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그래도 이상하긴 하다.
아무튼 참다 참다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방을 나설 때보다 훨씬 망설여졌다. 그 길이 험난하다믄 걸 이미 알아버렸기때문다. 하지만 대안은 없었다. 그래서 조금 늦장을 부리다가, 다시 용기를 내고, 우산도, 우비도 없이 거친 비바람 속을 씩씩하게 걸었다. 후드 앞주머니에는 비닐로 감쌈 책을 꼭 품고.
뛰지는 않았다. 뛰면 넘어질 수도 있고, 마음이 더 조급해질 것 같아서. 그냥 씩씩하게, 이무렇지 않은 듯 걸었다. 생각보다 숙소는 가까웠다.
돌아와서 젖은 옷들을 옷걸이에 걸어뒀다. 회색 푸드가 검정색이 되어 있었고, 신발도 다 젖어서 물이 찍찍 마왔다.
짠내가 나긴 하지만, 스스로 좀 웃긴 것 같다.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