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 중에 비상벨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
이날도 아침 명상과 요가 모두 실패했다. 사실 알람을 듣고 깨긴 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너무 피곤했다.
사실 전날 밤에 약간의 사건이 있었다.
숙소 방에서는 정말이지 엄청나게 큰 물 쏟아지는 소리와, 그 물 속에서 통 같은 게 관에 부딪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비가 많이 오는 탓인 건 알지만, 소리가 너무 컸고, 미묘하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친구들에게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자 빗소리와 파도소리가 낭만적이라고 했다. 아니. 그건 파도가 아니라 천장 어딘가에 있을 배수관(?)인지 뭔지 아무튼 건물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래서 잠에 들기가 조금 힘들었도, 어김없이 약간 선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 소리때문인지 잠에서 살짝 깼고, 아 쉽지않네 생각하며 다시 자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문쪽에서 아주 작게 전화 벨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너무 작아서 순간 별 다른 생각은 없고, 그런 소리가 나는구나 정도만 생각하고 지나갔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이건 비상벨 소리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닌가. 화장실 환풍기 소리인가 했는데 역시나 문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문을 열어보니 엄청 큰 소리로 비상벨이 울리고 있었다.
다른 방에서도 한 남자 분이 문을 열고 나와서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로비로 내려갔다.
당황스러웠다. 로비에서는 비상벨이 더 크게 울리고 있었는데, 불은 꺼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그때 한 모녀가 내려와서 함께 서성였다. 프론트에 ‘자리 비움. 010-xxxx-xxxx’ 이렇게 적힌 팻말이 있었는데, 거기로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인지 전화를 걸기가 망설여 졌다. 누군가 대신 좀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제금 심각한 상황같은데 나만 다급하고, 걱정하는 게 이상한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내려 와 있던 모녀는 비가 쏟아지는 문 밖을 보며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위에서 마주쳤던 같은 층 남자 분도 로비로 내려왔다.그 분을 볼 때쯤, 뭔가 연기가 나는 것처럼 앞이 살짝 뿌연 것도 같았다. 그래서 그분한테 ‘이거 연기 나는 것 같지 않아요?’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분은 대꾸도 하지 않고, 로비 데스크로 가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 프론트에 적혀 있던 직원의 전화번호로 전화한 것 같았다. 1분도 안되어서 낮에 늘 보던 호텔 직원분이 어디선가 나타나셨다. 그리고 직원실에 들어가 비상벨을 끄고, 프론트로 나왔다. 나와서는 본인도 당황한 듯 멀뚱멀뚱 서계시다, 에러였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전화를 했던 남자 분이 화를 냈다. “지금 이 소리가 5분이나 울렸다고요. 여기 사람들 다 자다 깨서 나온 거 안 보여요?”
직원 분이 죄송하다고 하셨다. 뭐 그 남자 분이 화가 난 것도 이해는 하지만,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좀 과하고, 무례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직원 분의 대처도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비상벨이 일단 이렇게 울렸으면, 정말 에러가 맞는지, 이상은 없는지 투숙객들이 안심할 수 있게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안내같은 건 없었고, 그저 비상벨을 다급하게 끄는 데 급급했덤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오작동이면, 아무 이상 없는 거죠?“ 그분은 아무 이상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말도 믿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누전인지 뭔지 잘 모르지만 뭔가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나 싶었다. 가뜩이나 방에서도 이러다 벽인지 천장인지 어딘가에 숨겨진 배수관도 터져 버리는 게 아닐까 싶게 시끄러웠고, 방은 아니었지만 건물 여기 저기 물이 계속 새고 있었다.
전에 아파트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분명히 폭발음이 지하에서 들렸고 곧바로 비상벨이 울렸는데 경비 아저씨는 비상벨을 바로 끄며 오작동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상했고, 아빠가 지하실 근처로 가서 보니 연기가 나고 있었다. 작은 불씨였지만 주변에 나무로 된 것들이 많이서 지칫하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곧바로 119에 전화를 했고, 정말 빠른 시간 내에 소방관 분들이 오셔서 불씨를 꺼주고 가셨다. 그래도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이런 경험을 생각해도, 나는 겁이 났다. 불안했다. 찝찝한 마음을 뒤로 하고, 방에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공황 약을 한알 더 먹을까 고민하다, 만약에 정말 불이라도 나서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경계를 늦추고, 너무 푹 잠 들어버리진 않을까 싶어서 먹지 않았다. 그래. 지금은 적정한 불안과 경계가 필요한 시간이다.
이 일이 터진 게 새벽 두시쯤이었다.
불안해 하다가 세시가 좀 넘어서 잠이 들었고, 역시나 깊게 잠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