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아
요가와 명상은 실패했지만 조식은 성공적으로 맛깔나게 먹었다. 밥 먹는 데 집중하려 했지만, 체크아웃 시간도 얼마 안 남아서 체크이웃하자마자 어디로 갈지 빨리 정해야 항 것 같았다. 결국 핸드폰을 한손에 들고 검색을 하며 한손으로는 수저를 열심히 움직였다.
원래 이날도 비가 온다고 했어서 비 오는 날 가보면 좋을 것 같은 카페를 가보려 했다. 그리고 비행기 시간 세시간 전 쯤에는 원데이 그림 클래스를 예약해 뒀다. 그 사이에 시간이 꽤 많이 뜰텐데 그땐 뭘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생각을 미뤄뒀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비가 오지 않았다. 흐리긴 했지만 그래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다시 고민을 하게 됐다. 원래 계획대로 하면 오후 시간이 뜰텐데 그냥 우도를 가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사실 마음은 우도보다는 그전에 계획해 둔 카페로 더 향했다. 그 카페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였고, 그 동네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동네는 조천읍 쪽인데, 조금 더 숲 위주의 지역이었다. 숲을 좋아하진 않지만 바다는 이미 많이 봤고, 비 오는 날 혹은 비 온 직후의 숲이 주는 약간 가라앉았지만 차분한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뜨는 게 너무 애매할 것 같아서 우도로 가기로 결심했다. 우도에 가서는 자전거를 탈 생각이었다. 인터넷으로 배 시간, 자전거 렌탈샵, 가볼만한 식당과 카페들을 찾아 저장해 두고, 시간에 딱 맞춰 체크아웃을 했다.
바로 택시를 불러 탔다. 기사님은 여자분이셨고, 머리색이 약간 어두운 파란색이어서 인산적이었다. 창문을 열어도 되냐고 묻자 괜찮다고 하셔서 창문을 내리고 점점 더 가까워지는 성산일출봉의 사진을 찍었다. (역시 멀리서 보는 게 더 예쁘다.)
택시를 타고 성산항으로 도착했을 때, 기사님이 “지금 배 안 뜨는 것 같은데?”하셨다. 순간 아닐 거리고 생각했다. 아니길 바랐다. 그래서 내가 벙쪄서 매표소 쪽을 바라보다 “정말요?”하자 “응. 배 안 뜨네. 배도 없잖아”하셨다.
당황스러웠다. 어디로 가지? 일단 내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 기사님이 “어떻게 할까? 어디로 갈래?”하셨다.
1분만 기다려달라고 부탁드리고, 다급하게 네이버 지도를 켰는데 마음은 급하고, 어디로 가면 최적의 동선인가 생각하기에는 머리도 아팠다. 그냥 이렇게 된 거 가보고 싶었던 동네, 가보고 싶었던 카페로 가자 싶었다. 그래서 기사님께 카페 주소를 말씀드렸다.
숙소에서 성산항까지는 5분거리였는데, 새로 정한 목적지까지는 다시 25분 정도를 가야했다. 그쪽으로 가도 되냐고 여쭤보니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해 주셨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막상 우도를 못 가게 되니 아쉽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내가 본심으로는 더 가고 싶어했던 카페를 가게되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다. 우도는 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 특별히 좋다고 느끼진 않았던 것 같아서 굳이 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근데 성산일출봉과 마찬가지로, 워낙 동쪽에 있고, 보통 제주도에 오면 동쪽은 잘 안 오다보니 가야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 오히려 좋아’
25분 정도 택시를 타고 더 달렸다. 기사님이 친절하신 분인 것 같아 마음이 좀 편해져 말을 붙여보고 싶었다.
“어제처럼 비 많이 오고, 바람 많이 부는 날도, 운행을 하세요?”
“그럼. 대신 어두워지면 위험해서 일찍 들어가요. 어제 정도면 바람 많이 분 건 아니기도 하고.”
“어제가 많이 분 게 아니에요? 저는 어제 너무 무서웠는데요?”
기사님이 웃음을 터뜨리셨다. 어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원래 이맘때에 이렇데 비가 오면 안되는데, 농작물에 피해가 크다고 하셨다. 특히 감귤.
그렇게 택시를 타고 달리다 지도를 봤는데, 그때 때마침 내가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모여 있는 길을 딱 지나고 있었다. 원래 가려던 카페까지는 5분 정도 더 달려야 했다. 기사님께 여기서 내려도 되는지 여쭤 봤다.
“왜 그래 자꾸~!!”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씀하셨다.
”하하 죄송해요. 여기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요“
”장난이에요 당연히 내랴도 되지.“
내리며 멀리 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기사님이 아니라고, 오히려 내가 감사하지 하셨다. 기사님의 유쾌하고 친절한 분위기에 기분이 좋았다.
내리자마자 내가 저장해 뒀던 카페 두곳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조용하고, 예쁜 카페였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려니 망설여졌다. 오늘 처음 가려던 카페가 더 가고 싶었다. 뭐랄까. 카페 특유의 분위기나 풍경같은 것들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오분 정도 길에서 서성이며 카페를 창문으로 들여다 보다가 다시 택시를 잡으려 카카오택시 앱을 열었다. 카카오 택시 리뷰 화면이 마침 뜨길래 별 다섯개를 누르고, ‘이 기사님 다음에 또 만나기’ 버튼도 눌렀다. 처음 눌러 본 것 같다.
‘설마 이 기사님을 또 만나겠어?’
그래도 또 만나고 싶은 건 맞으니까 그냥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택시를 불렀다. 바로 잡혔다.
택시를 타고, ”안녕하세요!“ 하며 앞을 보았는데 익숙한 파란 머리카락이 보였다. 아까 나를 막 내려주신 기사님이었다.
”어?!“
기사님과 나는 같이 웃음이 빵 터졌다. 변덕부리는 내 모습에 부끄럽기도 했다.
기사님이 안 그래도 내려주고 주변을 돌다가 내가 카페 안 들어가고 서성이는 걸 보며 뭔가 마음에 안 드나 싶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너무 웃기고, 즐거웠다.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것도 인연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5분을 더 달려 처음 가기로 했던 카페에 도착했다. 사실 중간에 안 내리고 그냥 왔으면 천원 정도면 됐을텐데, 내렸다 다시 타는 바람에 사천원 조금 넘게 기본요금을 내야했다. 그게 아깝다는 생각에 스스로의 변덕이 조금 싫어지고, 후회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애써 그런 생각은 떨치고, 기사님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었다는 좋은 점을 떠올리려 했다.
기사님이 내려 주시며, 여기가 맞냐고 의아해하며 물으셨다. 카페가 신기한 곳에 동떨어져 있었다. 맞다고, 감사하다고 대답하고, 인사 후 택시에서 내렸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날과는 달리, 가는 빗방울이었다. 내가 도착한 카페는 숲이 보이는 통창이 있는 카페인데, 비 오는 날 더 운치있을 것 같았다.
‘오히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