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청승떨기
기대를 많이 한 카페라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문을 열었다. 우려와 달리 사람은 많지 않았고, 내가 기대하던 그 모습 그대로의 카페였다.
어두운 조명, 느린 템포의 약간은 가라 앉은 재즈 음악, 우드톤의 인테리어. 그리고 특색있는 카피와 음료들.
통창으로 보이는 숲.
사진을 잘 찍지도 못하고, 보통 공들여 찍기보다는 대층 툭 찍고 마는 편이긴한데, 이 사진은 유난히 못 찍었다. 하지만 이땐 왠지, 사진으로 이 느낌을 담을 수도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대충 기록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저렇게 대충 찍었던 것 같다.
창가 옆 구석진 일인석 자리에 앉았다. 음료를 시키고,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어 충전을 부탁드렸다.
핸드폰도 없겠다, 분위기도 좋고, 조용하니 내가 원하던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웃기게도, 요가 시간에도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면서, 무슨 사색이 또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각잡고, 차분하게 있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사색이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었다. 다만 나는 그게 불가능하고, 늘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사색을 선택한 것 같다.
잠시 고민하다 여행 내내 계속 가방에 넣어다니던 스프링 노트와 볼펜을 꺼냈다. 두달 전에 상담사 선생님의 권유로 감사일기와 칭찬일기를 쓰려고 산 노트인데 두번 쓰고 그 이후로는 펼친 적이 없다. 감사하는 것까진 좋은데, 억지로 자잘한 것들에 대해 짜내서 스스로를 칭찬하는 내 모습이 뭔가 초라해 보여서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일기를 쓰는 것도 사실 늘 어렵게 느껴졌다. 뭘 써야할지도 모르겠고, 막 쓰기 시작하면 또 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몇줄 쓰다 다른 이야기가 쓰고 싶어지고, 그런 생각들에 압도되어 펜을 내려놓곤 했다. 이런 기억들때문에 점점 그 노트와는 멀어졌다.
테이블이 낮아서 다리를 꼬고, 허벅지 위에 노트를 올려 두고, 노트가 떨어지지 않게 오른 팔꿈치로 누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대충 휘갈겼단 얘기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노트에, 노트를 고정하느라 붙여둔 팔꿈치때문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다. 대충 하는 건 내 전문이니까 뭐 상관 없었다.
그렇게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문장으로, 어떤 이야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꽤 오래 글을 썼고, 글을 어느 정도 쓰고 커피를 한잔 마시는데 이미 다 식어있었다. 한 시간 정도 같은 자세로 글을 쓴 것 같다.
글을 쓰다, 눈물이 툭 떨어졌다. 신기하고, 시원했다. 그동안은 울도 싶어도,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이상했다. 꽤 오래 울었다. 왼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얼굴을 가리고 울었는데, 나중에는 눈물때문에 가슴팍이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눈물을 그렇게나 흘린 건 가족때문이었다. 글을 쓰다가 ‘그만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에 대해 쓰는데 가족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에는 이렇게 힘든데, 가족들때문에라도 억지로 살아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을 글로 옮기는데, 가족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 순간, 마음을 다시 한번 먹었다. 그래, 가족들때문이라도 살아보자. 견뎌보자. 나를 생각하며 엄마, 아빠도 많은 힘든 시간을 버텨오며 살아왔다는 걸 안다.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참 많이 흘렀던 것 같다.
이렇게 카페에서 청승을 떨고나니 기분이 조금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울고 나서도 글을 꽤 썼던 것 같다.
작은 카페인데 너무 오래 머물면 안될 것 같기도 하고, 당장 쓰고 싶은 글은 속 시원하게 다 쓴 것 같아 글 쓰기를 일단 멈 췄다. 아니. 사실 쓰고 싶은 것들은 쏟아져 나왔다. 한번 글을 쓰기 시작하니, 이것도 쓰고 싶고, 저것도 쓰고 싶어서,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다른 주제들은 노트 왼쪽 구석에 적어두고, 쓰던 글을 이어가는 데에 집중했다. 글씨체는 엉망으로 휘갈겼지만, 참 풀어내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스스로도 웃겼는데, 몇장이나 썼는지 세어보고, 7장을 단숨에 써내린 스스로에 대해 뿌듯함을 느꼈다. 글씨야 엉망으로 휘갈겼지만, 아무렴 어때.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는 속도가 참 빨랐다. 그런데 글도 나쁘지 않게 쓰는 것 같아 스스로 조금 자부심이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이만하면 됐다! 오랜만에 눈물도 흘리고, 시원하게 글도 잔뜩 쓰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해준 이 카페가 참 좋도, 고마웠다. 정성어린 리뷰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쳇 베이커의 재즈를 비롯해 잔잔한 음악들이 내내 좋아고 느껴서,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해졌다.
“노래들이 다 너무 좋은데, 플레이리스트를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가게 사장님이 흔쾌히 알려주셨다. 노래는 열곡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노래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던 것 같다.
새로 얻은 플레이 리스트와 후련한 마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나올 때쯤에는 사실 사람이 많아져서 살짝 소란스러웠지만, 애초에 테이블이 많지 않은 작은 카페라 그렇게까지 시끄럽진 않았다.
위치가 애매하지만, 혼자 여행을 온 사람들에겐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카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