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여운있게 자전거 여행 재도전
김택화 미술관에서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비가 오면 자전거를 타다 미끄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고민이 됐는데, 이 동네는 땅도 별로 안 젖어 있고, 비도 그쳐서 자전거를 타도 될 것 같았다.
저장해둔 근처의 자전거 대여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서 15분 거리였는데, 택시를 또 타고 싶지는 않아서 걸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미술관에 나오자마자 뭔가 이상했다. 심장이 두근대고, 숨 쉬기도 어렵고, 손도 떨렸다. 멀미인지, 공황 때문인지 헷갈렸지만 일단 가방에서 약을 꺼내려 했는데 잘 찾아지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의 의자로 가서 약을 찾았다. 약을 먹고, 일어섰는데 갑자기 토할 것만 같았다. 구석의 흙바닥에 가서 헛구역질을 몇번했다. 뭐가 나오지는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고, 속상했다.
옆에 있던 공중 전화 부스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제가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맘 편히 찾아오시도록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감성적인 문구가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인도에 걷고 있으면서도, 지나가는 차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차가 와서 나를 덮칠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던 것 같다. 아니 그냥 그 큰 소리와 속도감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스스로 격려하며, 아마 이게 다 무거운 가방때문일거라고 생각하며 계속 걸었다. 그렇게 자전거 대여소에 도착했다.
한시간만 빌릴 거라고 하니 아저씨가 아마 부족할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내 체력을 생각해도 그렇고, 또 뒤에 미리 예약해둔 일정이 있어서 한시간으로 했다.
정신이 없어서 부랴부랴 대여료를 입금하고, 아저씨가 골라 주신 자전거를 확인도 안하고 끌고 나섰다. 자전거에 바구니가 없어서 더 당황해 정신이 없었다. 카드랑 지갑만 후드 앞주머니에 넣긴 했는데 아무래도 불안했다.
어쩔 수 없지. 괜찮을 거야. 생각하며 자전거를 끌고 횡단 보도를 건넜다. 자전거 가게 아저씨가 알려주신 골목 앞에서 자전거에 올라탔다.
아 이런. 안장이 너무 높아서 발이 바닥에 닿지가 않는다. 이러면 안되는데. 불안했다. 나는 겁이 많아서 달리다가 속도를 자주 줄이고, 자주 멈춰서는데 그럴 때 발이 땅에 닿아야 안정감이 있다. 발이 안 닿으면 뭔가 통제력을 잃는 것 같아 겁이 난다.
안장을 스스로 조절하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냥 포기하고, 또 한번 어쩔 수 없지 괜찮을 거야 하며 자전거에 올라탔다.
자전거는 며칠 전에 탄 것보다 더 새거여서인지, 더 좋은 거여서인지 확실히 잘 나갔다. 덜덜 거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나, 지갑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멈추고 싶을 때 발이 안 닿아서 넘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계속 됐다.
바다 쪽으로 나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달렸다. 함덕해변으로 가보고 싶어서였다. 풍경이 종달리와는 또 달르게 아름다웠다. 십분 정도 달리니 함덕해변이 나왔는데, 여기는 길도 좁고, 사람도 많아서 또 겁이 났다. 잔뜩 겁에 질린 채 천천히 달리는데, 한 아저씨가 앞에 눈에 보였다. 왜인지 불안했다. 부딪히지 않게 피하려고 애쓰며 달리는 나에게 아저씨가 말을 걸으셨다.
“길 좀 물을게요”
“아 저도 길 몰라요”
계속 천천히 달리며 지나가려니까 또 말을 거셨다.
“아니, 여기 주민아니에요?”
“아니에요”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 것도 그다지 이해가 안되는데, 길을 모른다니까 굳이 주민이 아니냐고 묻는 것도 기분이 상했다. 길을 모른다는 말에는 알려줄 수 없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데, 아저씨는 굳이 나를 막아서며 주민아니냐고 물었다. 길을 아는데도 모른다고 한 것 같아보였는지 뭔지 아무튼 성가셨다. 내가 현지인처럼 보이나 신기하기도 했지만, 가뜩이나 몇번 넘어질 뻔해서 긴장했는데 자꾸 막아서려 해서 짜증났다.
그 뒤로 갈수록 사람이 더 많아져서 자전거 도로 겸 인도로 쓰이는 그 길에서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차도로 가야 하는 상황이 왔다.
안되겠다. 방향을 돌려 차도로 잠시 달려 사람 많은 곳을 빠져나왔다. 다시 자전거용 도로를 달려 처음의 갈림길로 가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세상에. 처음부터 여기로 갈걸. 시간은 이미 20분도 안 남았는데, 이쪽은 사람도 적고, 자전거 도로도 잘되어 있고, 풍경도 당연히 예뻤다.
이 방향에 가고 싶었던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들러서 커피를 마실 시간은 안될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 방향으로 달릴걸’ 아쉬움에 가슴이 좀 쓰렸지만 애써 스스로를 달랬다.
아. 그리고 결국 속도를 좀 올려 카페에 도착했다. 좀 늦게 반납하고, 추가요금 내지 뭐 하는 생각도 있었다.
카페에 도착해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갔다. 역시나 풍경이 예술이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음료를 마시고 싶은 마음은 싹 사라졌다. 카페가 넓지 않았는데 한쪽에서 남녀 여럿이 상기된 목소리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엿들으려한 건 아닌데… 서로 나이를 이야기했다. 남자들은 30대 초반, 여자들은 20대 초중반이었다. 처음 본 사이 같았다. 궁금해져서 살짝 그쪽을 보니 남자 둘 여자둘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여행 와서 만난 사이일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아쉬움 없이 카페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나왔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신나게 페달을 밟으며 돌아온 것 같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오분 거리라고 된 곳에 도착하는 데 나는 10분이 넘게 걸릴만큼 천천히 달렸었다. 이때는 자신감이 붙어서 5분 거리라고 된 자범거 대여소에 정말 5분만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닷 바람을 가르고 속도를 즐기며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지나가는 차 소리도 이때는 무섭지 않았다.
자전거 대여소에 도착해 아저씨를 불렀다. “1시간이 조금 부족하긴 하네요. 하하” 아저씨가 자기 말이 맞지 않았냐며 웃으셨다.
생갇보다 한시간이 참 금방 간 것 같다. 내가 한시간동안이나 자전거를 쉬지 않고 탈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자전거를 한번 더 타기를 참 잘했다.